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이야기] 식생활의 역습
손은주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영양팀장·동남권항노화의학회 식품영양이사
필자는 본 지면을 통해 세계 장수 마을과 장수 비결을 소개한 바 있다. 이 중에는 일본 오키나와도 포함되어 있는데 채소, 두부와 낫토·우메보시 등 발효 식품을 즐겨 먹으며 소식하는 식습관이 장수의 비결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 ‘2021년 오키나와 남성 평균 수명’은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중 32위를 차지했으며, 오랜 장수 신화는 ‘오키나와 패러독스’라는 불명예를 안고 추락하고 있다.
식습관의 변화가 주원인이다. 주일 미군기지 70%이상이 주둔하는 오키나와에는 패스트푸드점이 급속히 늘어 그 수가 도쿄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전통 건강식보다 햄버거, 스팸, 탄산음료 등의 고열량 고당질 식품 섭취가 늘며 비만과 당뇨병 유병률이 높아졌고, 이는 젊은 세대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슷한 예로 1999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 연구에 따르면 하와이로 이민 간 일본인의 대장암 유병률이 현지 미국인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미국 국립암연구소 저널에 발표된 이 논문에 따르면 하와이 거주 일본인의 대장암 유병률이 후쿠오카 본토 주민보다 약 3.5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결과의 원인으로 유전자 차이를 꼽았는데, 이민 후 육류 섭취를 즐기는 식습관으로 바뀌면서 일본 전통 건강식에 적합한 대사 유전자 간에 엇박자가 났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미국인의 고열량 고지방 식단을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고혈압이 이와 비슷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여느 타 인종에 비해 고혈압 유병률이 높으며, 고혈압 진단 연령대가 낮고, 중증 확률도 높다고 한다. 이는 유전자 때문인데 아프리카 땅은 소금이 귀했고, 물도 좋지 않아서 설사를 많이 했는데, 나트륨이 수시로 빠져나가는 환경 때문에 그들의 유전자는 소금을 최대한 가지고 있으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아프리카인들이 햄버거, 치킨, 피자 등 고나트륨 식품 섭취를 즐겨했으나 배출은 지연됐고 이로 인해 고혈압 유병률이 높아진 것이다.
이 외에도 에스키모인들이 곡식을 많이 먹으면 탈이 잘 난다는 등 비슷한 예들이 꽤 있다. 사람마다 건강의 디폴트값이 다르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젊은 연령층에서도 유방암·대장암 유병률이 높아지고, 고도 비만 또한 최근 10년 새 2.9배 증가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소아·청소년들의 당뇨·비만 유병률 또한 높아지고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식습관의 영향이 크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의 쌀 소비량은 30년 새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지난해 한국인의 육류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추월했으며, 밀가루 소비량 또한 꾸준히 늘고 있다. 각종 디저트가 유행하며 당 섭취 또한 높아지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두고 ‘웰빙’ ‘항노화’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즈음 위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각자의 식생활을 점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