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둔덕만 없었다면…무안공항 ‘로컬라이저’ 살펴보니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 로컬라이즈 설치
여객기가 부딪히며 대형 인명피해 사고 유발
다른 공항엔 부서지기 쉬운 구조로 돼 있어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를 부른 사고에 대한 원인이 여러가지 제시되고 있지만, 활주로 끝단에 위치한 콘크리트 둔덕만 없었다면 대형 인명 피해는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30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무안공항에는 활주로 끝단에서 250m 떨어진 곳에 콘크리트 둔덕이 있다. 이 둔덕은 ‘로컬라이저’라고 불리는 항행안전시설이다. 방위각 시설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에서 항공기에 전파를 쏴서 활주로에 정확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금은 전세계 거의 모든 공항에 설치된 필수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29일 오전 8시 58분 관제탑에서 사고 여객기에 조류 충돌 경보를 내렸는데 1분후 조종사가 ‘메이데이’를 선언했다.
이후 복행한 뒤 다시 착륙을 하면서 랜딩기어가 펴지지 않아 여객기는 동체착륙을 하게 된다. 동체착륙을 하게 되면 조종사는 비행기에 대해 통제 불능상태에 빠진다. 방향도 바꿀 수 없을뿐더러 속도도 제어하지 못한다. 오직 마찰로 인해 여객기가 멈추기만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사고 여객기는 활주로를 지나 정면에 있는 로컬라이저를 충돌하게 된다.
그런데 이 로컬라이저는 위쪽에 안테나가 뻗어있고 이를 지지하기 위해 아래쪽에 둔덕을 쌓았다. 그런데 이 둔덕이 흙으로 덮힌 것처럼 보이지만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이에 여객기는 강한 충격을 받고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2015년 4월 14일, 인천을 떠나 히로시마공항에 착륙하려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는 비상착륙을 하게 되고 활주로를 벗어나 로컬라이저를 부수게 된다. 그러나 이 로컬라이저는 위에 약한 철골구조물만 나와 있고 나머지는 땅속에 파묻혀 있었다. 이에 여객기는 좀 부서졌지만 탑승객은 모두 무사했다.
2022년 10월 24일 필리핀 막탄 세부 공항에서도 대한항공이 로컬라이저를 충돌했으나 승객 전원이 무사했다. 위의 철골구조물만 부서졌다.
그러나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지상에 만든 뒤 철골구조물을 세워 이번 참사를 피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활주로 지난 지점부터는 땅이 아래로 기울어져 있어 활주로와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콘크리트 둔덕을 세웠다고 밝혔다.
물론 로컬라이저가 세워진 지점은 활주로 바깥이다. 그러나 공항에서는 필수시설이라도 최대한의 안전을 감안해 만들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한 항공전문가는 “로컬라이저가 철골구조물로만 나와 있었다면 여객기는 로컬라이저를 충돌한 후 외벽을 부수고 바깥쪽 논에 멈췄을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인명피해는 훨씬 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무안공항의 활주로가 2800m로 다른 공항보다 짧다는 점을 감안하면 로컬라이저를 이렇게 만들어선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현직 기장은 “여러 공항을 다니며 많은 안테나를 봤지만, 이런 종류의 구조물은 처음”이라며 “안테나를 더 높게 만들고 싶다 해도 콘크리트 벽을 건설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항공 전문가인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는 영국 스카이뉴스에 출연해 “승객들은 활주로 끝을 조금 벗어난 곳에 있던 견고한 구조물에 부딪혀 사망했는데, 원래라면 그런 단단한 구조물이 있으면 안 되는 위치였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 등 다른 공항에는 이러한 돌출된 콘크리트 지지물이 없다. 다만 여수와 청주공항에는 비슷한 형태의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이에 대한 규정이 약간 모호하다. 항행안전을 위해 설치하는 시설물이 활주로 구역에 설치할 때는 부서지기 쉬운 물체로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무안공항의 경우 활주로에서 250m 떨어진 곳이어서 이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 제25조는 로컬라이저 등은 항공기가 충돌했을 때 최소한의 손상만을 입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