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산·경남 행정통합 재논의와 옆집 눈치보기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부울경 3개 시도 15년째 통합 논의 중
한때 특별연합 성사… 논란만 남고 좌초
대안 부산·경남 행정통합엔 여론 싸늘
대구·경북 통합 속도에 갑자기 재논의
최근 재점화된 부산·경남 행정통합 논의는 ‘눈치보며 끌려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올해 6월 17일 부산시청에서 행정통합을 비롯한 지역 공동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미래 도약과 상생 발전을 위한 공동합의문을 채택했다.
추진 배경은 부산과 경남이 행정통합을 통해 남부권 핵심 성장거점으로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 도약을 견인하고 신성장산업 육성, 인재 양성, 동북아 물류 플랫폼 조성, 광역교통망 구축 및 대중교통체계 개선 등에 협력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갈수록 수도권에만 돈과 사람이 몰려들고, 나머지 지역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지만 새롭고 참신한 제안은 아니다.
부산·울산·경남을 아우르는 동남권 통합 논의 자체는 ‘옛날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통합 제안은 역대 경남도지사의 단골 메뉴였다. 부울경 통합 제안은 2009년 김태호 전 도지사(현 양산을 국회의원)가 처음 언급했다. 그는 연두 기자회견에서 ‘동남권 대통합추진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당시 부산과 울산의 곁눈질조차 없었다. 당시 40대 후반 잠룡이던 김 전 도지사의 계산된 ‘정치적 발언’ 정도로 무시했다. 그는 “동남권은 수도권에 비해 세 마리 토끼 신세에 불과하다”면서 “동남권이 동북아 핵심 경제권으로, 한반도 제2경제권으로 성장하려면 한 마리의 호랑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두관 전 도지사도 2011년 3월 부울경을 묶어 ‘동남권 특별 자치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원래 같은 뿌리였던 부산과 울산, 경남의 행정과 경제, 생활권을 통합해 새로운 자치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구상은 기존 광역시·도 권한에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자치입법권과 자치경찰권까지 갖는 명실상부한 지방정부 형태였다.
여전히 부산과 울산은 냉담했다. 울산시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어지려면 정부, 정치권 등과 논의해야 될 사안이라며 뭉갰다. 부산시도 (당시)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웬 뜬금없는 소리냐’는 반응이었다.
역대 경남도지사 가운데 부울경 통합에 가장 많은 의욕을 보인 사람은 김경수 전 도지사다. 그는 통합 논의를 먼저 제안했고 부산과 울산이 호응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3개 시도는 행정통합보다 느슨한 특별연합(초광역 특별지방자치단체)을 추진했고 행정안전부는 2022년 4월 승인했다. 통합은 아니지만 연합이라는 기구를 통해 3개 시도가 공동 보조를 맞추고, 최종적으로 통합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그해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박완수 도지사가 취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실익 없는 ‘옥상옥’을 지적하며 특별연합 이탈을 선언했다. 울산시도 연합 탈퇴는 물론 통합 논의조차 거부했다.
이후 경남과 부산만의 통합논의가 시작됐다. 박 도지사가 제안하고 박 시장이 수용하는 형태였다. 지난해 7월까지 1년여 동안 추진한 결과 찬성 35.6%, 반대 45.6%로 나타났다. 통합 논의는 싸늘한 여론을 핑계로 무산되는 듯 했다. “다 된 밥이었던 특별연합도 뭉갰는데 법적 근거도 없는 행정통합이 되겠느냐”는 자조섞인 비아냥과 특별연합 좌초 책임을 물타기 하려고 되지도 않을 행정통합을 제안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수면 밑으로 가라 앉은 부산·경남 통합 논의가 올해 6월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박 시장이 제안하고 박 도지사가 화답하는 형식으로 바뀌고, 그동안 거론된 내용에다 연방제 ‘주’에 준한다고 포장했다. 오는 9월 통합안 마련과 내년 3월 여론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지난해까지 무산 수순을 밟던 통합 논의가 급행열차로 갈아타는 분위기다. 15년 전부터 논의돼 왔던 사안이고,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행정통합을 다시 꺼낸 이유가 뭘까?
이 대목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민선 5~6기 경남도지사 재직 시절 부울경 통합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구시장에 당선된 그는 대구·경북의 통합 지도자로 나섰다. 그는 올해 5월 페이스북에 대구·경북 통합 논의를 공개 제안했고,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화답하면서 빠른 속도감을 보이고 있다. 혹여, 대구·경북이 통합에 성공할 경우, 부울경 지도자들은 정치적 이슈 선점에 실패하고 리더십에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빠진 건 아닌지 궁금하다. 옆집 눈치보기 식으로 부산·경남 통합을 재추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끌려간다는 느낌은 더욱 싫다.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