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월을 기억하는 민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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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일 부산 민주공원 관장

64년 전 마산에서 3·15의거 일어나
부산 고교생 “독재정권 퇴진” 호소문
김주열 열사 주검 4·19혁명 도화선

민주화운동 기리는 부산 민주공원
25주년 맞아 기억투쟁 활성화할 것

올해 개관 25주년을 맞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 부산 민주공원. 부산일보DB 올해 개관 25주년을 맞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 부산 민주공원. 부산일보DB

기억투쟁. ‘역사는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기억이란 단순히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행위가 아니고 지나간 사실들을 나열한다는 뜻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의미를 가진 집단기억으로서 역사의 진실 문제와 맞닿아 있다. 강요되는 왜곡과 망각에 대항해 진실을 밝히는 활동을 기억투쟁이라 할 것이다. 기억투쟁은 소외되고 묻힌 기억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불러낸다.

곧 4월이다. 이달에 잊어선 안 되는 역사적 사건들이 있다. 특히 일부에서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일제 지배를 옹호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적만 미화하는 행태가 이어지는 오늘, 4·19혁명을 기억하는 의미는 각별하다.

“동포여 잠을 깨라! 짓밟힌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나라!” 부산의 고등학생들이 1960년 3월 24일 자로 발표했던 호소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의기에 찬 학생들은 “우리는 국가의 주인이다. 주인이 가져야 할 귀중한 열쇠들을 우리에게 고용당한 차인들에게 빼앗기고 있다”고 외치며 이승만 독재정권 퇴진운동을 일으켰다. 국민을 학살하고 부정부패에 몰입한 이승만 정권은 국민의 삶을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1960년 4월, 청년 학생을 비롯한 시민의 항쟁으로 이승만의 영구집권 음모를 막는 민주주의 승리와 민족통일 운동을 위한 새 역사가 창조되기 시작했으니 이를 4·19혁명이라 한다. 많은 희생이 따랐다. ‘피의 화요일’로 불리는 4월 19일, 전국적으로 186명의 사망자와 10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부산에서도 19명의 소중한 생명이 세상을 등졌다. 한 달 전 경남 마산에서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3·15의거가 일어나 9명이 사망하고 80여 명이 부상했다. 마산상고 입학생이던 김주열 열사도 이때 희생되었다. 김주열은 시위에 참가했다가 행방불명돼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시신으로 떠올랐다. 발견 당시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혀 있는 처참한 모습이었으며 이는 전국적인 분노를 촉발해 4·19혁명의 불씨를 당기게 된다.

김주열 열사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주범은 친일파 경찰 박종표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아라이 겐베이로 창씨개명하고 헌병보로 근무하였다. 악질 형사 노덕술에 비견되기도 하는 박종표는 애국투사를 박해한 범죄행위로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이후 반민특위 해산에 따라 형 면제로 풀려났다. 마산경찰서 경비주임으로 복귀한 그는 시민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으며 결국 김주열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일제 치하 애국투사를 탄압하고 독립운동을 방해한 친일 경찰이 해방 후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젊은이를 잔인하게 살해하였던 것이다.

이 사실은 친일파를 기반으로 한 역대 독재정권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독재자들은 정권 강화를 위해 친일세력을 필요로 했고, 친일파들은 독재의 비호 아래 ‘반공애국투사’ ‘근대화의 주역’으로 위장한 채 그 세력을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해 나갔다.

반면 민주화운동 세력은 독립운동의 맥을 이어 시민 지지를 받으며 성장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의열단 박재혁 의사와 함께 부산경찰서 폭파를 모의했던 최천택 선생이나, 신간회 동경지회 결성을 주도하고 청년운동 등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던 이종률 선생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부산에서 활동한 이 두 분은 독립운동가로서 4·19혁명의 주역으로도 활동하였으며 5·16 군사 쿠데타 세력의 박해를 받았다.

‘4월 민주혁명 희생자 위령탑’과 영령봉안소가 설치된 부산 중구 민주공원 들목에는 최천택 선생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민주공원 늘펼쳐보임방에는 이종률 선생의 유고와 안경이 전시 중이다. 또 민주공원 부속건물로 건립 중인 기록관이 내년 개관을 앞두고 자료를 이용한 연구와 교육 활성화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주공원은 1999년 ‘부산시민의 숭고한 민주 희생 정신을 기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살아있는 교육장’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시민의 휴식과 문화 활동에도 적합한 민주공원은 역사의 고비마다 자주독립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결정적 역할을 했던 부산시민의 헌신을 기억한다. 그 위대한 발걸음에서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미래를 배울 수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민주공원의 기억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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