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강을 건널 수 있는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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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성 수필가

여인은 간절히 친구를 설득했다.
“네게 남은 가장 소중한 재산은 이 아들 둘이야!
힘들어도 아이들을 거두어 잘 키우면
아이들이 반드시 그 은혜를 갚을 거야!
아이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죽음이 삶의 연장인 것은, 육신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소멸하지 않는 영성 때문이다. 영성은 저세상도 창조한다.

어느 60대 후반의 독신녀가 죽었다. 이 여인은 기독교인이었고, 계명을 지키려 노력하며 살았다. 여인은 육신이 죽으면 영혼이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 나라로 간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도 죽으면 요단강 앞에 설 것이라 생각했다.

여인은 죽어서 곧바로 어떤 넓은 강 앞에 섰다. 여인은 이 강이 사람이 죽어서 건너는 요단강이라 생각했다. 강가에는 노를 저어가는 작은 나룻배가 있었으므로, 이 배를 타면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배 타기를 주저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강가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여인의 수호령(守護靈)이 강 앞에 서서 건너기를 주저하고 있는 여인을 발견하고는 여인에게 물었다. “왜 강을 건너지 않는가요?”

여인이 말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생전에 이 요단강을 건너 천국으로 갈만한 선행을 한 사실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강을 건널 용기가 나지 않아요.” 수호령이 말했다. “그렇지 않을 걸요! 누구에게나 선행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손에는 손등과 손바닥이 있듯이, 삶에는 선악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기억 속을 잘 뒤져 보세요.” 그러나 여인이 아무리 기억 속을 찾아보아도 이렇다 할 만한 선행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수호령이 대신 여인의 생전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여인의 친구가 찾아와 울부짖고 있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어! 아이들과 나는 버리고 말이야! 이제 살길이 막막해,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낼 수밖에 없어!” 여인은 겁에 질려 어머니 처분만 기다리는, 아무 힘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깊은 비애를 느꼈다. 그리고 힘없는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달아난 친구 남편에 대한 엄청난 분노와 혐오감이 일었다. 대체 아이들이 왜 그들의 하나님인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여인은 간절히 친구를 설득했다. “네게 남은 가장 소중한 재산은 이 아들 둘이야! 힘들어도 아이들을 거두어 잘 키우면 아이들이 반드시 그 은혜를 갚을 거야! 아이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여자 혼자 몸으로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친구는 여인의 간곡한 말을 듣고 돌아가 아이들을 품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거두어 키우라고 설득한 이 여인은, 그 친구가 남편으로부터 당한 참담한 배신에 몸서리쳤다. 이 사건으로, 이 여인에게 남자란, 방종하고, 무책임하고, 아무 데서나 욕망을 뿌리며 돌아다니는 천한 존재로 각인되었다. 그 충격으로 여인은 평생 독신으로 외롭게 살았다. 그리고 수호령은 아이들을 거두어 키운 친구의 삶을 추적해 보았다. 그 친구가 성장한 아들을 혼인시키며, 아들과 함께 너무도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수호령은 그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 여인의 기억 속에 띄웠다.

배신에 몸을 떨며, 참담하기 짝이 없는 절망 속에서 자식까지 버리려 했던 친구가, 자신의 간곡한 설득으로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혼인시키며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을 본 여인은, 자기의 외로운 삶을 보상받은 듯한 행복을 느꼈다. 여인은 너무 흡족하여 눈물을 흘렸다. 여인은 그제야 배를 탈 용기를 얻어 노를 저어 천국으로 가는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저승의 강을 건널 수 있는 조건도, 건너갈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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