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해리승 트럼패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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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TV 토론은 해리스 판정승으로 끝났다. 이번 토론이 초박빙으로 전개되는 미 대선 레이스의 판세를 가를 분수령이라는 전망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첫 무대에 오른 해리스가 노회한 트럼프 벽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였는데 결과는 ‘해리승 트럼패’였다. ‘초짜가 놓은 함정에 베테랑이 걸렸다’ ‘해리스가 던진 미끼를 트럼프가 물었다’ 등의 반응이었다. 여론조사 결과도 3명 중 2명꼴로 해리스가 잘했다고 했다. 해리스는 성공적 데뷔로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개 지지라는 선물까지 챙겼다.

미 대선에서 TV 토론이 처음 등장한 건 케네디와 닉슨이 맞붙은 1960년 9월 26일이었다. 무명에 가까웠던 케네디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경륜과 노련미의 닉슨을 압도했고 최연소 미국 대통령이 됐다. TV 토론은 미디어 정치의 시작을 알렸고 대선 판도를 가르는 주요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1988년 TV 토론은 듀카키스 후보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사회를 맡은 CNN 앵커 버나드 쇼는 사형제 폐지론자인 듀카키스에게 ‘당신 아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에 대한 사형은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듀카키스는 ‘아니오’라고 냉정하게 답했다. 듀카키스가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여론이 일었고 결국 부시에게 패했다.

TV 토론에서 때론 비언어적 요소가 더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1992년 부시가 방청석 질문 도중 손목시계를 쳐다보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대표적 토론 실패 사례로 전한다. 2000년 대선에서 고어는 거만하고 참을성 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지율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패배했다. 바이든 후보의 낙마도 결국 TV 토론 때문이었다. 울 것 같은 눈, 초점 잃은 시선, 벌어진 입, 한마디로 대통령의 멍때리는 표정에 미국이 놀랐던 것이다.

미 대선을 바다 건너 남 일처럼 지켜볼 수 없는 게 우리 처지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외교 지형이 바뀌고 산업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와 해리스의 우세 여부에 우리 증시의 관련 종목이 널뛰기하는 게 현실이다. 이번 토론에도 등장한 북한 김정일에 대한 두 후보의 인식차는 한반도 정세에 직결된다. 미 대선 풍향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해리스 토론 승리에도 불구하고 미 대선 판도는 여전히 안갯속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50여 일 남은 기간 섣부른 예단보단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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