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항만 정보화, 왜 이렇게 힘들까
이응혁 부산항만공사 국제물류지원부장
부산항에는 정말 많은 이해 당사자가 존재한다. 수출입 화주, 물류 회사, 트럭 운송사, 철도 사업자, CIQ(세관, 출입국 수속, 검역) 기관, 항만 현장 노동자(항운노조), 컨테이너 부두 운영사, 선사, 항만 부대 서비스 제공자(예선, 도선, 급유, 급수 등), 항만 당국 등 여러 주체가 만나고 부딪히며 상호 작용을 한다. 화주(화물의 주인)나 물류 회사는 컨테이너 화물의 수출 정보를 세관과 항만 당국에 신고하고 트럭 운송사 혹은 철도 사업자를 통해 항만에 가져다 놓는다. 트럭 운송사는 부두 운영사 측에 화물 도착 정보를 보낸다. 화물이 들어오면 부두 내 항만 노동자와 각종 기계 장비의 도움으로 선사가 운영하는 컨테이너 선박에 선적된다.
화물 선적을 완료한 선박은 부두를 떠나면서 줄잡이, 예선, 도선의 도움을 받아 출항을 한다. 바다를 건너 목적지 항만에 다다른 선박은 항만 당국에 입항 신고와 더불어 양하 또는 선적에 필요한 컨테이너 화물의 다양한 정보(양적하 물량, 최종 목적지 등)를 미리 부두 운영사에 전송해 신속하게 양적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또 선박이 정박해 있는 동안 급유나 급수, 혹은 선내 필요 물품을 공급받기 위해 항만 부대 서비스 제공 사업자에 도착 일정과 필요량도 미리 보낸다.
부두 내 이해관계사 정보 공유 체제 'PCS'
세계은행, 세계 우수 3곳 중 부산항 선정
뉴욕·뉴저지항만공사, 자매항 결연 요청
부산항, 해상 물류 혼란 해결사 역할 기대
이 모든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사이에 정보 교환이 원활해야 하며 최대한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계 유수의 항만은 항만 커뮤니티 시스템(PCS), 즉 항만 디지털 협업 플랫폼 구축에 노력했지만 성공적이지 않다. 이유는 당사자들이 정보 제공에 협조적이지 않고, 국가나 항만 당국이 강제할 수 없어서다. 글로벌 선사는 경쟁사에 정보가 노출될까 우려해 제공을 꺼리기도 하고, 전 세계에 컨테이너 부두를 운영하는 글로벌 부두 운영사는 해외 본사의 규정으로 인해 정보 제공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전 세계 모든 항만이 PCS 구축에 있어 수년 전까지도 성과를 내지 못했고, 부산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부산항만공사의 끈질긴 설득에 글로벌 기업들과 몇몇 우리 기업들이 협조를 했고, 100%는 아니지만 상당한 부분에서 실시간 혹은 과거 데이터를 제공받아 ‘체인포털(Chain Portal)’이라는 PCS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해관계자 설득의 키워드는 ‘윈윈’이었다. 정보를 제공하면 통합 플랫폼을 통해 취합된, 고도화된 정보를 다시 제공받을 수 있게 했다. 정보 제공 기업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부산항을 이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던 것이 돌파구였다.
지난해 11월 세계은행이 전 세계 PCS 우수 사례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중소 항만 PCS를 제외하고 글로벌 주요 항만 중에서는 네덜란드 로테르담항, 싱가포르항, 그리고 부산항이 뽑혔다. 부산항 PCS의 특징은 컨테이너 트럭의 정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선사, 부두 운영사, 트럭 운송사 정보 연계가 시작점인 것과 보안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부산항의 PCS 수준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수준이 되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지난해 11월 미국 뉴저지에서 개최된 한미물류공급망 콘퍼런스에서 뉴욕·뉴저지항만공사 항만 부문 대표가 “부산항과 자매항 체결을 제안한다”고 깜짝 요청했다. 이후 지난 4개월 동안 자매 결연 협의가 진행됐고 뉴욕·뉴저지항만공사 본사에서 부산항만공사와의 자매항 체결식이 이뤄졌다.
글로벌 물류 대란을 경험하면서 전 세계 항만들은 그 어느 때보다 PCS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PCS는 기본적으로 ‘항만 내’에서 발생하는 정보 및 데이터 플랫폼이다. PCS 자체도 항만 운영의 효율성 제고에 기여하기 때문에 당연히 해상 공급망 원활화에 기여하지만, PCS끼리 연결된다면 글로벌 공급망 혼란 완화에 더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산항에 입항 예정인 A선박이 앞선 항만에서 출항을 못하게 됐다면, A선박 입항에 맞춰 미리 장치장을 배치해 둔 부두 운영사는 난처하게 된다. 상호 연결된 PCS가 있다면, 대기 중인 B선박을 우선 접안시킨 후 장치장 배열을 변경할 수 있다. 부두 운영사는 선석을 놀리지 않아 매출이 늘고, B선박 대기 시간은 줄고, 화주는 B선박의 화물을 빨리 받게 되고, 부산항 시설 활용률이 높아지는 연쇄 효과를 얻는다. 그야말로 ‘윈윈윈윈’인 셈이다.
‘항만 내’ PCS 구축도 더딘 상황에서 PCS끼리의 연결은 먼 미래의 일일 수 있지만 글로벌 해상 공급망 혼란으로 인해 PCS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모든 항만 당국이 인지하고 있기에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수도 있다. 부산항이 앞으로 해상 공급망 혼란의 해결사 역할에 앞장설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