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지시 기다리던 승객도 불길 거세지자 혼비백산 [에어부산 항공기 화재]
화재 직후 비행기 승객 인터뷰
선반서 ‘타다닥’ 소리 난 뒤 연기
뒤에서부터 연기 앞으로 밀려와
탈출하려는 승객 뒤엉켜 아수라장
휴대폰도 못 챙기고 나와 발 동동
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가 발생한 지 2시간여 만인 지난 29일 밤 0시 30분. 게이트를 빠져나온 승객들은 무사히 탈출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사고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로 가족들과 만났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승객들 사이에서 여객기 화재가 기내 뒤쪽 선반에 있는 짐에서 시작됐다는 증언이 속속 나왔다. 일부 승객은 당시 기내 안내 방송은 없었으며 불이 나자 직접 게이트를 열고 비상 슬라이드를 펼쳐 탈출했다고 진술했다.
이날 새벽 김해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온 승객 A 씨는 불이 난 에어부산 항공기의 꼬리 쪽 좌석에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A 씨는 “바로 앞 좌석에 있는 기내 수화물을 두는 선반에서 ‘타다닥’ 하는 소리가 난 후 조금 있다 연기와 불씨가 시작됐다”며 “보조 배터리나 전자기기가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항공기 앞쪽에 있었다는 김동완(42) 씨는 “비행기에 착석해 벨트를 하고 안내 방송까지 나온 후 뒤쪽에서 ‘불이야’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밀려왔다”며 “앞 열에 탑승했는데 뒤에서부터 연기가 밀려오고 있었다. 앞쪽 게이트가 개방돼 탈출했고 꼬리 쪽에서는 승객들이 직접 문을 열고 탈출했다”고 말했다. 이어 “별도로 화재에 대한 안내 방송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긴박했던 화재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몸서리 치는 이들도 있었다. 가족과 함께 비행기에서 탈출한 신재욱(60) 씨는 “승무원이 ‘앉아 있으라’고 하고서 소화기를 들고 오는 사이 연기가 자욱해졌다”며 “처음엔 앉아서 지시를 기다리던 승객들도 불길이 거세지자 소리를 지르며 나가려고 뒤엉켰고, 혼비백산한 승객들로 인해 순식간에 비행기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게이트를 빠져나온 탑승객들은 놀란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쉽게 공항을 벗어나진 못했다. 대구에서 왔다는 승객 B 씨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택시도 잡히지 않는다”며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택시를 호출하고 싶지만 급하게 탈출하느라 짐과 함께 휴대폰을 기내에 놓고 내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후 에어부산 측은 승객들의 교통비와 숙박비 지원을 결정했다. 이날 항공사 측은 “기내에 놓고 내린 휴대폰 등 소지품을 찾기 위해 기내에 진입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 승객들에게는 교통비를, 외국인 승객들에게는 숙박비를 지원했다.
또한 에어부산 관계자는 사고 당시 비상탈출 상황에 대해 “별도의 안내 방송을 시행할 시간적 여유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긴박하게 이뤄진 상황으로, 관련 절차에 의거해 신속하게 조치해 탈출 업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또한 “비상구열 착석 승객의 경우 사전에 비상탈출 시 비상구 개폐 방법에 대해 안내 받고 승무원 협조 역할에 동의해야 착석할 수 있으며, 비상탈출 시 승객이 직접 비상구 조작과 탈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28일 오후 10시 15분께 김해국제공항에서 발생한 홍콩행 에어부산 여객기 이륙 전 화재는 1시간 16분 만에 완전히 진압됐고 승객과 승무원 176명은 비상 슬라이드로 모두 탈출했다. 이 과정에서 승객 3명이 부상을 입는 등 7명이 경상을 입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