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막걸리 수난(?) 시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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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막걸리 전성시대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 못 보던 희한한 막걸리가 시중에 넘쳐난다. 밤 막걸리나 땅콩 막걸리 따위는 이미 구식이다. 모히토 막걸리, 밀크티 막걸리, 바질 막걸리, 홍차 막걸리처럼 신선하고 기발한 막걸리가 줄을 잇는다. 한때는 막걸리 특유의 텁텁한 느낌이 싫어 달달한 막걸리를 찾더니, 요즘엔 술을 마셔도 건강을 고려해 마시자며 아스파탐 같은 인공 감미료 없는 막걸리가 인기다. 그리 보면 가히 막걸리의 전성시대라 하겠다.

한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당혹스럽다. 막걸리에 향료나 색소를 넣는 걸 정부가 허용키로 한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4 세법개정안’에 그런 내용이 담겼다. 지금도 바나나, 초콜릿, 딸기 같은 향료나 색소를 넣은 막걸리 비슷한 술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술은, 비록 쌀과 누룩으로 만들었다 해도, 막걸리가 아니라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막걸리는 주세법에 탁주에 포함되고, 탁주엔 향료나 색소를 쓰지 못한다. 막걸리에 그런 맛을 내려면 실제 재료를 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미자 넣은 막걸리는 ‘오미자 막걸리’가 되지만, 오미자 향을 넣었다면 ‘오미자 막걸리’라는 이름으로 팔지 못한다.

정부는 주류사업자의 세금 부담(기타주류는 탁주에 비해 세금이 7배가량 높다)을 줄여 주기 위해 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전통주 업계는 “우리 술의 가치를 훼손한다”며 지난 6일 막걸리향료색소첨가반대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반발하지만, 한국막걸리협회는 “보다 다양한 막걸리를 값싸게 보급하게 됐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각종 막걸리에 대한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줘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다 좋다. 다만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게 있다. 막걸리 본래 맛을 찾는 사람들이 이런 추세에 밀려 역차별을 받는다는 점이다. 옛 어른들은 색소나 향료는커녕 다른 특별한 무엇이 들어간 막걸리를 마시지 않았다. 그냥 쌀로 고두밥을 지어 누룩과 섞어 막걸리를 빚어 동네 사람들과 나눠 마셨다. 전통주라고는 하지만 소박해서 싸고 그래서 서민의 술이었다. 서민의 술이 달고 깔끔할 리 없었다. 시큼하고 텁텁했다. 그래도 시원한 열무김치 하나로 그 맛이 족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던가, 옛것의 날것 그대로 막걸리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 답답함은 어디다 하소연해야 하나. 막걸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고 이리저리 손을 대야 미덕인 시대, 그야말로 막걸리 수난 시대 아닌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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