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20년 만에 소환된 이유는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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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근황 공개에 누리꾼 비난 쇄도
사법 정의 불신 사적 제재 횡행 배경
사건 상처 회복·치유 공동체 고민해야


20년 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한 유튜브 채널이 가해자들의 실명과 근황을 공개해 온라인에 급속히 유포되면서다. 피해자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한 명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고 지금도 잘살고 있다는 사실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사적 제재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폭주하는 등 파문이 일파만파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가 한때 일했던 것으로 알려진 경북 청도군의 식당. 이 식당은 위반건축물로 철거 명령 등 법적 조처가 내려졌고 현재는 영업정지 상태다. 연합뉴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가 한때 일했던 것으로 알려진 경북 청도군의 식당. 이 식당은 위반건축물로 철거 명령 등 법적 조처가 내려졌고 현재는 영업정지 상태다. 연합뉴스

∎온라인 가해자 실명 유포 후폭풍

유튜브 채널 ‘나락 보관소’는 지난 1일부터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재조명한다면서 가해자 2명의 신상과 근황을 공개했다. 해당 유튜브는 사건 주동자 A 씨가 결혼해 애를 낳고 잘살고 있다며 실명과 근황을 알렸다. 특히 A 씨가 일한 것으로 알려진 경북 청도의 한 식당이 1년 반 전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유튜브에 소개한 맛집으로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의 ‘별점 테러’가 쏟아졌다. 결국 해당 식당은 위반건축물로까지 확인돼 행정처분을 받았고 지난 3일 자로 영업을 중단했다.

또 다른 가해자 B 씨는 사건 후 개명하고 경남의 한 수입차 딜러사 전시장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딜러사는 B 씨를 해고했다는 입장문을 냈다. 경남경찰청 홈페이지에는 당시 가해자를 옹호하는 글을 남겼다 이후 경찰이 된 여성 C 씨를 비난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C 씨는 2004년 가해자 미니홈피 방명록에 “잘 해결됐나? 듣기로는 3명인가 빼고 다 나왔다더니만. X도 못생겼다던데. 고생했다. 아무튼”이라는 글을 남겼었다.

해당 유튜브 채널은 가해자들이 서로 자신은 빼 달라는 조건으로 제보하는 상황이라면서 추가 실명과 근황 공개를 예고했다. 또 다른 유튜브 채널들도 44명 전부의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파장이 확산될 전망이다.


2004년 12월 7일 울산남부경찰서에서 집단 성폭행으로 경찰에 붙잡힌 경남 밀양 학교 폭력배 30여 명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12월 7일 울산남부경찰서에서 집단 성폭행으로 경찰에 붙잡힌 경남 밀양 학교 폭력배 30여 명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20년 전 밀양에서 무슨 일이

2003년 6월 울산의 한 여중에 재학 중이던 피해자는 우연히 전화번호를 잘못 눌러 밀양의 한 남고에 재학 중이던 가해자와 통화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온라인 채팅을 통해 6개월간 관계를 이어가던 가해자는 2004년 1월 피해 여중생을 밀양으로 유인한 후 한 여인숙에서 집단 강간한다. 범행은 밀양의 비행청소년 조직이었던 ‘밀양 연합’ 소속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수십 차례 피해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하고 금품 갈취와 불법 촬영까지 일삼았다. 둔기로 여중생을 폭행한 후 집단 강간하고 휴대폰과 캠코드로 영상을 찍어 부모에게 알리면 인터넷에 영상을 퍼뜨리겠다고 협박하며 범행을 이어 간 것이다. 결국 피해 여중생의 이모가 이상해진 조카와 대화를 나누다 피해 사실을 알게 됐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경찰 수사로 범행에 직접 가담한 학생만 44명이 확인됐고 망을 보거나 범행을 촬영하는 등 범행에 동조한 이들도 75명으로 가해자는 모두 119명에 달했다. 피해 여중생 외에도 이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중생 1명과 여고생 3명이 추가로 수사 과정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2004년 12월 13일 울산 남부경찰서에서 밀양 성폭행 사건 수사와 관련 여성대책위원회의 항의 방문을 받은 울산 남부경찰서장이 피해자 인권보호에 소홀했다고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부산일보DB 2004년 12월 13일 울산 남부경찰서에서 밀양 성폭행 사건 수사와 관련 여성대책위원회의 항의 방문을 받은 울산 남부경찰서장이 피해자 인권보호에 소홀했다고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부산일보DB

∎가해자들 어떤 처벌 받았나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울산지검은 44명 중 7명을 구속기소하고 3명은 불구속기소했다. 20명은 소년부로 송치했다. 13명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됐다. 알코올의존증을 앓고 있던 피해 여중생 아버지가 5000만 원을 받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울산지법은 기소된 10명에 대해서도 부산지법 가정지원 소년부 송치로 결정 내려 사건은 일단락됐다. 당시 재판부는 사안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들의 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된 상태고 청소년들로 성적 호기심이나 충동적 집단 심리로 인해 저지른 우발적 측면을 참작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소된 이들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보호처분이 내려졌을 뿐 사건 가해자 중 단 1명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고 전과 기록도 남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솜방망이 처벌을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또 경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 여중생에 대한 신상 노출과 인권침해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여경 입회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피해 여중생을 가해자와 직접 대면시켜 지목게 하는 등 상식 이하의 조사가 이뤄졌다. 특히 한 경찰관이 “밀양 애도 아니면서 왜 여기 와서 물을 흐려 놓느냐. 네가 먼저 꼬리 친 것 아니냐”고 말해 큰 문제가 됐다. 가해 부모들이 피해 여중생을 찾아가 합의를 종용하며 막말하는 등 지역사회의 2차 가해가 심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피해 여중생은 신체적·정신적 트라우마로 우울증 앓고 자살을 기도하는 등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피해 여중생 무료 변론을 맡았던 강지원 변호사는 피해 학생이 받은 상처는 상상을 초월하며 아직도 고통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한공주'의 한 장면. 배우 천우희가 한공주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부산일보DB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한공주'의 한 장면. 배우 천우희가 한공주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부산일보DB

∎솜방망이 처벌에 불붙는 사적 제재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근황이 알려지자 인터넷상에는 이들에 대한 비난 글과 함께 ‘특검으로 발본색원하자’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피해자에게 꽃뱀 운운하던 가해자 부모를 밝혀내 망신을 줘야 한다는 격한 반응도 쏟아진다. 일부 가해자를 옹호하는 글도 있지만 대부분이 성토 글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온라인상에서 사적 제제가 횡행하는 것은 사법 정의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경찰과 검찰, 법원 모두 집단 성폭행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고 피해자만 만신창이가 된 것은 사법 시스템의 붕괴가 배경에 있다는 것이다. 법정 형량이 지나치게 낮은 문제도 지적됐다.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박철현 교수는 “우리의 형벌 체계가 범죄자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해 국민의 법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법원에 양형 기준도 있지만 법관의 재량 범위가 너무 넓어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게 심각한 문제다”고 밝혔다. 밀양 사건과 같은 청소년 범죄의 경우도 미국은 특정 범죄에 대해서는 청소년 자격을 박탈하며 형사 처벌하는 등 엄정하게 대응하는 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가해자 중심의 현행 사법 시스템을 피해자 중심으로 개혁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사적 제제로 사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명예훼손 등 법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자칫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할 수 있고 진위가 불분명한 정보일 경우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 오래 전 사건을 재조명할 경우 누구를 위한 행동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유튜브 가해자 공개도 피해자 동의 여부가 논란이다. 특정 사건의 상처와 고통이 양상을 달리하며 계속 이어지게 해서 분노와 적개심을 키우는 것보다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변화로 봉합되게끔 노력하는 것이 공동체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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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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