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녹취 정치
정치부 기자
‘정치·업자·녹취’. 연관성 없는 세 단어가 한자리에 모이면 아마도 누아르 영화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정치인이 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경쟁 상대를 좌초시키기 위해 몰래 녹음한 사적 대화를 공개하는 그런 ‘클리셰’ 말이다. 그런데 오는 19일부터 후보 등록으로 본격적으로 레이스가 시작되는 부산시의회 의장 선거에서도 이 단어들이 핵심 키워드로 등장했다.
우선 부산시의회의 수장을 뽑는 선거에 업자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황을 종합하면 이렇다. 선배 정치인이자 업자 A 씨는 2년 전 부산시의회 의장 선거에 출마하는 B, C 후보를 만나 교통정리에 나섰다. 선배·동료 정치인이라는 이유에서 편하게 주고 받은 대화들을 누군가가 녹음해 이후 정치적으로 이용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2년이란 시간이 흘러 A 씨가 됐든 B 후보가 됐든 이들 음성이 담긴 녹은 파일이 부산 정가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나 B 후보가 본인 스스로 이러한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다닌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금의 정치 현실과 맞물려 안타까움은 더욱 커지는 부분이다.
정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상호 간의 신의가 있기 때문이다. ‘약속 뒤집기’를 용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정치는 생물이기에 언제든 상황이 복잡다단하게 변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에 서로의 복잡한 셈법 속에서 끊임없이 대화로 답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치에 몸담아온 시간이 수십년에 달하는 이 후보의 문제 해결 방식에서 정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 현실의 단편이다. 앞서 지난 대선 때는 당시 국민의힘 경선을 앞두고 이준석 대표가, 지난달에는 배현진 의원이 통화 녹음을 공개했다. 당시에는 국회의원뿐 아니라 정치권, 나아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녹음 포비아를 호소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기까지 했다.
여기다 두 사람과 B 후보의 공통점은 또 하나 있다. 모두 외부가 아닌 같은당 인사를 대상으로 이같은 선택을 내렸다.
누구보다 정치로, 대화로 풀어야 할 정치인이 사법부처럼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가 아닐까. 통렬하게 반성하기를 바란다. 특히 외부인이 시의회 경선을 휘젓는 것은 시민 눈높이에도 적절하지 않다.
협치가 사라진 대한민국 정치가 다시 정상화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배지의 무게를 아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