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삶의 표준 제시한 바이센호프 주거단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아트컨시어지 대표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공동주택. 이상훈 제공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공동주택. 이상훈 제공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한스 샤로운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건축가를 한자리에서 만난다는 설렘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주거단지(Die Weissenhofsiedlung)’를 한걸음에 달려갔다.

바이센호프 주거단지는 지금으로부터 97년 전인 1927년 독일공작연맹과 슈트트가르트시 지원으로 건설됐다. 독일공작연맹은 예술, 건축, 산업 간 통합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예술가와 건축가들의 단체였다. 이 단체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심각한 주택문제에 관심을 두고 새로운 건축 재료와 기술을 활용한 실험적인 주거단지 개발을 추진한다. 여기에 당시 30, 40대의 젊은 건축가 17명이 대거 참여하는데, 훗날 이들은 20세기 현대건축의 거장이라는 반열에 서게 된다.

20세기 최고 건축가 중 한 사람인 르 코르뷔지에는 철근 콘크리트와 같은 새로운 건축 재료와 기술을 통해 변화하는 근대 건축의 모습을 5가지 원칙으로 제시했다. 이 5가지 원칙인 필로티, 옥상정원, 수평 연속창, 자유로운 입면(파사드), 자유로운 평면은 바이센호프 내 르 코르뷔지에 주택에서도 구현됐다. 현재 이 주택은 전체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1927년 당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Less is More(적을수록 풍요롭다)”라는 명언을 남긴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바이센호프 계획과 건설 총감독을 맡았다. 그는 24세대가 거주하는 4층 규모 공동주택을 디자인했다. 장식을 최소화했기에 “Less is Bore(적을수록 지루하다)”라는 말로 비난도 받았지만, 기능적이면서 경제적이고, 또한 표준화와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어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다.

한스 샤로운은 베를린 필하모니 콘서트홀을 만든 건축가이다. 기능적이면서 유기적으로 설계된, 최초의 빈야드 형태의 콘서트홀로 공연장 건축의 새로운 원형을 제시했다. 바이센호프 건축 때도 건축물에 필요한 기능을 자연스레 도면에 표현했다. 거주자의 생활방식, 공간 이용 패턴, 부지 위치와 특성을 고려해 주택 각 공간의 형태를 결정했다.

바이센호프 프로젝트로 지은 총 33채의 주택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대부분 파괴되었고, 1980년대에 들어서야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돼 현재는 11채만 남아 있다.

거장들이 설계한 주택은 너무나도 평범했다. 하지만 지금의 눈높이로 평범해 보이는 공간과 기능은 당시는 새로운 시도였고, 현재까지도 유효한 방식이라는 점은 놀라웠다. 바이센호프 주거단지 개막식에서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는 집을 설계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을 설계했습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바이센호프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가들의 고민과 정신을 다시금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