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8·15와 한일 관계의 새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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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화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

지난 8월 15일 광복 79주년 기념 경축식은 독립기념관장 인선을 둘러싼 갈등 속에 둘로 쪼개져 치러지는 사상 초유의 일이 펼쳐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행사에, 광복회를 비롯한 상당수 독립운동단체와 더불어민주당은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했다.

경축식이 이렇게 양분된 근저에는 일제 식인지 지배에 대한 평가와 대한민국 건국일을 둘러싼 진영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광복절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로부터 주권을 되찾은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미래를 생각하는 국민통합의 날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은 한국이 두 개로 분열되고 여기에 북한을 더해 한반도가 3개 나라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는 날이 돼버렸다.

광복절, 미래 생각하는 국민통합의 날

행사 둘로 쪼개져… 진영 논리 벗어나야

일본은 종전일로 칭하고 피해자인 척

식민지 시기 조선인 차별 반성 필요

자신들이 가해자였음을 인정해야

양국 간 ‘역사 청산’ 비로소 이루어져

한편, 한반도를 식민지배하고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8월 15일을 패전일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종전일로 칭한다. 그리고 1963년부터 매년 일본 정부는 동경무도관에서 전몰자 310만 명을 대상으로 ‘전국전몰자추도식’을 실시해오고 있다. 변함없이 올해 추도식도 천황 부부, 총리와 정부 관계자, 그리고 유가족 대표 등 6000여 명의 참석하에 엄중하게 진행되었으며, 이는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모습으로 국민통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대한제국을 병합한 이후 1945년 8월 15일까지 대일본제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틀 안에서 식민지 조선을 철저히 짓밟고 차별했다. 일본은 조선인에게 일본 국적을 부여했다. 그러나 일본 관점에서 내지인은 ‘일본 호적’, 외지인은 ‘조선 호적’으로 구분하고, 이에 대한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1등 신민 일본인, 2등 신민 조선인이라는 차별 정책을 법제화한 것이다.

중일전쟁이 전면화되자 신사참배, 한글사용 금지, 창씨개명 등 조선민족 말살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해 조선인 남자는 징용과 징병으로, 조선인 여자는 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다. 그리고 사망자와 부상자 통계가 알려주듯이, 조선인을 일본인보다 위험한 환경에 배치하고, 한층 가혹하게 다루었다.

차별정책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지속됐다. 일본 정부는 귀환 정책에서 조선인을 완전히 제외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대표적 비극이 지난 7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방한에 앞서 일본 정부가 조선인 승선자 명단의 일부를 공개한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이다. 또 1947년 5월에는 외국인 등록령을 선포해 일본 거주 조선인을 외국인으로 변경시켜 관리했으며, 1953년부터 제정된 일련의 전쟁 희생자 지원 관련 법에 일본인이라는 국적 조항을 달아 조선인 희생자를 배제했다. 그리고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시 한국에 독립 축하금 명목으로 지불한 유상·무상 5억 달러로, 조선인의 개인 청구권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일본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미국 정부는 약 12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을 안보위협으로 간주하고 서부 내륙의 수용소에 강제 억류했다. 그러나 1944년 12월 미국에 충성하는 시민에 대한 구금을 지속할 수 없다는 ‘엔도사건’의 판결이 나오자, 일본과의 전쟁이 한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석방하고 수용소를 폐쇄했다. 그리고 40여 년 뒤인 1988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차별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생존자에게 각각 2만 달러의 보상을 지급했다. 그런데도 8월 15일이 되면 일본의 방송사는 강제 격리를 당한 일본계 미국인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대다수 한일 양국 국민은 한일 협력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지도력에 기댄 관계 개선에는 한계를 느낀다. 정상 교체와 상관없이 앞으로 양국 간 협력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한국은 일본 식민지 지배 평가를 둘러싼 분열적 정쟁을 그쳐야 하며, 대통령은 적어도 일본에 식민지 시기 조선인 차별에 대해 인권 회복의 차원에서 당당히 반성을 요구해야 한다. 일본은 자신들이 가해자였음을 인정하고, 최소한 일제강점기 일본의 신민이었던 조선인에게 행한 차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역사 청산이라는 물컵은 유린된 조선인들의 인권 회복을 한일 양국이 함께 추진할 때 비로소 가득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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