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부산 경찰, 캄보디아에 대포 통장 공급한 범죄 조직 검거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도 높은 법인통장 95개 개설
피해액 약 4000억 원 '최대 규모'
조직 탈퇴하려 하면 흉기로 협박
한국인 17명 검거해 4명은 구속

경찰이 압수한 법인 명의로 개설된 대포 통장들. 부산 해운대경찰서 제공 경찰이 압수한 법인 명의로 개설된 대포 통장들. 부산 해운대경찰서 제공

자금 세탁을 위해 유령 법인 명의로 약 100개의 대포 통장을 만들어 캄보디아 범죄 조직에 공급해온 범죄 조직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이 제공한 대포 통장에 입금된 범죄 피해액은 약 4000억 원에 달한다. 최근 잇따르는 캄보디아발 피싱 범죄 수익 규모로는 최대 규모다.

9일 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유령 법인 명의로 대포 통장을 만들어 피싱 조직에 넘긴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 사기, 업무방해 등)로 조직원 17명을 검거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모두 한국인이며 4명은 구속됐다. 대부분 20~30대의 젊은 나이다. 해외로 도주한 3명에 대해선 여권을 무효화하고 지명수배와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했다. 도주한 3명은 총책, 부총책, 캄보디아 해외 조직원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70개의 허위 법인을 만든 뒤 95개의 법인 통장을 은행에 개설했다. 이후 은행에 법인 이체 한도 상향을 요청했다. 개인 계좌로 개설된 통장의 이체 한도는 1회 1억 원, 1일 5억 원이지만 법인의 경우 통상적으로 1회 10억 원, 1일 50억 원의 한도를 가진다. 이들이 만든 허위 법인 업종은 미용·의료·자동차부품 등으로 다양한데, 한도 상향을 위해 세금계산서, 물품거래계약서 등 사업 증빙 자료를 위조·조작해 만들었다. 은행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통장 개설 때마다 모두 다른 전국 은행 지점을 방문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들 일당의 주범들은 법인통장 개설에 필요한 대표 명의를 빌려줄 조직원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모집했다. 대부업 광고 글을 게시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연락이 오면 신용 등급이 낮아 대출은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대신 조직원으로 일하며 법인통장 개설에 협조하면 돈을 주겠다고 꼬드겼다. 조직 탈퇴를 원하는 경우엔 흉기로 협박하며 탈퇴를 막기도 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의 수익금이 이들 통장에 지속적으로 입금됐는데, 경찰 추산 총 3900억 원에 달한다. 사기 피해자가 직접 입금한 돈과 자금 세탁을 위해 입금된 돈을 합한 금액이다.

경찰에 따르면 통장 명의를 빌려준 이들은 통장이 사용된 기간에 따라 수수료 명목으로 한 달에 300만~500만 원을 받았다. 가장 많은 수수료를 받은 직원은 총 3000만 원을 받기도 했다.

이들 조직은 필요한 모든 과정을 메뉴얼로 제작해 통장 대여자들을 교육했다. 경남에 사무실, 숙소를 마련했고 경찰 수사를 받을 때를 대비한 문답지까지 마련돼 있었다. 보안에도 신경을 썼다. 이들은 서로 가명을 사용했다. 연락이 필요할 때는 텔레그램 메신저를 사용하는 등 수사망을 피하고자 노력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신고를 통해 사건을 최초 인지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6700만 원 상당의 피해 신고가 들어왔고 계좌 추적을 통해 법인 계좌로 돈이 입금된 걸 인지한 뒤 수사를 확대했다.

경찰은 이들 통장의 지급 정지를 신청했으며 연계 조직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추가 범죄 예방을 위해 지난달 금융감독원에 법인통장 한도 증액 시 서류 검증 절차 표준화 매뉴얼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법무부에는 유령 법인 해체 권한을 경찰에도 부여할 것을 요구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도가 높은 법인 명의 대포 통장이 범죄에 사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범행을 막기 위해선 법인 명의 통장 개설과 한도 증액 과정에서 은행의 철저한 심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