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기후 소송을 기다리며 여름을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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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규 플랫폼콘텐츠부 차장

기후 변화는 과학이고 모든 과학은 암울한 전망을 가리킨다. “우리는 지구를 가지고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고 있다. 기후 지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갈 출구가 필요하다.” 이것은 극단주의자의 엄포가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의 논평이다. 남극 해빙은 역사상 가장 낮은 수위로 녹아내렸고 지구는 12개월 연속으로 역대 가장 더운 달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2028년 내에 지구 연평균 기온 상승 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한 번은 넘어설 확률이 80%라고 예측했다.1.5도는 전 지구적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한 마지노선이다.

모두가 1.5도의 의미를 체감하진 못해도 갈수록 사나운 폭염의 위력은 안다. 최근 가장 더웠던 2018년 고온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는 804명으로 2011~2020년 연평균(211명)의 네 배다. 특히 취약한 계층도 있다. 2022년 유럽 폭염 사망자(6만 1672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80세 이상이었고, 여성이 남성보다 63% 많았다. 스위스 환경단체 ‘기후 보호를 위한 노인 여성’은 이런 상황에 정부의 책임을 묻기로 한다. 지난 4월 유럽인권재판소는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제법원이 기후 변화 관련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첫 번째 판결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는 아시아 최초의 기후 소송이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소는 시민 255명이 참여한 헌법소원 네 건을 병합해 4월과 5월 두 차례 공개 변론을 열었다. 청소년 19명이 정부의 소극적인 기후 대응이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첫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4년 만이다. 청구인들은 탄소중립기본법 등에서 정한 2030년까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국제사회가 합의한 ‘1.5도’ 목표를 지키기에 불충분하고 2030년 이후에는 감축 목표조차 없어 생명권과 환경권, 행복추구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소극적인 감축 목표와 경로 설정으로 ‘1.5도’ 목표 전까지 쓸 수 있는 탄소 배출량(탄소 예산)을 당겨 쓰면 미래 세대에 대응 책임을 전가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도 소개했다. 같은 맥락으로 독일 정부의 2030년 감축 목표가 세대 간 형평성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결정이다. 이후 독일은 2030년 목표를 상향하고 공백이었던 2040년 목표도 신설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르면 9월 최종 결정만 남겨 놓고 있다. 결정에 따라 정부의 향후 대응은 달라질 수 있다. 정부 측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고, 미래에 기후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국가 조치로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변하지 않는 것은 코앞으로 다가온 기후 재난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정부에 책임을 묻는 기후 소송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다”는,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청구인, 서울 흑석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 양과 함께 기후 소송의 결론을 기다린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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