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높새바람같이는
이영광(1965~ )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내겐 지금 높새바람같이는 잘 걷지 못하는 몸이 하나 있고,
높새바람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고
문질러도 피 흐르지 않는 생이 하나 있네
이것은 재가 되어가는 파국의 용사들
여전히 전장에 버려진 짐승 같은 진심들
당신은 끝내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서 꼿꼿이 죽어가지만,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시집 〈아픈 천국〉(2010) 중에서
비루한 몸, 비루한 생. 당신을 잃어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게 된 저문 하루. 그렇지만 당신을 향한 그리움은 더욱 올올하고 절절해지네. 무엇이 이렇게 누추한 삶의 한가운데에서도 노을에 물들어가는 저 하늘을 쳐다보게 하는가?
‘당신과 함께’한 날은 ‘높새바람같이’ 드높고 자유로웠지. ‘당신과 함께’라서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지. 당신으로 인해 내가 더없이 아름다워졌던 구도. 당신은 어디 있는가? 당신은 내 안의 심장, 내 청춘의 숨결, 내 영혼의 아니마. 시간은 그 모든 것을 쓸어 ‘재가 되어가’게 하네. ‘잘 걷지도 못하’고, ‘문질러도 피 흐르지 않는’ 노구(老軀)만 남겨놓게 하네.
그리워라, 내 안의 당신. 당신의 눈동자에 내가 다시 맺히면 아름다운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삶이 참 스산하다고 속삭일 수 있을까? 김경복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