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시장님! 부산에 살고 싶습니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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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 캐리어 추구하는 대퇴사의 시대
당장 투입 가능한 경력직 수시 채용
글로벌 인재 담을 부산 기업 극소수
전국 1000대 기업 중 28개 불과해
지역 대학생 인턴십 기회조차 갖지 못해
부산시·정부 기업 성장 전략 주도해야

“초격차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인재와 기업이 지역 발전의 원동력입니다.” 지난주 부산의 젊은 기업인, 교수 등과 함께 하는 독서클럽에서 한국 최대 헤드헌터 회사 대표를 강연자로 초청했다. 23년째 5000여 개 기업과 거래하면서 인재 채용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는 K 대표와 기업 트렌드와 부산 경제 현황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기업인, 교수들도 핵심 직원의 퇴사와 졸업생의 수도권 취업으로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오버랩되면서 대화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시작은 ‘대퇴사’였다. 어떤 그룹사에서는 2022년에 29세 이하 정규직 직원 1만여 명 중에서 3000~40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이젠 직원들이 직장이 아닌 직무 중심의 캐리어를 추구하면서, 잦은 퇴사로 평생직장의 시대가 저물었다.

‘얼굴 익힐 만하면 퇴사’하는 시대에 대응해 기업도 관리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고 한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천 명씩 신입사원을 채용해 인재를 키우던 관행에서 당장 투입 가능한 경력직 채용이 정착되고 있는 추세이다. 최근 헤드헌터 회사에는 이공계 박사학위에 글로벌 기업 경험을 가진 40대, 속칭 ‘슈퍼 엘리트’ 스카우트 요청이 잦다고 한다. ‘왜 그런 사람까지 필요하냐’라고 물으면 ‘기존의 인재, 과거의 시각으로는 글로벌 혁신이 안 된다’는 답이 돌아온다고 한다. 2023년, 대한민국 기업과 스카우트 시장의 현주소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 주제가 ‘부산’으로 급선회했다. 과연 부산에 글로벌 기업 경험을 가진 슈퍼 엘리트를 찾거나, 포진한 기업이 어디일까라는 고민이었다. “부산이 영남권 제조업의 중심지라 생각하고 해운대 센텀시티에 부산지사를 설치했지만, 생산직 알선 외에는 스카우트 요청이 많지 않아 놀랐다”라는 K 대표의 한마디가 불을 붙였다. 그날 〈부산일보〉 기사도 거론됐다. ‘전국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 중 부산 기업은 28개로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는 내용이었다. ‘2008년보다 절반 감소, 총매출 비중 1.2%’ 성적표는 부산상공회의소로서는 누워서 침 뱉기 같지만, 오죽했으면 저런 실정까지 공개했을까라는 절박함마저 느껴졌다. 그 와중에 한 기업 대표는 지난주 기업 상장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코스닥 거래소와 만난 자리에서 “부산에서 오랜만에 (상장 관계로)올라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술회했다. 실제로 전국 1696개 코스닥 상장 기업 중에서 부산은 42개에 불과해 인구 비례보다도 한참 못 미친 수준이라는 설명이었다.

과문한 탓도 있지만, 문제는 지역의 리딩 기업 상당수가 글로벌 인재와 경쟁력 확보, 기업 상장 등은 언감생심인 모양새다. 설상가상으로 학생들의 취업 환경은 더욱 열악하다. 지역 대학생들은 이력서를 채우기 위해 알 만한 서울 기업의 인턴십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실은 인턴십 채용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가기 일쑤라고 한다. 지난 5년간 부산의 화학, 소재·재료, 전기·전자 공학 등 첨단산업 분야 대학 졸업자의 70% 이상이 부산을 떠났다고 한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지역경제의 추락, 인재 유출에 먹먹할 따름이다.

인재를 담을 그릇은 기업이다. 알짜 기업이 있어야 고소득 일자리가 생기고, 그런 일자리가 있어야 청년들이 몰린다. 당장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 수도권 공기업 이전도 시급하다.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민간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 전통 제조업과 해양수산업, 건설업 등 기존 산업의 활성화·첨단화와 함께 블록체인 클러스터 조성, 에어부산 분리매각을 통한 부산 거점의 LCC 등 항공산업 성장, 전력반도체 및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투자가 절실하다. 그런 경제 창출을 위한 규제 완화와 특구 설립, 세금 및 전기세 특혜, R&D 및 수출 지원, 풍요로운 주거와 문화 조성 등은 부산시와 중앙정부, 대학의 몫이다. 그 모든 것을 박형준 부산시장을 필두로 한 부산시의 치밀한 전략과 정치력, 에너지가 추동해야 한다.

기업 성장이 멈추는 것은 임직원의 역량이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모든 기업의 문제는 사람에서 시작되고, 사람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역의 성장이 멈추는 것은 결국 ‘임직원’의 역량 탓이다. 지역이 더 이상 저렴한 인건비와 3D산업으로 싸우는 생산 기지가 아니라, 초격차 수준의 세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세상을 뒤바꾸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 이를 실행하는 기업이 필요하다. 그 뒷배가 부산시와 중앙정부, 대학이다. 하루아침에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국가균형발전 철학과 부산시의 추동력, 기업의 혁신이 뒷받침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하루빨리, 서울 대기업으로부터 “일 시킬 만하면 다들 부산으로 가려고 안달”이라는 탄식을 듣는 날이 오면 좋겠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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