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계엄령’ 주시… 백악관 “민주주의, 한미 동맹 근간”
바이든 정부, 다행이라면서도
‘우려스러운 계엄령’ 우회 비판
일본 당국자 "생각도 못한 방법"
외신도 일제히 긴급 속보 타전
미국, 영국, 일본 등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3일(현지 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엄중한 인식을 공유하면서 한국 내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특히 우방국들은 군사·안보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국내 정치적 불안정이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은 지난 24시간 동안 한국의 상황을 면밀히 주시해왔다”며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 만장일치 해제 결의안 통과 이후 헌법에 따라 비상계엄령을 해제하겠다는 발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도 이날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해제된 것과 관련한 연합뉴스의 질의에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우려스러운 계엄령 선포에 관해 방향을 바꿔 계엄을 해제하는 한국 국회의 표결을 존중한 것에 대해 안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는 한미 동맹의 근간”이라며 “우리는 계속해서 상황을 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악관이 ‘우려스러운 계엄령 선포’라고 밝힌 동시에 민주주의가 한미동맹의 근간이라고 밝힌 것은 이번 윤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한국의 비상계엄 관련 상황을 “중대한 관심으로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 달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시바 총리는 이와 관련해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 정부에서는 이번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교도통신은 이날 일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하며 “윤 대통령이 낮은 지지율을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해왔지만 이런 방법으로 나올지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외무성의 한 관계자도 교도통신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계엄이 나온 것은 엄청난 일”이라고 했다.
이 밖에 독일 외무부는 엑스(옛 트위터)에서 “우리는 한국에서의 상황을 큰 우려를 가지고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 민주주의는 승리해야 한다”고 썼으며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국영 인테르팍스 통신에 “한국의 계엄령 선포 이후 상황이 우려스러우며 우리는 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외신들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직후 일제히 긴급 속보로 쏟아내며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하며 특히 윤 대통령이 집권 후 마주해온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도박'에 나섰지만 되레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고 분석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사태가 "한국을 혼란에 빠뜨렸고 윤 대통령의 미래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한국 민주주의의 힘을 시험했다"며 윤 대통령에 대해 "자신이 먼저 행동을 취하면 상대로부터 선수를 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정상적인 정치활동을 훨씬 뛰어넘어 1960~1970년대에 통치한 군부 독재자 박정희의 전술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윤 대통령의 '단명한' 계엄령 선포는 바닥난 대중적 인기에 직면한 가운데 실행한 처절한 도박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권위주의 향수에 빠진 윤 대통령은 적어도 한국 정치 진영의 일부가 이에 호응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며 "하지만 여당을 포함한 국회가 만장일치로 그의 선언을 뒤집은 것은 그의 계산이 잘못됐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꼬집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한국 언론들도 당황한 채 계엄 선포 소식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4월 한국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으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윤 대통령과 예산안 등 문제를 두고 대립각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