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감독 새 역사… 차분·섬세 '언니 리더십' 밑거름 [BNK 썸 첫 우승]
‘레전드’ 박정은 감독 돌풍 주역
우리은행에 3연승 완벽한 승리
“선수와 함께 고민하며 위기 극복”
여자 농구의 전설 박신자 조카
올림픽 4차례 출전 ‘명품 포워드’
부산 출신, 고향 팀서 감독 데뷔
부산 BNK 썸이 창단 6번째 시즌 만에 마침내 여자프로농구 왕좌에 오른 데는 구단의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박정은 감독의 리더십이 있었다. BNK는 사실 여자프로농구계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 온 팀이다. 초대 사령탑인 유영주 감독과 현재 팀을 이끄는 박 감독이 모두 선수 시절 여자농구를 이끌었던 ‘레전드’ 출신이며, 코치들도 모두 여성으로 구성해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동안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BNK는 박 감독 부임 이후 달라졌다. 2021-2022시즌 4위(12승 18패)로 올라서 창단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2022-2023시즌엔 정규리그에서 2위(17승 13패)에 오른 뒤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해 준우승했다. 2023-2024시즌에만 다시 최하위(6승 24패)로 추락해 아쉬웠다.
2022-2023시즌 우리은행과의 챔프전에서 한 경기도 따내지 못한 채 3연패로 무기력하게 물러났던 BNK는 이번엔 우리은행을 상대로 3연승을 달리며 완벽한 우승을 일궜다. 우리은행에 2년 전 당한 완패를 말끔히 설욕한 박 감독은 여성 사령탑의 존재조차 희귀한 여자프로농구에 새로운 역사를 남긴 것이다.
박 감독은 대한민국 여자 농구의 전설인 박신자의 조카다. 부산에서 태어나 동주여상 졸업을 앞두고 1994년 삼성생명에 입단한 이래 은퇴할 때까지 19년간 팀의 핵심으로 뛰었다. 그의 선수 시절 등번호 11번은 삼성생명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4강의 주역을 포함해 총 4차례 올림픽에 나가 ‘명품 포워드’라는 별명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2013년 선수 은퇴 후 2016년까지 삼성생명 코치를 맡은 박 감독은 2018년부터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운영부장, 본부장을 지냈고, 2021년 3월 BNK 사령탑에 올랐다.
부산 출신으로 고향 팀을 맡아 프로 사령탑으로 데뷔한 박 감독은 1997년 출범한 여자프로농구에서 여성 사령탑 최초로 팀을 플레이오프, 챔프전에 올려놓은 데 이어 이번 시즌엔 여성 감독 첫 챔프전 승리와 우승을 차례로 달성했다. 국내 여자프로농구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것도 박 감독이 최초다. 위기 상황에서도 좀처럼 흥분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박 감독은 차분하고 세심한 ‘언니 리더십’으로 팀을 정상으로 이끌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박 감독은 작전타임 내내 쉴 새 없이 팀전술을 수정하고, 선수들의 동선 등 잘못된 부분을 일일이 지적하고 교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전 타임 때 "언니가 볼 때는" "언니가 생각할 때는 말야"라며 '언니'를 붙여 편안하게 다가서는 부분이 눈에 띈다.
박 감독은 “선수 복이 많아서 이렇게 된 것 같다. 직접 뛰어서 우승하는 것보다 선수들이 뛰어서 우승하는 느낌이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또 “무엇보다 여성 감독 최초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여성 지도자들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보여줄 수 있게 되어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앞서 그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1위에 올라 있었고, 고비와 위기도 있었으나 선수들과 고민하며 헤쳐나온 것이 이런 상황까지 온 것 같다”라고 회상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배우 한상진 씨가 남편이다. 한 씨는 챔프전 3경기도 모두 '직관'하며 아내와 BNK를 열렬히 응원했고 우승 순간 누구보다 기뻐했다. 박 감독의 선수 은퇴식 때 주인공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아 화제가 되기도 했던 아내의 열혈 팬이다.
한편 여자프로농구(WKBL)에는 또 한 명의 여자 감독이 탄생했다.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는 20일 “여자프로농구에 대한 열정과 선수들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팀 분위기를 쇄신하고, 소통력과 포용력을 통해 팀을 안정시킬 신임 감독으로 최윤아 전 여자농구 국가대표 코치를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최 감독은 2019~2021년 부산 BNK 썸 코치를 지내기도 했다. 부산 BNK 박 감독은 “여자 지도자가 또 생겨서 좋다”고 환영했다.
WKBL 역사에서 대행을 제외한 정식 여자 감독은 2012년 KDB생명 사령탑을 맡았던 이옥자(73) 전 감독이 최초다. 이어 전 국가대표 선수인 유영주(54)가 BNK의 창단 감독으로 2시즌 지휘봉을 잡았고, 후임인 박 감독이 세 번째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