대기업-중기 생산 양극화 ‘역대 최대’

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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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1월 대기업 생산지수
114.8로 2015년 이후 최대치
중소기업은 98.1 그쳐 최저치
고환율 기조 속 중기 여건 악화
근로자 임금 격차도 더 벌어져

부산항 북항 신선대부두에 수출입 화물이 쌓여있는 모습. 부산일보DB 부산항 북항 신선대부두에 수출입 화물이 쌓여있는 모습. 부산일보DB

국내 기업의 양극화가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중심의 수출 호황으로 대기업 제조업 생산은 관련 통계 이후 최대 기록을 세운 반면 중소기업은 내수 부진 여파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낸 것으로 집계됐다. 원달러 환율이 높아지면 통상 수출 제조업이 혜택을 보는 반면 원자재 값 상승으로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더 커지는 터라 당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기에 대한 온도 차는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대기업의 제조업 생산지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5.2% 증가한 114.8(2020년=100)을 기록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같은 기간 기준으로 최대치다. 반도체와 자동차에서 생산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전년보다 43.9%나 늘면서 역대 최고(1419억 달러) 기록을 세웠고 이에 힘입어 전체 수출도 역대 최대 기록을 다시 썼다. 자동차 수출도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도 불구하고 전체 수출의 10% 이상을 유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소기업 생산지수는 전년보다 0.9% 줄어든 98.1에 그쳤다. 역시 통계가 집계된 201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중소기업 제조업 생산은 2023년(-1.3%)에 이어 2년 연속 감소세다. 대기업 호황과 달리 중소 제조업은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미다. 중국 경기 부진으로 수요가 줄어든 화학제품과 의복 분야에서 특히 업황이 좋지 않았다.

의복은 작년 부진했던 대표적인 내수 업종이다. 작년 3분기 가구의 평균 의류·신발 지출(11만 4000원)은 전년 동기보다 1.6% 줄면서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역대 최소(3.9%) 수준으로 떨어졌다. 장기화하는 내수 부진이 중소기업 제조업 불황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는 올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계엄과 탄핵 정국에 따른 국내 정치 불안 등 대내외 불확실성은 상대적으로 외풍에 취약한 중소기업에 더 큰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화 전망이 나오는 고환율 기조는 원자재 가격을 올려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을 더 옥죌 수 있는 요인이다.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내부의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한 환 헤지 능력이 상대적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 격차는 근로자 간 소득 격차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300인 이상 사업체는 전체 임금에서 성과급 등 특별 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300인 미만 사업체보다 더 크다. 지난해 실적을 토대로 대기업의 성과급만 늘면 역대급 불황을 겪은 중소기업 근로자와의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 격차가 극명한 대비를 이룬 것으로 확인되면서 윤석열 정부가 강조한 낙수효과에 대한 회의론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낙수효과는 자산 감세와 대기업 중심의 지원 정책 등이 고소득층 소비와 대기업 투자를 늘려 경제 전반의 성장을 유도한다는 논리다. 정부는 상속세·금융투자소득세 인하와 대기업 중심의 투자세액공제 등을 확대 추진해왔지만 실효성 논란은 여전하다.


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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