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1년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Hamas) 전쟁이 1년을 넘었다.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한 분쟁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에 이어 이란의 대리 세력인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및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군벌의 참전과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확전됐다. 이스라엘은 지난 7월과 9월 이란과 레바논 영토에서 하마스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와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각각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32년간 헤즈볼라의 수장이었던 나스랄라의 죽음, 연이은 최고 지도부의 피살로 헤즈볼라는 리더십을 상실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서로 직접적으로 보복 공격을 감행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이 임박해지면서, 하마스의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디지털 트로이 목마’ 등장
새로운 공격 수단이 등장했다. 이스라엘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무선호출기 수천 대를 동시에 폭발시키면서 무기로 활용했다. 9월 17일 레바논 전역에서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무선호출기가 연쇄 폭발해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2800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9월 18일에는 무전기 폭발로 20명이 사망하고 450명이 부상했다. ‘디지털 트로이 목마’로 호칭되는 새로운 유형의 무기가 가시화된 것이다.
디지털 트로이 목마 사건은 헤즈볼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와 상당한 양의 무기가 일시에 제거되면서 전쟁의 상황, 중동의 세력 균형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스라엘로서는 ‘당신들이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다 보고 있다’라는 정보력을 과시한 셈이다. 이번 공격으로 헤즈볼라 내부는 물론이고, 이란 등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차질을 빚게 됐다. 헤즈볼라는 지휘·통신 라인이 붕괴된 탓에, 비축해 둔 미사일과 로켓을 이스라엘에 전략적으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리전’의 몰락, 전면 나서는 이란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의 발단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은 이란이 그린 큰 그림에 따라 대리 세력들이 지원하고, 하마스가 행동으로 옮긴 ‘계산된 모험’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란은 수십 년 동안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 이란은 지난 40여 년간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앞세우고 자신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대리전, 즉 ‘그림자 전쟁’을 전개했다. 대리전쟁이란 한 국가가 직접 전쟁을 하지 않고, 그 우방국 또는 기타 국가나 집단이 대신하여 타 진영이나 다른 국가와 싸우게 하는 전쟁을 뜻한다.
실제로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이란과 테헤란의 정권에 대한 대리인, 보험의 성격이었다. 이스라엘과 갈등에서 이란의 ‘국가 보험’ 역할을 했던 헤즈볼라는 예멘에서 후티족을 훈련시키고,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조력했다. 중동 전역의 다른 분쟁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란은 정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헤즈볼라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리인으로 활용했던 헤즈볼라 지도자부터 총사령관, 정예부대 수뇌부까지 대거 제거되면서 해당 보험이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된 상황이다.
■이스라엘, 어디를 어떻게 더 세게 반격하나?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궤멸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이란은 지난 1일 미사일 180발을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했다. ‘약속 대련’ 느낌의 보복마저도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다. 상당수 미사일이 발사 단계 또는 비행 도중에 실패한 것으로 관측됐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공격 직후 “이란은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무기체계에서 압도적 우위를 과시하고 있다. 이미 지난 4월 1차 공격에서 이란의 대공미사일 시스템과 방공망을 무력화했다. F-35 라이트닝 스텔스 전투기와 첨단 탄도미사일 체제로 이란 전역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한 셈이다. 또한, 헤즈볼라가 이란에게서 받아 비축한 미사일과 로켓 12만~20만 기 중 상당수가 파괴되면서 이란으로서는 대리인을 통한 협공 수단이 애매해졌다.
이제 최종 반격에 나설 이스라엘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 대선 전에 이란 공격을 감행하고, 공격할 표적을 결정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란에 곧 대응할 것"이며 "정확하고 치명적인 대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로서는 헤즈볼라와 하마스의 위협을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주변이 정리되면서 방어 위주에서 최대 공격으로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이제는 ‘어디를, 얼마나 세게 공격하느냐’의 선택만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미사일 생산기지와 우라늄 농축시설 타격 등 어려운 군사작전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 GDP의 20%를 차지하는 페르시아만 정유시설, 원유 수출 터미널 등 경제 인프라까지 보복 대상에 올려놓고 있다. 또한,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하거나 신정 정권에 타격을 주는 등 다양한 공격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전문가들은 “이란에 대한 전면전을 피하면서도, 이란의 전쟁 의지를 꺾을 수 있는 대담한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이란 정권이 국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국민의 불만도 심상치 않다는 관측도 한 배경이다. 실제로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 국민을 상대로 “이란 정권이 핵무기와 외국 전쟁에 낭비한 막대한 돈을 모두 당신들 자녀의 교육, 건강, 국가 인프라, 물, 하수 등 필요한 것에 투자했다고 상상해 보라”는 내부 분열용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있다. 이란을 안팎에서 흔들려는 전략이다.
이스라엘은 이란 정권 교체, 핵시설 파괴 등이 힘들다면 최소한 레바논과 접경지역인 이스라엘 북부지역의 피란민 6만여 명을 귀환시키겠다는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최근 이스라엘에서는 구소련과 동유럽 출신 유대인 인구 유입이 급증했다. 이들의 정착촌 확보를 위해 레바논과 이스라엘 국경 지역에서 헤즈볼라의 완전한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스라엘로서는 북부 접경지역에 안전지대를 만든 뒤, 자국 피란민을 복귀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어떤 경우든 이스라엘로서는 군사력을 투사해 중동의 판도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활용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2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이 변수
이스라엘은 중동전쟁으로 확전되는 것을 극구 만류하는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을 갖고 있다. 11월 5일 미국 대선까지 2주 남짓 남았다. 미국의 권력 교체기에 이스라엘을 통제할 국제적인 외교 수단조차 없다. 설령 이스라엘이 핵과 정유시설 파괴 등 ‘과도한 보복’을 해도, 대선이 코앞인 미국 정치권에서 구두 비판 외에 적극적으로 막아설 의지나 여유,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미국 대선 이전에 이란 공격을 감행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 싱크탱크(The Washington Institute for Near East Policy think tank) 연구 책임자인 데이나 스트룰 전 미국 국방부 중동 담당 차관보는 최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지금이 중동 지도를 재편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역량과 리더십을 계속 발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리더십 소멸로 새로운 중동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라고 분석했다.
■이란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
이란은 지난 40여 년간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미국을 중동에서 몰아내는 것을 정권의 핵심 이익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포대와 이를 운영할 약 100명의 군인을 추가로 파견했다. 두 개의 항모전단이 지중해에 배치되는 등 미군의 개입이 훨씬 많아지고 있다. 현재도 이라크와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에 미군 4만 명이 주둔하고 있다. 쿠웨이트에서 오만에 이르기까지 아라비아반도에는 미군기지들이 배치돼 있다. 이란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상황이 질주하고 있는 셈이다.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안상욱 교수는 “미국의 유일무이한 중동 교두보인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란의 개혁·개방과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 회복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현재의 전쟁 상황은 이란과 미국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막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하마스가 시작한 갈등의 파장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지켜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중동 사태가 주는 시사점
이란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대만해협, 한반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기 재고가 소진되고, 추가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이란의 입장에서 러시아와 주변 집단에 대한 무기 지원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비축량과 이란제 드론이 1, 2차 공격과 예멘 후티 반군과 헤즈볼라 무기 지원으로 바닥을 보이게 되면, 북한에까지 손을 내민 러시아로의 무기 수출은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국가 간 관계여서 중동의 대리전과는 다른 상황이지만, 러시아와 중국도 북한을 이용한 동북아시아 대리전 전략의 효용성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하마스·헤즈볼라 전쟁에서 보듯 대리전쟁 전략이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향후 국제 정세의 변경에 따라 이들 국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보복을 선언한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파괴하는 시도를 한다면, 북한 입장에서도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는 기고문에서 “깡패 국가는 몽둥이에만 반응한다”며 “지금이야말로 누군가 이란 핵시설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할 때이며, 그게 이스라엘일 수 있다”라고 했다. 강경파 입장에서는 북한을 떠올릴 수도 있는 솔깃한 대목이다. 그만큼 한반도 위기의 변동성에도 영향을 준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비극
전쟁 발발 1년이 지나면서 전 세계인이 어린이를 포함한 무고한 민간인 사상자와 고향을 떠나야 하는 난민의 상황에 둔감해지고 있다. 전쟁과 봉쇄로 인해 사실상 감옥으로 변해버린 가자지구 상황은 이젠 언론에도 띄엄띄엄 보도되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지상전이 이어지면서 레바논 주민 120만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수많은 사람이 전쟁터에 갇힌 것이다. 또한, 1년 전 하마스의 불시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1200여 명이 숨졌다. 또, 붙잡혀간 인질 100여 명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이번 중동 사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