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금빛 개울의 전설
문계성
군자(君子)가 위정(爲政)하고, 철인(哲人)이 통치하는 사회는, 아무도 살아보지 못한 미지의 세상이다. 사람들은 이 현실을 부정하며 그 아무도 살아보지 못한 세상을 추구한다. 이상적(理想的) 사회라 부르며.
큰 산 아래 작은 호수가 있었다. 산 아래 위치한 까닭에 비가 내리면 산과 논밭으로부터, 황토, 거름과 비료 찌꺼기, 썩은 동물 사체가 흘러들어, 호수 바닥은 부토(腐土)로 쌓여 있었고, 물은 언제나 흐렸다. 그러나 이 부식물 찌꺼기로 인하여 큰 수초 더미가 형성되고, 그 속에 플랑크톤과 물이끼가 풍성하게 자랐다. 그래서 그것을 먹고 사는 새우 등 온갖 작은 곤충들이 서식했고, 그것을 먹이로 하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어울려 살았다.
어느 날 큰비가 내려, 산 위 개울에 살던 산천어 한 마리가 물살에 쓸리어 이 호수로 떠내려왔다. 평생을 산 위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랫바닥에서 살던 산천어는 온갖 더러운 찌꺼기들이 부유하는 호수에 들어오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래서 산 위 개울로 돌아가려 했지만, 호수와 개울 사이에는 몹시 높은 언덕이 가로 놓여 있어 여의치 못했다. 호수에 살게 된 산천어는 고향인 개울을 그리워하며, 호수의 물고기들에게 고향인 산 위 개울을 이야기했다.
“내가 살던 고향인 산 위 개울은 물이 너무 맑아! 햇살이 금빛 모래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났지! 그곳에는 작은 고기들이 모여 사는데, 몸이 늘 깨끗해, 그런데 이 꼴을 보아! 아무리 씻어도 이 더러운 냄새는 가시지 않아! 그리고 개울에서 먹던 작은 올갱이는 얼마나 맛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그런 깨끗한 먹이가 없네!” 호수의 물고기들은 산 위 개울을, 햇살이 금빛 모래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이 나고, 맛이 별난 올갱이 같은 것들이 살고 있는 낙원으로 상상했다.
벌레가 우글거리고
수초 더미가 있고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호수에
왜 하필 여기 정착했는지 알고는
그제서야 이주 계획을 포기했다는
그러자 호수의 고기들은,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숨 쉬고 먹어온 호수의 물이 냄새가 나는 썩은 물이고, 바닥은 온갖 더러운 찌꺼기들로 채워진 짓무른 흙이어서 지렁이 같은 더러운 것들이 기어다닌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고기들은 큰 고기들이 먹이를 다 먹어 치우는 바람에 늘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호수에는 웬 놈의 큰 고기가 이렇게 많아! 그 큰 고기들이 먹이를 다 먹어 치우는 바람에 우리 같은 작은 고기들은 항상 배가 고프잖아! 저 산 위 개울에는 작은 고기들만 산다던데, 그곳에 가면 큰 고기가 없으니 우리는 항상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텐데.” 이런 말들이 호수에 퍼지자, 큰 고기인 잉어는 이런 생각을 했다. “개울에는 큰 물고기들이 살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내가 가면 대장 하겠네!”
그래서 잉어는 산천어를 찾아가 개울의 사정을 자세히 묻었다. “개울에 나보다 큰 놈 있어?” “개울에 가면 자네가 제일 크지. 아마 자네가 대장이 될걸.” 잉어는 산 위 개울로 가면 대장이 되어 먹이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래서, 산 위의 개울은 작은 고기와 큰 고기 모두에게 꿈의 장소가 되었다. 자기들의 조상들이, 왜 저리 아름다운 산 위 개울에 자리 잡지 않고, 이 더러운 호수에 자리를 잡았는지 알 수 없다며, 조상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결국, 호수의 고기들은 모두 산 위 개울로 이주하기로 결정하고, 큰비가 내리면 그 물결을 타고 산 위 개울로 터전을 옮기기로 했다.
큰비를 기다리던 어느 날, 호수에서 새우를 잡아먹던 잉어는, 산천어에게 산 위 개울에는 어떤 새우나 지렁이가 살며, 이끼와 수초의 맛은 어떤지 물었다. 산천어가 말했다. “그런 것들은 이런 더러운 물에나 사는 것들이야! 산 위 개울에는 그런 것은 없어.” 잉어는 깜짝 놀랐다. “그런 개울에 가면 우리는 무얼 먹고 살지?” 개울에는 먹을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호수의 고기들은 한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곳에 그렇게 먹을 것이 없다니 믿을 수 없어!” 그제야 호수의 고기들은, 조상들이 왜 벌레가 우글거리는 수초 더미가 있고,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더러운 호수에 터를 잡았는지 알게 되었고, 산 위 개울로 이주하는 계획을 포기했다.
세월이 흘러, 산 위 개울로 이주하려다 포기한 고기들이 모두 죽자, 산 위의 금빛 개울은 전설로 남았다. “저 산 위 높은 곳에 금빛이 나는 아름다운 개울이 있데! 맛있는 올갱이라는 것도 살고….” 그러나 그곳에는 호수처럼 먹이가 많지 않다는 내용도 없고, 그래서 조상들이 그곳으로 이주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내용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