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 탓" "일시적 조정"… 코스피 급락 놓고 엇갈린 해석

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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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거래일 만에 ‘사천피’ 무너져
‘AI 버블 논란’ 등 리스크 영향
2000년 ‘닷컴버블’ 재현 우려
실적 견조해 상승세 전망 엇갈려

4000선을 반납했던 지난 7일의 코스피 지수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표시된 모습. 연합뉴스 4000선을 반납했던 지난 7일의 코스피 지수가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표시된 모습. 연합뉴스

연일 상승 랠리를 지속하던 코스피가 미국발 ‘인공지능(AI) 거품론’ 탓에 제동이 걸렸다. 폭락장을 보였던 2000년 당시의 이른바 ‘닷컴버블’이 재현되는 것 아니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AI 거품론을 기우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닷컴버블 때와 달리 AI 기업들의 호실적으로 기초체력(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이유에서다.

■AI 버블론에 사천피 ‘열흘 천하’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일 코스피 지수는 3953.76으로 ‘사천피 시대’를 연 지 10거래일 만에 4000선을 반납했다. 연일 치솟던 코스피가 최근 상승세를 멈춘 배경으로는 AI 고평가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NH투자증권 나정환 연구원은 “AI 버블 논란과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기대 약화 등 주요 리스크 요인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5일 미국발 AI 버블 논란으로 국내 증시가 7개월 만에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 효력 정지)가 발동된 ‘검은 수요일’에 이어 후폭풍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일각에서는 AI 관련 주식의 급등세에 따른 주식시장의 열기가 닷컴버블 시기(1998~2000년)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연초 대비 64.8% 오른 코스피는 1998년 상승률(45.9%)을 넘어 1999년 기록(74.9%)까지 점차 격차를 좁히고 있다. 이듬해 닷컴버블이 터진 2000년 코스피 지수는 연초 대비 50% 이상 폭락했다.

뉴욕증시 3대 지수 중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도 과거 1995~1999년 5년 연속으로 20% 이상 올랐다. 2023년과 2024년 상승률은 각각 24.2%, 23.3%다. S&P500지수가 2년 연속 20%대 상승세를 기록한 것은 닷컴버블 시기가 유일하다. 올해 파죽지세로 오르던 코스피 장세를 지켜보며 시장은 이번 AI 거품론을 닷컴버블과 같은 전조 증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특히 전문가들은 AI 관련주 ‘쏠림’ 현상이 닷컴버블 때보다 극심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AI 관련주라면 ‘묻지 마’ 매수하는 상황이 과거 닷컴버블 장세와 닮았다는 진단이다. S&P500 시가총액 상위 20개 사 비중은 52%로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 중 과반이 AI 산업과 연관돼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세계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AI 대형주의 시총 집중도가 과도하다”며 “기술주의 수익이 높은 가치를 정당화하지 못하면 급격하고 날카로운 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내년 코스피, 최대 7500선 간다”

AI 거품으로 보기엔 아직 시기상조라는 낙관론도 만만치 않다. AI 주도 기업들의 실적과 사업 기반이 닷컴버블 당시와 달리 건재하다는 분석에서다. IBK투자증권 변준호 연구원은 “이번 AI 거품론은 ‘어닝 쇼크’(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실적)나 투자심리 위축 등 펀더멘털 리스크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며 “펀더멘털이 뒷받침되는 한 (국내 증시의) 급락세가 장기화되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이용자 수가 7억 명으로, 월 매출 10억 달러(한화 약 1조 4000억 원)를 돌파했다. AI 기반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팔란티어는 올해 2분기 상업 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3%나 늘었다. 닷컴버블 당시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변변한 매출을 내지 않는데도 시장의 분위기에 휩쓸려 돈이 몰리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얘기다. KB증권 김동원 리서치본부장은 “2025년 AI 산업과 1999년 닷컴버블 비교 논란은 시기상조로 판단된다”며 “1999년 당시 미국 정부 정책에 따른 시장 환경과 닷컴 업체 펀더멘털 등이 현시점과 분명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AI는 지난 40년간 글로벌 IT산업의 성장 변곡점을 고려할 때 PC(인터넷), 모바일(아이폰) 이후 세 번째 산업 혁명으로 판단되는데 PC와 모바일 산업의 경우 태동 이후 10~15년간 장기간 고성장을 지속했다”며 “그러나 AI 산업은 2022년 11월 챗GPT 공개 후 불과 3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AI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AI 산업과 닷컴버블 비교 논란은 비현실적”이라고 부연했다.

결국 이번 코스피 지수의 급락은 과열된 시장의 일시적인 조정으로 ‘숨 고르기’ 장세에 들어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된 의견이다. 시장의 우려와 달리 증권가에서는 코스피의 상승 여력이 충분하기에 강세장이 지속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KB증권은 내년 코스피 지수 최상단을 7500선으로 국내 증권사 중 가장 높게 제시하기도 했다.



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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