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부산의 경제 생태계는 건강한가
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AI가 새로운 기술과 산업 생태계 주도
정부 위기의식 수도권 첨단학과 지원
부산은 뭘 준비해야 하는지 성찰해야
2022년 11월 30일. 인공지능(AI) 개발 기업인 오픈AI가 챗GPT를 발표한 날이다. 이날을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그 뒤부터 느껴야 했던 범상치 않은 흐름 때문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친구로부터 거의 매일 경제 기사 스크랩을 받는다. 경제 흐름이 급박할 때는 하루에도 몇 차례 여러 신문의 주요 경제 기사를 받을 때도 있다.
친구의 선호에 따라 경제 기사의 중요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강조되는 것들도 있다. 그렇지만 부지런한 친구 덕에 편하게 세계의 경제 소식을 읽는 것은 또 다른 기다림이기도 하다. 친구가 보내 주는 경제 기사에서 지난 1년 반 동안 일관되게 느꼈던 것은 AI 관련 기사의 폭발적 증가였다. 근래에 들어와 받는 경제 기사 스크랩에서 AI 관련 기사를 보지 않는 경우는 거의 손을 꼽을 것 같다.
그와 함께 매우 의아하게 생각해 오고 있었던 것은 이전까지 과학기술의 발달을 지칭하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최근에는 별로 들어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컴퓨터에 이어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세계가 연결되고 이를 토대로 기술의 진보와 산업의 혁신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던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최근에는 별로 쓰지 않는 것 같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경제학에서 공식적으로 정착된 적은 없었다. 보수적인 경제학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변화에만 혁명이라는 지위를 부여하여 왔고, 이후의 기술 발전은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현대의 일련의 기술혁명에 붙였던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사적인 용어의 사용까지 자제하게 만든 것은 AI 충격을 고려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AI는 단순한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그 자체가 새로운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 기업의 차원에서 보아도 두드러진다. 인공지능의 열풍을 타고, 존재 그 자체가 뉴스거리가 되고 있는, 엔비디아의 성장은 가히 충격적이다. AI에 필수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 세계시장을 사실상 거의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는 폭발적인 주가 상승으로 한때 애플을 넘어 세계 2위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엔비디아의 추격을 받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주가도 역시 인공지능 전략에 따라 등락을 보이고 있다. 발표하는 인공지능 전략의 전망에 따라 주가 총액 수위 자리를 주고받고 있다. 더욱이 우리에게 충격적인 것은 이들 기업 하나의 주가 총액만으로도 거의 세계 모든 개별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한때 제조업의 공동화로 미국 경제의 쇠퇴를 전망하였던 예측을 뒤집어 버린 이 거대한 흐름이야말로 경제 생태계를 선도하는 미국 기업들의 힘이라 할 것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세계 반도체 산업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삼성전자조차 AI의 흐름 속에서는 오히려 작게 보이는 새로운 현실을 보고 있다. 우리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각종 혜택을 주고 돈을 지원하고 또 수도권 대학의 첨단학과 학생 정원을 늘려 준 것도 이러한 위기의식에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기술과 산업을 따라잡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나아가 혁명적인 생태계 변화의 시기에는 그 흐름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산업과 기업의 지분을 차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전체가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의식은 글로벌 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에도 똑같이 타당하다.
세계 경제 생태계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에 적응하고 넘어서지 못하면 글로벌 도시로 발전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열려 있고 혁신적인 문화와 열정이 넘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도시는 땅을 파고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의 돈벌이를 향한 욕망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의 말을 빌린다면 ‘전염병같이 지루한 아파트의 집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정부의 글로컬 사업을 앞두고 부산시가 신라대, 동명대와 손잡고 시립대학원대학을 건립하기로 한 것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신선한 발상이다. 지역 경제를 이끌 청년 인재를 지역 대학과 함께 지방자치단체가 돈을 들여 양성하는 것은 부산의 경제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아주 좋은 방안이다.
정말로 건강한 경제 생태계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러한 노력이 더 많이 축적될 때 만들어지고 개선될 수 있다. 빠르게 도시가 늙어가고 있고, 수도권으로 쏠림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생태계가 척박해질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쏟아지는 정책 속에서 어떤 정책이 ‘부산의 경제 생태계에 도움이 될까’를 놓고 꼼꼼히 판단해 보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