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여름의 낭만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여름이 편한 시절이 끝난 것일까? 지난해에 이어서 폭주하는 더위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기후 전문가 가운데 앞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30도를 훌쩍 넘는 여름 더위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고 진단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전과 다른 여름의 장기 지속을 예고한다. 두루 알고 있듯이 더위는 갑자기 찾아오는 현상이 아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서서히 기온을 높이면서 사회를 바꾸어 놓는다. 우선 휴가철이면 북새통을 이루던 해수욕장과 계곡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산으로 바다로 향하던 피서 행렬도 크게 줄었다. 나무 그늘을 찾고 계곡과 바다의 물을 찾기보다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 머무르는 경향이 커졌다. 집에서 가까운 송정, 해운대, 광안리 등의 해수욕장을 가보더라도 낮보다 밤에 그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마치 밤이 되어야 활동하는 흡혈귀처럼 어둠이 내릴 즈음에 바닷가를 향하는 행렬이 놀라울 정도이다.
폭주하는 더위 이젠 멈출 기세 안 보여
해 거듭할수록 피할 수 없는 현실 돼
산불에 전염병까지 지구 열탕화 심각
탄소 배출 줄여야 하는 일 인류 직면
기후 변화 염려해도 생활 쉽게 못 바꿔
자기 합리화 속 서서히 생태계는 파멸
확실히 이제 여름은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 아니다. 낭만을 구가하던 시대가 끝난 듯하다. 하는 수 없이 견디고 이겨 내어야 하는 기후가 되었다. 머잖아 일상과 극한의 구별이 사라지는 일을 맞을 수도 있겠다. 폭염은 홍수와 가뭄, 해수의 상승을 동반하기도 한다. 재난을 일으키고 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양식장의 고기가 떼죽음하고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병을 얻거나 죽는 사람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폭염은 그저 지나갈 한때의 자연현상에 그치지 않으며 중대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더 뜨거워지는 바다와 도시를 어떻게 생명유지시스템으로 가꾸어가야 하는가? 단지 더 많은 전력을 끌어다 쓰는 일로 가능한 사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폭염은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40, 50도를 오르내린 세계의 도시도 허다하다. 이런 도시에서 사람들은 여름이 아니라 죽음의 지옥을 맞닥뜨리고 있다. 제프 구델의 보고서 〈폭염 살인〉을 보라. 지난해만 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폭염 사망자가 50만 명을 넘었고 전력난과 물가 폭등에 시달린 나라나 도시가 한두 곳이 아니다. 슈퍼 산불에서 전염병까지 지구 열탕화의 참상이 매우 심각하며, 좀 과장해 어떤 이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에 견주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보다 훨씬 심각한 사례가 적지 않은데 결코 강 건너 불구경 거리로 그칠 일은 아닌 듯하다. 지구가 더 더워지고 바다 열기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빈번한 폭염과 홍수 등이 단순한 예외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은 턱없이 부족하다. 오히려 당장 먹고살기 급한 마당에 기후 문제를 고민할 겨를이 없다. 더군다나 설사 이게 탄소 배출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나 한 사람이 이를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 당착에 빠지고 만다.
더 뜨거운 지구의 원인 가운데 그 첫째는 말할 필요도 없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진 데 있다. 온실 효과가 더 커지니 전반적인 기온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엘니뇨 현상을 들 수 있다. 이게 나타나면 적도 부근 바다는 평소보다 훨씬 따뜻해지고 심각한 무더위를 유발한다. 세 번째로 지구 온도와 마찬가지로 상승하는 바다가 있다. 바다가 뜨거워지면 빙하가 녹고 해류 흐름이 바뀌어 많은 지역의 기후 변동을 초래한다. 무엇보다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일은 인류가 직면한 급선무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지식인들조차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망하기 전에 인간 세상이 먼저 끝장날 것이라고 탄식을 늘어놓기도 한다.
사실 알면서도 행하기 어렵고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동하는 영역이 적지 않다. 습관과 사회적 관행을 따라서 자동으로 움직이고 실행하는 일상화된 행동 양식이 그렇다. 우리가 기후 변화를 염려하는 생각을 품고 있으나 기후 파괴적인 생활 양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당장 에어컨을 끄기가 쉽지 않다. 소비 선택에서 생각과 행동 사이의 괴리와 모순을 피할 수 없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이동 수단을 바꾸고 비행기 여행을 줄이거나 육식을 금하고 채식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그만큼 기후 위기 앞에서 진실과 용기를 갖기 어렵다. 자연과학과 기술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하는 한편, 근본 원인인 경제와 사회 시스템을 어찌할 수 없다고 체념한다. 또한 당장 눈앞에 할 일을 두고 미래를 걱정할 겨를이 없다고 생각한다. 쓰레기 문제를 분리수거 정도의 타협점에서 자기 합리화 기제를 찾는 것처럼 선량한 기후 파괴자가 된다. 이러한 가운데 일상의 몰락과 지구 생태계의 파멸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더위처럼 다가올 수 있다. 더 이상 여름의 낭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