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도발’ vs 트럼프 ‘짜증’… 90분 내내 신경전
미 대통령 후보 TV 토론
도발 작정하고 나선 해리스
낙태·인종 문제로 맹공세
평정심 잃어버린 트럼프
“사회자 포함 3 대 1로 싸워”
“트럼프가 해리스의 ‘도발’에 말려 들었다.”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첫 격돌한 미국 대선 TV 토론에 대한 외신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현지 언론은 특히 화를 돋우는 해리스 부통령의 공세가 먹혀 들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토론 중간 평정심을 잃는 듯 보였다고 짚었다.
발언권이 없을 때 마이크가 꺼지는 ‘음소거’ 규칙이 토론장에 적용됐지만 두 사람은 상대의 발언 도중 끼어들어 꺼져있는 마이크 앞에서도 신경전을 벌였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해리스 캠프의 이날 토론 전략은 무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화를 촉발하는 것이었고, 그 점에서 해리스는 크게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CNN 방송도 해리스 부통령이 각종 사안에 대한 “거의 모든 답변에 트럼프를 화나게 할만한 언급을 가미했다. 그것은 극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짚었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첫 대결에서 트럼프를 짜증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고, AP 통신은 해리스는 바이든이 하지 못한 방식으로 트럼프에 대항했다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두 후보는 모두 발언 순서가 아닌 순간에도 꺼진 마이크 너머로 상대의 발언에 반박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포착됐다. 토론 초반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중산층이 아닌 부유층을 위한 것이라고 비난하며 “트럼프는 여러분을 위한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건 그냥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 그들이 그녀에게 말하라고 갖다줬다”면서 해리스 부통령이 참모진이 써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비난했다.
두 후보의 신경전은 이번 대선의 주요 쟁점 중 하나인 낙태권과 이민 문제에서 절정에 달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주당이 임신 9개월에도 아기를 죽일 수 있게 하기를 원하고 출생후 처형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당황한 진행자인 린지 데이비스 앵커가 나서서 “이 국가의 어떤 주에서도 아기를 죽이는 것이 합법인 곳은 없다”며 사실을 바로잡기도 했다.
이번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하이오주에서 난민들이 주민들의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고 주장하자 해리스 부통령은 “뭐라고?(What?)”라고 되물으며 “그건 믿을 수 없다”고 말해 “내가 지금 말하고 있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의 도발에 정치적 정체성 논란을 거론하며 흔들었다. 그는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면서 해리스 부통령을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그녀가 마르크스주의자인 것을 모두가 안다”며 “그녀의 아버지는 마르크스주의자인 경제학 교수였고, 그녀를 잘 가르쳤다”고 비꼬았다.
또 트럼프는 해리스 부통령의 인종적 정체성 문제를 다시 제기하면서 그녀가 어떻게 규정하든 자신은 상관하지 않는다며 치고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해리스 부통령은 미간을 크게 찌푸리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현지 언론의 해리스 우세승 판정에 친 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토론에서 해리스 부통령에 더해 진행자 2명까지 합해 3명과 티격태격해야 했다며 편파 진행 논란을 문제 삼았다.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역시 토론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내 인생 최고의 토론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3 대 1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라고 비꼬았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