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닮은 해양도시, 관광에 스타트업 융합한 ‘혁신의 상징’ [도시 회복력, 세계서 배운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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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르투칼 리스본 : 유럽 재정위기 충격에서 회복하다

2008년 금융위기에 재정 위기
GDP 9.8% 적자로 구제 금융
스타트업 허브 목표로 대변혁
기업 유치·일자리 창출 성과
주력인 관광산업도 업그레이드
지난해 지역 경제 성장률 9.2%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리스본은 주력인 관광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업 유치와 스타트업 육성에 전력을 기울여 10여 년 만에 유럽 내 가장 주목 받는 성장 도시로 거듭났다. 사진은 리스본의 대표적 관광 명소인 코메르시우 광장(위), 리스본의 대표적 스타트업 캠퍼스인 ‘허브 크리에이티브 비토’(HCB) 전경.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리스본은 주력인 관광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업 유치와 스타트업 육성에 전력을 기울여 10여 년 만에 유럽 내 가장 주목 받는 성장 도시로 거듭났다. 사진은 리스본의 대표적 관광 명소인 코메르시우 광장(위), 리스본의 대표적 스타트업 캠퍼스인 ‘허브 크리에이티브 비토’(HCB) 전경.

포르투갈 리스본에 첫 발을 디딘 부산 시민이라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도시이지만 왠지 모를 친숙함을 느낄 것 같다. 각각 태평양과 대서양을 접한 해양도시라는 유사한 지리적 특성, 여기에 도심에 뻗어있는 산과 언덕을 계단식으로 촘촘하게 덮은 집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심지어 무뚝뚝한 듯 쾌활하고 개방적인 사람들의 기질도 비슷하다.

부산과 여러모로 닮은꼴인 리스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뒤이은 유럽 재정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2009년 당시 포르투갈의 재정 적자는 GDP(국내총생산)의 9.8%에 달했고, 수도인 리스본 역시 급격한 세수 감소와 채무 증가로 도시 운영에 큰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서유럽 국가 수도 중 상대적으로 ‘열등생’이던 리스본에게 재정 위기는 도시 전체의 위기의식과 도전 정신을 점화시켰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좋은 자극제가 됐다. 2011년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구제 금융’ 상황에서 리스본은 사활을 건 자구 노력으로 도시 채무를 줄였고, 주력 산업인 관광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업 유치와 스타트업 육성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불과 10여년 만에 유럽 내에서 가장 주목 받는 성장형 도시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그 성과로 지난해 유럽연합(EU) 산하 유럽혁신위원회(EIC)로부터 ‘유럽 혁신 수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리스본의 최우선 도시 회복 전략은 주력인 관광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다변화하는 것이었다. 리스본은 유럽 국가 중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과 물가, ‘워케이션’ 최적지로 부족함이 없는 천혜의 환경을 앞세워 중앙 정부와 함께 기업과 투자금 유치에 전략을 기울였다. 국가적으로는 고액 투자자와 스타트업 설립자, 기술 전문 인력 유치를 위해 ‘골든 비자’를 신설해 인재와 돈을 끌어들였다. 2021년 이후 1만 2400여 개 골든 비자가 발급됐고, 이를 통해 유치된 자금은 70억 유로(약 10조 4500억 원)에 달한다. 대부분 수도 리스본에 집중됐다.

리스본 자체적으로도 ‘스타트업 허브’를 목표로 다양한 육성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대표적인 정책이 ‘유니콘 팩토리’ 프로젝트다. 기존 스타트업 기업인과 마케팅 전문가, 투자 유치 전문가 등 민간 전문가들을 주축으로 한 이 플랫폼은 다국적 기술 기업들의 연구소나 지사를 유치하고, 유수의 벤처 캐피털 등과 연계해 국내외 스타트업에 세계적 수준의 ‘스케일업’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출범했다. 리스본은 이를 통해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미국, 중국, 이스라엘, 브라질, 인도 등에서 12개의 유니콘 기업을 유치했다. 이런 성과들이 만들어지자 미 실리콘밸리 등으로 기회와 일자리를 찾아 떠난 포르투갈 출신 젊은이들이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와 스타트업을 설립하는 흐름도 생겨났다. 여기에 구글, 시스코시스템즈, 우버, 폭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 등의 글로벌 기업들도 앞다퉈 리스본에 연구소, 기술센터 등을 설치하거나 설치할 계획이다.

카를로스 모에다스 리스본 시장은 “유니콘 팩토리 출범 이후 60개 이상의 해외 기업들이 리스본에 기술팀을 설립하도록 유치해 약 1만 4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스타트업의 수는 3배로 증가했다”며 “작년에는 80개 이상의 국제 대표단이 이 프로젝트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리스본을 방문할 정도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해외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리면서 매년 11월 열리는 세계 최대 글로벌 스타트업 행사인 ‘웹 서밋’은 리스본이 독점하다시피 개최하는 중이다.

주력인 관광 산업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리스본의 주요 관심사다.지난해 포르투갈을 찾은 관광객은 2650만 명으로, 코로나19에 묶였던 관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이에 리스본은 관광 경쟁력이 ‘오버 투어리즘’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주민 참여를 강화하는 데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일례로 ‘모든 지역의 극장’(Theater in every parish) 프로젝트는 각 동네의 지역 예술가들에게 연극, 음악, 영화, 회화 등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시내 곳곳에 마련해 주민들의 창작 의욕을 높이고, 리스본 관광의 ‘소프트웨어’를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성장 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난해 지역 경제성장률이 9.2%에 달할 정도로 도시가 팽창하면서 임대료가 치솟는 등 거주 여건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리스본시 크리스티나 로샤 국제협력 담당관은 “성장하는 도시가 공통적으로 겪는 주거 문제에서 리스본도 예외는 아니다”면서 “2030년까지 5억 6000만 유로를 투자해 적정 가격의 주택을 건설하고, 저소득 가정을 위한 임대료 보조금을 지급키로 하는 등 주거 불안 해소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의 이런 급격한 변화를 지탱하는 힘은 시민들의 폭넓은 공감대다. 이런 점에서 리스본시가 최초로 실행 중인 ‘시민 의회’도 주목할 만하다. 시는 무작위로 선정한 50명의 시민들과 함께 기후 변화, 이동성, 교육, 의료 서비스 접근성 등 도시의 주요 과제들을 논의하고, 이를 통해 합의된 의제는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시민 의회에서 채택된 나무 심기 등 ‘도시 냉각 프로그램’은 시가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다”며 “이런 프로세스는 시의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수용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 말했다. 리스본/글·사진=전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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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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