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지방시대' 대통령과 함께 못할 자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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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피게레스 ‘바람’ 창작 원동력
극장미술관 전 세계 관광객 몰려
부산 ‘촌동네’ ‘시골’ ‘바람’ 비하 발언
대선 캠프 출신 인사 망언 전국 술렁
윤석열 대통령 국정 모토 무색케 해
지방 없는 서울과 한국, 미래 있을까

한국관광공사 이재환 부사장이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MBC 유튜브 캡처 한국관광공사 이재환 부사장이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MBC 유튜브 캡처

“시도 때도 없이 부는 바람이 피게레스 주민들의 억센 성격을 만들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 피게레스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고향이다. 피게레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달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예술인과 교류하면서 미국 뉴욕 등 세계를 누빈 뒤 고향으로 돌아왔다. 달리는 자서전에서 “바다와 햇살이 내리쬐는 환상적인 고향 해변에서 빛과 색채를 향한 욕망을 채우고, 그 아름다움을 옮기려 했다”고 회고했다. 피게레스 ‘달리 극장미술관’에는 그의 시신이 안치돼 있고, 작품이 대거 전시돼 있다. 피게레스와 극장미술관은 ‘괴짜 천재’ 달리를 추억하려는 전 세계 관광객들로 언제나 인산인해다.


바람과 바다, 햇살이 세계적인 예술가의 창작 원천이자 관광자원인 셈이다. 하지만, 같은 ‘바람’도 한국에서는 ‘촌동네’에만 부는 성가신 자연 현상이다. 한국관광공사 부사장 이재환 씨 이야기다. 서울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상임자문위원을 맡았다는 이 씨는 지난 8월 말 한국관광공사 홍보회의에서 ‘한국방문의 해’ 기념행사를 부산에서 추진한 것을 두고 “내가 거기 가봤더니, 막 폭풍우 치는데, 바람 때문에 설치도 안 돼”라고 비아냥댔다고 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내용이다. 이 씨는 한술 더 떠 “뭐야, 왜 거기서 한 거야, 동네 행사해”라며 “지금 부산 깔아주는 거야. 그것도 부산 촌동네, 그 시골에…”라면서 직원들을 질책했다. 2030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열기를 확산하려는 그 행사는 이후 미국 뉴욕과 서울 여의도로 이어졌다. 지방 소도시까지 관광의 뉴 프런티어로 삼아 외국인 방문을 늘리고 지방을 살리겠다면서 팔을 걷어붙인 이웃나라 일본과는 영 딴판이다.

이 씨의 망언 사건 보름 뒤인 지난달 14일 윤 대통령은 부산에서 열린 ‘지방시대 선포식’에 참석해 “지역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면서 “대한민국 전체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서울과 부산이라는 두 개의 축이 작동돼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또, “모든 권한을 중앙이 움켜쥐고 말로만 지방을 외치는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했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공기업, 국회, 국책연구기관 등에 산재한 ‘제2, 제3의 이재환들’로 인해 대통령의 지방시대 선언은 빛이 바랬다. 사실 지금까지 부산 등 비서울에서 무엇을 하려고 해도 ‘촌동네가 뭘~’이란 ‘이재환들’에 막힌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청년들은 교육과 취업 기회를 찾아 서울로 떠나고 있다. 그들을 붙잡을 좋은 일자리 확충도 백년하청이다. 산업은행 부산 완전 이전을 위한 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내년 총선 이후로 넘어갈 상황이다. 올해 역대 최대 규모라는 세수 결손의 가장 큰 피해자도 지방이다. 전체 연구·개발(R&D) 예산 감소폭은 13.5%인데, 지방의 R&D 예산은 무려 67.3%나 깎였다. ‘촌동네’는 머리 대신, 몸이나 쓰라는 ‘이재환식’ 사고이다.

이 모든 것이 당론마저 부정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몽니 탓일까. 여당인 국민의힘과 중앙정부에 ‘이재환들’이 포진한 원인이 더 크다. 그들의 눈에 지방은 텃밭에서 야채나 뜯고, 바다에서 고기 잡아 회쳐 먹고, 힐링하는 ‘삼시세끼’ 예능프로그램 장소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서울이라는 이유로 지방을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우월감을 가지는 망국적인 불치병이 심화되고 있다. 지방의 박탈감과 모멸감은 일상사가 됐다.

“어떻게 올라온 서울 길이었던가…이 자랑스러운 도시의 시민이 된 영광…다시 쫓겨나게 되어서는 안 된다.” 소설가 이청준은 1960년대 중반 문단 데뷔로 서울에 간신히 입성했던 시절을 이렇게 그렸다. 무려 60년 가까이 지난 오늘 서울 집중의 파멸적 문제는 더 커졌다. 그 사이에 부산 인구만큼이 하루에 3~4시간씩 전철과 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퇴근하는 국가적 낭비가 매일 반복될 정도이다.

피게레스의 바람과 바다가 살바도로 달리의 예술을 만들었다고 한다. 부산에도 바람이 불지만, 피게레스보다 못한 모양이다. 바람이 부는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서울을 떠받친 것이 지방이다. 30년 후 지방이 사라진 서울과 한국은 지속 가능할 것인가. 이 씨가 친하다고 주장하는 ‘원희룡(국토교통부 장관) 선배, 15년 지기 오세훈 서울시장’, 그를 낙하산에 태워 한국관광공사 부사장에 최종 임명한 윤 대통령의 대답이 궁금하다. 부산의 거친 바람이 부산의 드센 성정을 만들었다. 민심의 바다에 바람이 불면 백파가 일고, 폭풍우가 덮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부산 앞바다에 먹구름이 몰려든다. 어찌 부산뿐이랴…. 바다를 낀 국민의힘 부산시당 유리창부터 단속해야겠다. ‘촌동네 바닷바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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