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쓰레기 줍는 오타니
이대진 스포츠부 차장
운동선수는 운동만 잘하면 될까. 올해 초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벌어진 한국 축구대표팀의 ‘탁구 사건’이 알려지면서 이강인 선수의 인성 논란이 일었다. 같은 값이면 인성 좋은 선수를 편드는 게 인지상정. 그런데 실력은 좀 모자라도 착한 선수, 성품은 그닥이지만 실력은 뛰어난 선수 중에 골라야 한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자를 택했지만, 최근 ‘이 선수’에 대해 알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미국 메이저리그(MBL)에서 뛰는 일본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다.
‘외계인’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우주 최강 실력을 갖춘 오타니는 인성도 ‘넘사벽’ 수준이다. 종종 야구장에서 쓰레기 줍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되곤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야구선수와 쓰레기라니. 언뜻 부조화스럽지만 ‘학생 오타니’를 알고 나면 이해가 된다.
오타니는 학창 시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꼼꼼히 계획표를 세워 실천한 일화로 유명하다. ‘만다라트 기법’으로 알려진 이 계획표는 가로세로 9칸씩 81개 네모칸 한가운데 최종목표를 놓고, 이를 둘러싼 8칸에 중간목표, 나머지 칸은 중간목표를 이루기 위한 64개 실행 계획으로 채우게끔 돼 있다. 오타니는 ‘드래프트 1순위’란 최종목표를 이루기 위해 몸만들기, 제구, 구위, 스피드 160km/h, 변화구, 운, 인간성, 멘탈 등의 중간목표를 세웠다. 흥미로운 건 중간 목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인간성’과 ‘운’, 그중에서도 운을 둘러싼 실행 계획이다. 인사하기, 물건 소중히 다루기, 긍정적 사고, 책읽기, 심판을 대하는 태도, 야구부실 청소 따위와 함께 ‘쓰레기 줍기’도 포함돼 있다.
오타니는 ‘남이 무심코 버린 행운을 줍는다’는 생각으로 쓰레기를 줍는다고 설명한다. 그의 계획표대로라면 쓰레기를 잘 주운 덕분에 남의 운까지 끌어모았고, 실력도 갖춘 야구선수로서 성공 신화를 이뤄낸 셈이다. 오타니의 ‘운 만들기’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에도 한결같다. 억울한 판정에도 심판을 향해 미소 짓고, 출루할 땐 자신 찼던 보호장구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볼 보이에게 건넨다.
오타니의 이런 면모를 알고 나니, 운동선수의 실력보다 인성에 더 마음이 간다. 최근 롯데 자이언츠 선수 중에서는 손호영이 눈에 들어왔다.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더그아웃에서 만난 그의 말과 행동은 한결같았다. 자신을 낮추고 동료 선수와 감독·코치진에 대한 고마움을 먼저 이야기하는 30살 늦깎이 신인을 보면서, 뜻하지 않은 트레이드로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지만 뒤늦게나마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속으로 건넸다. 한낱 출입 기자의 응원이 아니라 스스로 운을 쌓은 덕분일 테다. 손호영은 어느새 내야 주전 한 자리를 꿰찼고, 얼마 전 대선배 박정태의 31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넘볼 정도로 KBO리그에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자신만의 만다라트 계획을 실천하는 선수들로 가득한 팀을 상상해 본다. 그런 팀의 만다라트 계획표에는 ‘우승’이란 최종목표 주변 칸이 실력 좋고 인성은 더 좋은 선수들로 둘러싸일 테다. 2000년대 들어 세계 축구계를 양분했던 메시와 호날두. 신이 둘 중 메시에게만 월드컵 우승을 선물한 걸 보면 실력 말고 다른 차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롯데 우승을 염원하는 팬으로서, 사직야구장에서 쓰레기 줍는 선수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