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작년 부산 하도급 공사 금액 중 3조 원 이상 역외로 ‘줄줄’
지역 전체 물량 절반 넘게 유출
민간 공사 비중은 30%대 불과
‘70% 이상 권장’ 시 조례 무의미
대기업 상생 약속, 구두선 불과
지난해 부산 지역 하도급 건설 공사 물량의 절반 이상을 수도권 등 타 지역 업체가 차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에만 3조 원이 넘는 돈을 타 지역 하도급 업체가 가져갔는데, 특히 아파트 등 민간 공사의 경우 부산 하도급 업체의 비중이 38%에 불과했다. 관련 조례가 마련돼 있는 만큼, 부산시가 민간 건설 현장 전수조사 등을 실시해 부산 업체 하도급률을 제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대한전문건설협회 부산시회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 지역 전문 건설공사액(실적신고 확정 기준)은 5조 5957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부산 업체의 비중은 46%(2조 5699억 원)에 불과했고, 수도권 등 타 지역 업체는 54%(3조 258억 원)로 과반을 넘겼다. 부산 하도급 업체의 비중은 2022년 53.7%, 2023년 50.5% 등으로 매년 조금씩 줄고는 있었지만 절반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지난해 4조 1600억 원에 달했던 부산 지역 민간 공사에서 부산 업체들은 겨우 38.7%(1조 6130억 원)만 차지하며 극히 저조한 실적을 나타냈다. 공공기관(공사, 공단 등) 발주 공사에서도 부산 업체는 36.8%(1497억 원)에 그쳤지만, 부산시나 각 구·군 등 지자체가 발주한 공사에서는 부산 업체가 79.9%(6144억 원)를 가져가며 비교적 선전했다.
부산의 대표적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인 만덕~센텀 도시고속화도로(대심도) 공사에서도 지역 하도급 업체는 소외됐다. 협회에 따르면 이 사업에 참여한 지역 하도급 업체 비중은 7%를 넘지 않는다.
부산의 한 전문건설업체 대표는 “건설사들이 수주를 따낼 때는 ‘지역 전문건설업체와 협력하겠다’고 감언이설을 늘어놓지만, 막상 뚜껑을 열면 수도권 업체들이 주를 이룬다. 대심도 공사도 마찬가지였다”며 “의무 조항 없는 상생 약속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조례를 통해 지역 하도급 업체 사용 비중을 정하고 있지만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 ‘부산시 지역 건설 산업 활성화 촉진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지역 건설산업의 사업자는 하도급 업체의 지역 비율을 70% 이상 확보하도록 권장한다. 그러나 민간 공사에서 지역 업체의 하도급률은 30%대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부동산 침체 장기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 수입 원자잿값 상승 등 대내외적 악재로 종합은 물론 전문건설사들의 수주 실적이 크게 줄고 있다. 이대로면 올해 전문 건설공사 실적은 절대적인 수준에서도 큰 폭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부산의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하도급을 맡는 전문건설업체는 ‘을 중의 을’에 가까워 원자잿값이나 인건비 상승의 보전을 거의 못 받고 있다”며 “이마저도 기술력이나 노하우 등과 상관없이 수도권 중심의 타 지역 업체에 밥그릇을 빼앗기고 있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부산시나 지자체가 나서 주기적으로 민간 건설 현장 대상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조례 취지 대로 최소 70%까지 지역 하도급 업체 비중을 늘리도록 행정 지도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전문건설업은 지역 경제의 실핏줄에 비유될 정도로 고용이나 파급효과에서 중요한 존재”라며 “가덕신공항 건설 등 대형 인프라 공사에서 지역 전문건설업체가 본 공사의 30%, 주변 인프라 구축에는 70% 이상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