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정치 실종된 22대 국회
강희경 정치부장
21대보다 더 파행으로 가는 22대 국회
특검 탄핵 거듭, 극한 대립으로 치달아
국민의힘 전대, 참패 반성 없는 난타전
민주당, 제왕적 대표 체제 사당화 비판
민생 외면하는 여야 정치권 이전투구
건설·자영업·산단 등 지방 곳곳 경고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자기 전 누워서 여행 유튜브를 보는 게 취미생활이자 소소한 낙이 됐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볼 때마다 머리 아프고 나라를 걱정하게 되는 정치뉴스보다는 정신건강에도 좋다. 몇 달 전 한 유튜버의 중국 여행 영상에서 어떤 중국인이 뜬금없이 한국 정치보다 중국 정치가 더 낫다고 한 말이 가끔씩 떠오른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야로 갈린 정치권이 내 싸우기만 하는 한국보단,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는 중국 공산당이 훨씬 좋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공산당 1당 독재에 대한 황당한 자부심은 물론 어이가 없다. 중국에선 지금도 조금이라도 정부의 눈 밖에 나면 한동안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정치인 기업인 일반 국민 등 가릴 것 없다. 정부 비판 발언으로 그룹 자회사 지배권을 잃은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보면 그렇게 보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국내 여야 정치권이 늘 싸움박질하는 모습만 보이니, 중국 등 제3국에선 이러한 모습이 더 부각될 것이다. 미국과의 패권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고 부동산 경기 침체로 위기를 겪는 중국 당국이 첨단산업 육성 등에 매진하는 반면, 인구 위기와 고금리 보호무역주의 등 대내외 복합위기에 놓여 있는 한국 정치권은 자기들끼리의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고 평가받은 21대보다 지금 22대가 더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는 정치의 정의는 실종 상태다. 국가 권력 획득·유지에만 몰두할 뿐 국민들의 이해를 조정하기는커녕 정치권이 앞장서 거친 말을 내뱉으며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다.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야권은 각종 특검법과 탄핵안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 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야당의 최후 수단이었던 탄핵이 일상이 되고 있다. 특히 검사 탄핵은 이재명 전 대표의 사법리스크 방탄용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도 곧 열린다. 국민동의청원에 따른 청문회 개최는 유례가 없다. 일종의 사전정지작업인 청문회 개최가 탄핵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윤석열 정부를 더욱 무력화해 차기 대선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당이 절제 없이 빼든 탄핵은 앞으로도 정쟁의 주요 도구가 돼 정치 혼란이 가중될 게 뻔하다.
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의 연임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1인 체제가 더 굳어지는 모습이다.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바꿔 이 전 대표는 연임에 도전장을 던졌다.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하고 사법리스크를 최대한 방어하면서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이 당내에서도 나왔다. 여기에 시도당위원장 선출도 권리당원 비중 강화와 생소한 선호투표제 도입 등 팬덤 정치 강화로 친명계 약진이 전망된다. 제왕적 당대표, 1인 사당화에 대한 강도 높은 김두관 당대표 후보의 날선 비판이 일반 여론과 달리 당 내에서 얼마나 먹힐지는 의문이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는 더 가관이다. 원희룡 한동훈 후보 캠프를 중심으로 자해 수준의 폭로전, 비방전으로 흐르고 있다. 거대 야당의 노골적인 탄핵몰이에 대응하기는커녕 내전 수준의 자중지란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총선 참패를 성찰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할 장인 전당대회가 친윤(친윤석열), 친한(친한동훈)계 간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했다. 연금 개혁 등 정책 현안 논의도 실종 상태다. 여기엔 대통령실도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불거진 김건희 여사와 한동훈 후보 간의 문자 논란이 이번 사태의 주요 발단이 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민주당 지지율이 모두 30% 안팎에서 머무는 것은 일반 국민들이 어느 쪽 한 곳 마음 둘 데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세계적인 AI(인공지능) 붐으로 반도체 산업 등의 실적이 개선되며 수출을 비롯한 국내 경제지표는 조금 개선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날로 심해지는 양극화로 지방과 서민은 갈수록 더 힘들어지고 있다. 건설경기 악화의 직격탄을 맞은 부산은 외국인 노동자마저 외면할 정도로 산업단지는 무너지고 있고, 거리 곳곳은 상가 공실로 넘쳐나 자영업자의 무덤이 되고 있다. 민생경제의 경고음이 곳곳에서 요란하게 들린다. 그러나 정치권은 묵은 민생법안은 외면한 채 권력투쟁에만 열중이고, 이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온통 나라 걱정이다. 팍팍한 민생에 정치 걱정까지 해야 하는 국민만 더 피곤하게 됐다.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