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유치’ 대신 ‘인재 유턴’… 워케이션, 지역 매력 체험 기회로 [도시 부활, 세게에서 길 찾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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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일본 하코다테시·기타미시

사업 목표 ‘이주 정책’으로 전환
숙박·교통 등 늘며 체류 소비 ↑
기업 59개·882명 추가 고용 효과
‘도쿄 번잡함 벗어난 고품질 삶’
자발적으로 몰려드는 환경 조성

하코다테·기타미시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 등의 매력으로 인재를 끌어 오는 워케이션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하코다테시의 하코다테 항구, 하코다테시의 공동 작업 공간 ‘하코웍스’, 기타미시의 공유오피스 ‘새틀라이트 오피스’(왼쪽부터 시계방향). 하코다테·기타미시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 등의 매력으로 인재를 끌어 오는 워케이션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하코다테시의 하코다테 항구, 하코다테시의 공동 작업 공간 ‘하코웍스’, 기타미시의 공유오피스 ‘새틀라이트 오피스’(왼쪽부터 시계방향).

일본 열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홋카이도. 그중에서도 도쿄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하코다테시와 기타미시는 만성적인 인구 유출과 미약한 산업 기반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거대 도시의 자본과 인력이 빨아들이는 힘에 대항하기 위해 이 도시들이 선택한 것은 전통적인 방식의 ‘기업 유치’가 아닌 지역색을 살린 ‘인재 유턴’이었다. 이 두 도시의 전략은 지리적 약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지역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하코다테의 ‘워케이션 실험’

홋카이도 남부에 자리한 하코다테시는 유럽풍 건축물과 아름다운 항구 야경이 공존하는 관광 도시다. 하코다테시는 관광객 발길이 끊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기회 삼아 기업 유치의 일환으로 워케이션 사업을 전격 도입했다. 공유 오피스 등 인프라를 정비하고 수도권 기업을 대상으로 모니터링 투어를 진행하는 등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하코다테시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개년에 걸쳐 모니터링 투어를 진행한 결과 총 101개사 158명의 기업과 텔레워커가 하코다테를 찾았다.

다만 워케이션 사업이 실질적인 기업의 유치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사업의 방향도 달라졌다. 하코다테시청 기획부 니시 고이치 과장은 “워케이션은 기업 유치의 계기가 될 수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기업 본사 진출을 결정하기는 어려웠다”며 “이에 2024년부터는 워케이션 사업의 목표를 ‘기업 유치’가 아닌 ‘이주 정책’으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기업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이다. 워케이션만으로는 기업 본사 이전을 이끌어낼 수 없는 점을 인정하고 장기적 체류에 집중해 궁극적으로 수도권 인재의 이주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워케이션이 만든 소비의 선순환

워케이션 사업에서 하코다테시가 체감한 효과는 ‘체류의 소비’다. 당초 기업 유치를 기대하고 시작한 사업이었으나 성과는 오히려 상권 활성화로 드러났다. 고이치 과장은 “체류자들의 음식·숙박·교통·관광 등의 소비가 증가하면서 지역 상점이나 서비스업의 매출 향상에 기여했다”며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관광 도시라는 점이 다 지역보다 유리한 차별점이라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코다테시 상점가 협의회의 상인 나카이시 쇼고 대표도 “여행이 아니라 머무르러 온 사람들은 소비 방식이 다르다”며 “동네 식당, 카페, 서점, 심지어 목욕탕까지 꾸준히 이용한다”고 말했다.

방향성을 튼 하코다테시는 단기적 체류가 장기적 거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머무르고 싶은 도시’를 조성하는데 집중했다. 수도권 기업의 현지 시찰 비용을 지원하는 입지 환경 조사 보조금, 위성 오피스 신설·운영 비용 지원을 지원하는 지방 거점 개설 보조금, 설비 투자·임대료·고용 증가에 대한 비용을 지원하는 기업 입지 촉진 조례 보조금이 대표적 예시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하코다테시는 총 59개 기업을 유치하고 총 882명의 추가 고용을 만들어냈다.

■‘살면서 일할 수 있는 도시’ 기타미

하코다테시가 관광 도시로서 기반을 활용할 수 있었다면 홋카이도 동부의 기타미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화려한 관광객 대신 조용하고 깨끗한 주택가가 주를 이룬다. 기타미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 비용과 쾌적한 환경을 바탕으로 유턴 인재와 원격 근무자 유치에 집중하고 있다.

기타미시는 지역 내 대규모 산업 클러스터나 제조업 기반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오히려 ‘도쿄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고품질의 삶’이라는 강점으로 전환했다. 지자체 주도의 대규모 보조금보다는, 텔레워커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기타미시에는 IT 기업 직원들이 지역의 낮은 물가와 우수한 치안 등을 이유로 자체적으로 거점을 마련하고 생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타미시 주민들은 “도쿄의 살인적인 물가 대신 이곳의 깨끗한 환경과 여유를 택했다”고 입을 모았다. 지자체의 대규모 보조금 약속이 아닌, ‘좋은 삶의 질’이라는 무형의 자원이 인재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기타미시의 지원책도 인재 유턴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기타미시는 최근 지역 대학과 기업을 연결해 원격근무자를 위한 소규모 커뮤니티 오피스를 운영하고, 지역 기업과 외지 인재를 매칭하는 이주 인턴십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기타미시 관계자는 “젊은 세대가 지역을 잠시라도 경험하면 다시 돌아올 확률이 높아진다”며 “일단 와 보게 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홋카이도의 두 도시 사례는 단순한 ‘기업 유치’가 아닌 ‘인재 유치’를 위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워케이션을 통해 인재가 지역의 매력을 체험하고 이주를 결심하는 디딤돌을 만들고, 이후 기업이 인재를 따라 지역으로 이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코다테·기타미시(일본)/글·사진=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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