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산공동어시장의 ‘골든 타임’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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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해양수산부장

10여 년 장밋빛 전망 무성 현대화 사업
노량진 관광 거점화 불구 ‘제자리 걸음’
총사업비 증액 한도 달해 마지막 기회
이권 다툼 땐 혈세 투입도 저항 불가피

10년 전 처음 찾은 부산공동어시장 기자실. 2~3평 남짓 공간은 대낮이 무색하게 그늘이 짙게 졌다. 책상에서 슬쩍 보이는 창문 밖 ‘뷰’는 강렬했다. 파란색 위판장 지붕에 흰색 페인트를 흩뿌린 듯 갈매기 떼와 배설물이 가득했다. 탁한 공기에도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올해 초 다시 찾은 어시장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기자실뿐 아니라 주차장에서부터 진동하는 생선 비린내, 생선 내장으로 미끈거리는 위판장 바닥도 ‘그때 그 모습’이다. 더는 향수를 자극하는 ‘부산다운 풍경’ ‘관광객 볼거리’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부산 시민이라면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2009년부터 총선, 지방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이었다. 지난 2012년 어시장 사장 선거 때는 5명 후보 모두 현대화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언론에서도 수년에 걸쳐 ‘착공한다’ ‘탄력받는다’ ‘본궤도 오른다’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시장은 그대로다. 그간 공영화가 무산되는 등 남모를 속사정이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현대화 사업은 정치적으로 이용만 당한 꼴이 됐다.

지지부진한 현대화 사업은 국내 수산업의 이미지도 갉아먹었다. 시설 노후화, 비위생적인 바닥 위판 방식은 생산 효율성을 낮출 뿐 아니라 수산물의 신선도를 떨어뜨린다는 우려를 샀다. 오죽하면 “부산공동어시장에 가 보면 고등어 먹기가 꺼려진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부산공동어시장과 비슷한 시기에 준공된 노량진 수산시장은 9년 전인 2015년 10월 현대화 사업이 준공됐다. 부산공동어시장은 1973년, 노량진 수산시장은 1971년 각각 현재 자리에 건립됐다. 물론 노량진 수산시장은 지금까지도 구 시장 상인과 서울시 간 갈등이 이어져 오고 있지만 시민의 소비 여건이 눈에 띄게 개선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국내 최대 산지 어시장인 부산공동어시장이 머뭇대는 동안, 노량진 수산시장은 인기 TV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에도 나오며 관광 명소로 도약했다.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는 올해도 어김없이 총선 공약에 올랐다. 초매식에선 박형준 부산시장이 “현대화를 차질 없이 추진해 체험 관광·물류 자동화를 두루 갖춘 최첨단 위판장으로 재탄생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과 7개 수협 조합장 등도 올해 상반기 착공에 뜻을 모았다. 물론 과거를 보면 단순 구호로 치부할 수 있지만, 관계 기관 모두 이번엔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올해가 사실상 현대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다. 기획재정부는 물가 상승분을 제외한 총사업비가 10% 이상 늘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현재 9.1%까지 사업비가 증액된 상태. 또다시 지연돼 공사비 등이 늘어 사업이 재검토되면 국비 비율이 지금(70%)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안 그래도 부족한 예산으로 임시 위판장 설치 여부를 두고 어시장과 부산시가 갈등을 빚고 있는데, 예산이 더 준다면 미래는 뻔하다. 현대화 사업 자체가 무산되거나 기약 없이 밀릴 것이다.

다행히 우려하던 물가 상승분 77억 원도 기재부와 줄다리기 끝에 올해 사업비에 반영했다. ‘대외 걸림돌’은 모두 해소됐다. 다만 부산시와 어시장, 수협 간 세부 설계안, 임시 위판장 설치 등을 놓고 ‘위태위태’한 내부 관계는 이어진다.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가 장기간 답보하면서 총사업비는 1700억 원에서 23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중 국비가 70%, 시비가 20%로, 현대화 사업은 명백한 공영개발이다. 어시장이든 조합이든 정치인이든 자신의 이권만 챙기려는 행태로 또다시 사업이 발목 잡히면, 시민도 더는 혈세 투입에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도 더는 ‘낚이지’ 않을 터.

부산공동어시장은 단순히 국내 수산업의 변천사를 간직한 지역 유산이 아니다. 연근해 수산물 유통의 30%, 고등어 위판량의 80%를 책임지는 국내 최대 산지 어시장의 명성은 ‘현재 진행형’이다. AI(인공지능) 등 신기술이 수산업에 접목되는 시대에 최소한의 ‘변화’조차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건 한순간이다.

현대화 사업은 원도심과 연계한 관광·견학 프로그램 개발, 주변 재개발 활성화, 수산업 벨트 조성 등 지역 경제에 미치는 부가 가치가 상당하다. 국내 수산업의 이미지 개선과 부산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더는 지체하면 안 된다. 현대화 사업으로 사라지는 야간 부녀반, 목재 어(魚)상자 등 유·무형의 유산은 기록을 통해 또 다른 볼거리로 활용될 것이다. 지역과 수산업을 모두 살릴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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