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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문화도시 영도' 사업 지속성 필요
부산 영도는 12㎢ 면적의 섬으로 이뤄진 자치구다. 영도는 전국의 노년층에게 기암절벽이 많은 해안 절경을 자랑하는 국가 명승 17호 태종대와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영도다리가 있는 곳으로 기억될 터이다. 젊은 층 사이에선 인생샷 건지기에 그만인 전국적인 핫 플레이스로 꼽힌다. 그리스 산토리니 풍광을 닮은 흰여울문화마을과 다양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크고 작은 카페들 덕분이다.
이 같은 영도구가 쇠락의 길을 빠르게 걷고 있다. 중·서·동구 등 인근 지역과 함께 인구가 급감하고 있어서다. 원도심의 심각한 저출생과 청년 인구 유출, 고령화 현상 때문이다. 지난 8월 기준 영도 인구수는 10만 4914명. 한때 23만 명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이나 줄었다. 이곳 인구는 1970~90년대 20만 명을 넘었지만, 199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인다. 부산의 인구 감소와 침체 상황에 빗댄 ‘노인과 바다의 도시’란 자조 섞인 표현이 한층 잘 어울리는 데가 영도다.
더욱이 영도구는 지역소멸이 우려될 정도여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한 실정이다. 2016년 전국 광역시 구·군 가운데 최초로 소멸위험지역(위험지수 0.42)으로 진입했다. 그런데 올 3월 기준 영도구 소멸위험지수는 고위험지역에 가까운 0.25까지 떨어졌다. 광역시 구·군 중 최악이다. 제2 대도시의 자치구답지 않게 아기 울음이 끊긴 지 오래인 상당수 농촌 지역과 함께 빨리 사라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지난해 1147곳에서 지난 4월 1339곳으로 가파르게 증가한 영도 내 빈집이 소멸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3%인 부산에서 영도구가 처음으로 30%를 넘긴 초초고령화 사회인 점은 지역소멸 위험성을 가중하는 대목이다. 이런 탓에 올 상반기 영도구 고용지표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는 악순환이 빚어졌다. 영도는 실업률 5.8%로 전국에서 가장 높고 고용률은 최저인 47.1%를 기록했다.
갈수록 활력을 잃고 암울한 영도구에서 실의에 빠질 뻔한 구민들에게 반전이 생겼다. 2020년부터 국비 지원으로 추진한 ‘문화도시 영도’ 사업이 바로 그것. 이 사업이 주민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는 등댓불 역할을 충실히 해온 게다. 그동안 지역민과 문화·도시 기획자, 예술인 등이 의기투합하고 협업해 곳곳에서 문화공동체를 만들며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펼쳤다고 한다. 어르신과 아이들이 함께 글을 배우고 노래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제작했다. 몇 가지 로컬문화 비즈니스도 이뤄져 지역경제에 보탬이 됐다.
지금까지 5년간 160억 원(국비 50%, 시·구비 각 25%)이 투입된 사업 과정에서 자연스레 세대 간 소통이 원활해지고 수많은 구민이 문화예술과 만나는 일상이 가능해진 게 성과라는 평가다. 주민과 예술가가 서로 돕고 지내는 영도, 노인이 즐거움을 느끼는 영도, 어린이가 웃고 떠들며 신나게 노는 영도, 살고 싶은 영도, 관광객이 몰려드는 문화도시 영도, 자랑스러운 보물섬 등의 새로운 면모로 영도에 씌워진 여러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올해 영도구가 전국 24곳 문화도시 중 최우수로 선정되고 벤치마킹 대상으로 관심을 받는 괄목할 만한 결과로 이어졌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최근 영도구가 내년 2월 끝나는 문화도시 사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해 구민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구청이 내세운 이유는 재정난과 국비 지원 종료다. 이해가 되면서도 너무 경직되고 소극적인 행정이란 인상을 풍긴다.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어 넣고 소멸을 막으려는 구정에 부합하는 데다 거주민의 만족도를 높이며 잘 운영되는 모범사업을 굳이 중단할 이유가 있을까. 성공적인 원도심 재생에 필요한 사업을 발굴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영도 안팎으로 사랑받는 문화도시 사업이 지역공동체 형성과 문화·경제 활성화에 더욱 기여하는 방향으로 연속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내용을 보완해 장려하고 확산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 게 영도와 구민들을 위한 길일 것이다.
급기야 지난달 20일 영도 구민들이 구청 앞에서 사업 중단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데 이어 SNS상에서 사업 지속 방안을 강구할 것을 촉구하는 챌린지를 진행 중이다. “문화도시 영도를 지켜주세요” “니들이 알아? 문화도시 덕분에 치매도 잊었다” “안 된다! 문화도시 없으면 우리들 할매 삶도 허전해진다” “문화도시 이후 영도에 살아서 자랑스럽다” 등등…. 이같이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호소는 타당성이 충분하다.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사업 관계자들과 영도구, 구의회, 부산시, 사회 공헌도가 높은 기업 등이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조직된 시민이 참여하는 지방자치를 구현해야 할 자치분권 시대가 아닌가. 영도구의 전향적인 검토가 있기를 기대한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2024-10-0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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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여론 수렴 소홀한 행정은 곤란하다
지난 9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9.9%에 그쳤다. 윤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등 여파로 여당이 참패한 4·10 총선 직후의 주별 평균 대통령 국정 지지율 28%에 가까운 수준이다. 20대 대선 득표율 48.6%와 취임 초기 50%대이던 지지도에 비하면 임기 절반 만에 거의 반토막이 난 셈이다.
이 같은 지지율로 미뤄 보수층 지지자의 상당수가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고 봐도 무방하지 싶다. 요즘 변화하지 않는 대통령의 오만함과 국정 난맥상을 질타하는 보수 언론사들의 보도와 논평이 부쩍 늘어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야당과의 협치나 국민통합에 힘쓰기보다 감정적으로 강경 대응하는 대통령이 위험해 보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대통령 지지율이 장기간 30% 초반을 밑돌고 세간의 부정적 인식이 커진 데는 윤석열 정부가 설익은 정책으로 조변석개하는 모양새가 크게 작용했다. 올 5월 20일 정부는 고령 운전자의 조건부 운전면허 발급을 검토한다고 밝혔다가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번복했다. KC(국가통합인증마크) 미인증 제품에 대한 해외직구 금지는 발표 사흘 만에 철회했다. 초등학교 만 5세 입학과 주 69시간 근로 허용, R&D(연구개발) 예산 14.8% 삭감도 성급하게 내놨다가 여론에 밀려 탈이 난 경우다.
철저한 여론 수렴이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진행하려다 거센 반발에 직면해 계획을 철회·번복하는 정부와 닮은 행정이 부산 시정에서도 목격된다. 공사비 충당을 위한 고층 아파트 건립이 포함된 구덕운동장 복합 재개발사업이 대표적이다. 부산시는 지난해 12월부터 이 사업을 추진하던 중 아파트 건설에 반대하는 인근 주민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치자 아파트 규모를 줄여 강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관할 구청장과 지역 정치권까지 주민 편에 서고 반대 여론이 확산하자 시는 지난달 20일 시민 의견을 물어 추진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8개월간 행정력을 낭비한 이 사업은 공공성을 강조하는 주민 의견 수렴과 숙의 과정이 매우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시가 내년 1월 민간 운영이 끝나 관리권을 넘겨받는 백양터널의 통행료 징수 연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시민 공론화 절차가 빠졌다. 지난 6월 시는 무료화 시 교통혼잡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징수를 계속하되 요금을 인하할 방침을 세웠다. 이에 전국에서 유료도로가 제일 많은 부산 운전자들의 경제 부담을 외면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지난달 26일 박형준 부산시장이 통행료 무료화를 선언했으나, 오락가락하는 행정에 대한 불신만 키운 꼴이 됐다.
지난 2월부터 지난달 26일까지 논란을 빚은 이기대공원 입구 고층 아파트 3개동 건립사업은 시가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반대 의견을 무시한 사례로 꼽힌다. 아파트가 해안 절경을 자랑하는 이기대의 자연경관을 해칠 우려가 높은데도 시는 부실한 심의로 사업 계획을 통과시켰다. 나빠진 여론을 의식한 건설업체가 사업을 포기함으로써 사태가 종결됐지만, 행정당국이 그간 시민의 난개발 반대 입장 대신 개발업자의 이익을 두둔했다는 점은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이러한 행정 혼선은 정부든 부산시든 신뢰성 실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된다면 정작 중요한 일에 필요한 동력을 얻기 힘들어 사업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부산은 지금 침체와 발전의 기로에 서 있다. 청년층 유출과 초고령화로 쇠락하면서도 글로벌 허브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게다. 인구절벽과 지역소멸 같은 위기에 잘 대비해 생산성 높고 활기 넘치는 도시로 바꾸려면 시민의 지지와 동참은 필수적이다.
박 시장이 내건 시정 구호인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부산’을 실현하는 데 시민 생각,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은 곤란하다. 시정의 여론 수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시민 불신이 쌓이는 건 3선 시장 혹은 대선을 꿈꿀 박 시장에게도, 살기 좋은 환경과 행복한 삶을 원하는 시민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시 공무원들에게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은 시민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세다.
어설프고 무리한 계획을 수립해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다가 여론에 밀려 철회·번복하는 일이 더는 없길 바란다. 지역사회와 시민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일수록 설계 때부터 공청회를 열어 더욱 적극적으로 시민 의견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 시민단체와도 충분히 토론해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 민선시대 행정의 순리일 테다. 그런 만큼 프랑스의 세계적 미술관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에 나선 부산시가 시민과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견해를 더 많이 듣는 게 좋겠다. 유치 계획을 보완해 완벽성을 기하거나 갈등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다. kbg@busan.com
2024-09-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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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싸워라, 특권 내려놓고 싸워라
예부터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혹자는 둘 중에서도 싸움을 바라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고 말한다. 자칫 무서운 화마로 돌변할 수 있는 불보다는 참견이 가능하고 뜯어말리기 쉬운 남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이 부담이 덜해서일 테다.
필자는 정치권에 횡행한 소모적인 싸움질만큼은 지켜보기가 싫었다. 그래서 지난달 12일 자 이 난의 칼럼을 통해 민생고를 외면한 채 격렬한 정치 싸움만 일삼으며 날을 새는 22대 국회가 탄핵감이라고 질타한 바 있다. 그러면서 여야가 갈등과 반목뿐인 정쟁을 당장 멈추고 대화와 타협을 바라는 민심을 받들 것을 촉구했다. 이보다 앞서 6월 21일 자 칼럼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오만을 지적하며 대립 대신 겸허한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협치와 국민 통합에 힘쓸 것을 주문했다.
이 같은 제언은 일부 극단적 진보·보수층을 뺀 대다수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고 해도 틀린 게 아니지 싶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를 중심으로 국민의힘과 민주당 간에 펼쳐지고 있는 극심한 쌈박질에 수많은 국민이 재미는커녕 지긋지긋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당리당략을 앞세운 거대 양당의 다툼을 극혐해 정치권에 눈길마저 주지 않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제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석 달이 다 돼 간다. 하지만 국회는 아직까지 개원식조차 열지 않았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사명감을 다지는 국회의원 선서도 못했다. 거대 양당의 강 대 강 대치 국면 탓이다. 이는 이 대표 일극체제인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인 정치적 쟁점 법안들에 대한 입법 폭주와 이에 맞선 윤 대통령의 잦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서 기인한다. 거대 야당의 독단적 입법 강행, 대통령 재의요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돼 정쟁을 심화하고 장기화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여야는 22대 시작부터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싸고 거친 공방을 벌였다. 그동안 민주당이 발의한 여러 탄핵안과 특검법안을 놓고도 날 선 언쟁을 빚고 있다. 각종 회의와 청문회는 고성은 물론 막말과 험담이 난무하는 가운데 파행으로 치닫는다. 때로는 저주와 다를 바 없는 발언까지 튀어나와 파문을 확산한다. 과장된 표현을 빌리자면, 억겁의 원한이 맺힌 철천지원수 간 아귀다툼 같은 꼴이 아닐 수 없다.
거대 양당은 심지어 같은 당끼리도 우위에 서기 위해 편을 가르고 이전투구에 몰두해 볼썽사납다. 전당대회 과정 등에서 지지세력 결집을 목적으로 서로를 비방하거나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언행을 서슴지 않으며 치열한 계파싸움을 전개하기 일쑤다. 많은 국민에게 실망을 안기고 정치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첨예하고 오랜 정쟁의 심각한 문제점은 고물가·고금리에 고통받는 민생과 직결된 법안들이 지금까지 국회에서 단 한 건도 여야 합의로 통과되지 못한 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국가 사활이 걸린 반도체를 포함한 경제 법안들 역시 뒷전이긴 매한가지다. 초저출생 해소와 경제 회복 등 국가·사회적 현안 대응과 해결이 시급한데, 국회 정상화가 요원해 답답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 그나마 지난 21일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특별법이 여야의 첫 합의로 국회 국토교통위 문턱을 가까스로 넘어선 게 위안거리다. 민주당 이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악화한 민심을 의식해 오는 25일 회담을 갖기로 했으나, 며칠간 회의 방식과 의제를 두고 또 다른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이 대표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연기돼 버렸다.
이같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정쟁을 중단할 수 없다면, 그래 싸워라. 서로 계속 싸워라. 죽도록 싸워보라. 사생결단식으로 싸우다 보면 없던 정이 들 수도 있겠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는 법이니까. 끊임없이 싸운 끝에 여야 어느 쪽도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절감해 협치하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려는 마음이 생길지 모를 일이다. 또 한편으론 ‘하던 일도 멍석 깔아주면 안 한다’는 격언을 믿고 여야가 마음껏 싸우기를 권한다.
여야는 광복절을 맞아 일본 과거사 문제로 다투다 “국민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숱한 국민의 마음이 상당히 아프다. 격화일로인 정쟁에 피로감이 가중되고 마음을 다쳐서다. 여야가 이런 민심과 멀어지며 무한 정쟁을 이어갈 경우 극도로 성난 민심을 만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때 가서 크게 후회하기 전에 태도를 바꿔 온 국민에 행복과 희망을 주는 참된 정치에 매진하길 당부한다. 그럴 의지가 없다면, 국회와 국회의원이 가진 온갖 특권을 다 내려놓고 싸워라. 주권자인 국민이 부여한 특권에는 열심히 본연의 임무를 다하라는 명령이 들어있다. 이를 모르면 정치할 자격이 없는 셈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2024-08-2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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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부산항만공사·한국해양진흥공사 차기 사장
요즘 부산 지역사회와 해양 산업계의 눈길이 해양수산부 산하 부산항만공사(BPA)와 한국해양진흥공사(KOBC·해진공)에 집중돼 있다. BPA와 해진공이 비슷한 시기에 차기 사장 선임을 위한 공모 절차를 밟고 있어서다. 해양도시 부산에 자리 잡은 두 공기업의 수장 자리인 만큼 큰 관심이 쏠리는 게 당연할 테다. 해수부 차관 출신 강준석 BPA 사장은 다음 달 말로 3년간 임기가 끝난다. 역시 해수부 차관을 지내고 3년 전 취임한 김양수 해진공 사장은 이달 말 임기 만료를 앞뒀다.
이에 따라 지난달 15일 구성된 BPA 임원추천위원회가 받고 있는 차기 사장 후보 지원이 2일 마감된다. BPA 임추위는 곧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복수의 사장 후보자를 해수부에 추천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사장 공모에 들어간 해진공은 지난달 4일 지원서 접수를 끝내고 임추위 심사 절차를 진행 중이다. 두 공공기관이 잇따라 차기 사장 후보들을 추천하면 임명권자인 해수부 장관이 최종 임명하게 된다.
현재 여당을 포함한 정치권과 해수부 고위 관료 출신, 해양업계를 포함한 경제계와 학계 인사 등 다양한 인물이 지원한 상태다. 이들 중 일부는 임추위 심사와 별개로 요로를 통해 자신이 적임자임을 호소하며 물밑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두 기관별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사장 후보군 윤곽이 드러나면서 특정인 내정설이 나돈다는 점이다. 차기 사장 후보 추천이 이뤄지기도 전에 벌써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이 거세다. 심지어 “낙하산 사장이 올 바에야 차라리 정치권보다 바닷물을 먹은 해수부 출신이 낫다”는 비아냥까지 쏟아지는 실정이다.
내정설이나 낙하산 논란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BPA의 사장과 본부장 등 임원 공모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실제로 그간 부산 시민과 시민단체의 우려 목소리와 함께 거명된 낙하산 예상 인사가 임원으로 취임한 사례들이 있다. 올 6월 18일 부산항발전협의회를 비롯한 해양 시민단체들이 BPA와 해진공의 낙하산 사장 임명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 이유다. 이들 단체는 전문성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맡아야 할 두 공기업 차기 사장의 선임 과정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진행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해수부와 임추위가 명심할 일이다.
BPA·해진공 사장이 속칭 ‘해피아’(해수부 고위 퇴직자+마피아)가 거쳐가는 자리와 총선에서 떨어진 정치인의 밥줄 노릇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역할로 전락한다면 조직 발전에도, 해양산업 성장에도 도움이 안 될 것이 분명하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추진력이 요구되는 두 기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며 부산과 해양업계 의견을 반영하기보다는 해수부 의사에 흔들리거나 해수부를 대변하는 데 치중할 가능성이 있는 까닭이다.
BPA와 해진공에 주어진 임무는 정말 막중하다. BPA의 숙원은 정부로부터의 독립과 자율권 확보다. 게다가 성공적 북항 재개발, 대규모 진해신항 개발, 이합집산하는 세계 해운동맹 체제에 긴밀한 대응, 부산신항과 2029년 말 개항할 가덕신공항 간 복합물류 체계 구축, 싱가포르를 능가하려는 부산의 글로벌 허브도시 전략과 연계한 부산항의 글로벌 메가 허브항 경쟁력 제고 등 대형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2017년 한진해운 퇴출에 따른 대응책으로 2018년 출범한 해진공은 쇠락한 한국 해운력을 해양강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해운업과 항로는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는 기간산업이자 무형의 해양영토여서다. 이런 연유로 막대한 혈세를 들여 살려낸 HMM(옛 현대상선)을 민영화하는 매각도 현안이다.
이같이 산적한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진두지휘해야 할 자리에 전문성이 부족하고 임기만 채우다 떠날 인물을 앉히는 건 어불성설이다. BPA나 해진공 사정을 잘 알고 해양 전문성과 현장 경험이 풍부하다고 평가받는 몇몇 인사가 특정인의 사장 내정설과 낙하산 얘기를 듣고는 “들러리 서기 싫다”며 일찌감치 지원을 포기했단 말이 들려 안타깝다. 해수부가 내부 주축 세력 또는 정치권과 결탁해 어떤 후보를 미리 점찍어 놓고 요식적인 공모를 추진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렇다고 해수부와 정치권 인사를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 의외의 적임자나 실력을 갖춘 이가 있을 수 있다. 사장 후보 지원자 모두에 능력과 자질 본위로 공평하고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라는 말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각각 남녀 단체전 3연패와 10연패 금자탑을 쌓은 원동력은 메달 수상자와 고참, 신예를 똑같이 대하는 철두철미한 공정 경쟁이란 건 주지의 사실이다. 두 공기업 임추위의 냉철한 자세와 해수부 장관의 현명한 판단을 요한다. kbg@busan.com
2024-08-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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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정쟁에 날 새는 국회, 탄핵감이다
내 진작에 이럴 줄 알았다.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론 설마설마했는데, 역시나여서 허망하다. 아니, 당초 우려한 것보다 더 심해서 문제다. 22대 임기 시작부터 여야의 진흙탕 싸움으로 파국을 맞고 있는 국회 탓에 비통한 심정에 빠진다. 내가 이런 볼썽사나운 꼴을 보려고 올 4월 초 바쁜 시간을 쪼개 총선 사전투표소로 달려가 소중한 주권을 행사했던가 싶다. 후회와 자괴감이 밀려든다.
4·10 총선을 앞두고 22대 국회의 여야 간 정쟁은 충분히 예견된 바이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고 극단적인 진영 대결이 격렬하게 펼쳐진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역시 여소야대 속 거대 양당 구도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집권 여당의 무능 여파로 국민의힘 참패, 더불어민주당 압승으로 끝났다. 이로써 양당이 앞으로도 사사건건 충돌할 전망이었지만, 협치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새로운 인물을 많이 수혈한 22대 국회가 최악이라는 비판을 받은 21대와 달리 경제 살리기와 민생 안정에 힘쓰길 바랐던 민의여서다.
한데,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지난 5월 30일 새 국회가 개원한 지 불과 40여 일 만에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예전에 비해 더 극심한 여야 대치 국면이 빚어져 국회 정상화는 요원한 까닭이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앞세워 협치하는 정치다운 정치는 기대 난망이다. 21대보다 상황이 악화된 22대 국회를 보고 있자니 분노가 치민다. 벌써부터 국민 대부분의 시선은 싸늘하다. 1995년 고 이병철 삼성 회장한테서 4류로 지적된 정치권이 30년 가까이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혐오스럽다는 사람이 숱하다.
발단은 절대다수 의석의 힘에 도취해 당리당략을 밀어붙이는 민주당의 안하무인이다. 171석 거대 야당을 만든 건 지역구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소선구제이지 다수 국민의 지지가 아니다. 민주당 전체 총선 후보의 지역구 득표율은 50.45%에 그쳤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전폭적으로 지지한 국민을 받든다는 구실로 쟁점 법안들 입법을 단독으로 강행해 여권의 강한 반발을 산다. 민심을 왜곡했거나 잘못 읽은 처사다. 이에 국민의힘은 야권과 거친 비방과 막말을 주고받는 데 급급할 뿐 소통과 협의를 통해 절충점을 찾고 사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안 보인다. 정치력 부재와 무기력한 모양새가 한심하다. 결국 국회는 민생경제 논의는커녕 첨예한 대립으로 날을 새는 파행의 연속이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국회의원의 행태 또한 마뜩잖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등 4개 사건 재판을 받는 이재명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탄에 혈안이 돼 충성 경쟁을 벌인다. 이 전 대표 수사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가 대표적이다. 검사 탄핵 움직임이 판사들에게 부담을 줄 게 염려된다. 급기야 오는 19일, 26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 청문회를 열기로 하는 등 탄핵 정국으로 몰아가며 이성을 잃은 듯한 민주당 의원들에게서 중국 문화혁명기 홍위병의 무분별한 광기마저 느껴진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경우 23일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뽑을 대표직을 놓고 4명의 후보 편으로 나뉘어 이전투구로 치달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리멸렬한 당의 혁신과 민심 반영을 위한 전략과 비전은 찾기 힘들다. 그저 총선 책임론, 상대편 공격, ‘윤심(윤 대통령 의중) 팔이’로 난타전이 치열하다. 저급하게 좌충우돌하는 권력투쟁에 ‘김건희 여사 문자’ 공방까지 가세해 요지경이 따로 없을 정도다.
“우리 이럴 때가 아니다. 머리 맞대 민생을 안정시키자. 경제부터 살리자.” 온 국민이 원하는 이 같은 주장을 외치는 소신 있는 국회의원은 없는가. 300명이나 되는 선량이 죄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나. 고물가와 고금리에 밤잠을 설칠 만큼 고통받는 서민이 보이질 않는가. 내수 침체와 영업 부진에 시달리며 한계로 내몰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의 아우성은 안 들리는가. 젊은이들이 먹고살기가 어려워 결혼과 출산에 엄두를 못 내고 인구절벽으로 나라가 망해 간다는데, 의원들은 도대체 무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뭣이 중한가?
제 역할을 팽개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소모적 다툼으로 길을 잃은 국회야말로 탄핵감이다.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에 부적격 사유가 생기면 주민투표를 거쳐 임기 중 해직시키는 주민소환제가 있다. 만일 국회에 적용이 가능하다면 당장 국회의원을 모조리 퇴진시키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여야와 국회의원들은 총선 거리 유세에 나섰을 때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며 뭐라고 약속했는지 되뇌어 보길 바란다. 벌써 지역공약과 초심을 깡그리 잊었단 말인가? 변화 없이 퇴행의 정쟁을 일삼다간 역대 최악 국회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향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국민의 탄핵을 받을 것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2024-07-1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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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 겸허한 자세를
불과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1%까지 떨어졌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취임 후 최저치인 지지율이 나왔다. 응답자들이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로 고물가와 소통 미흡, 거부권 행사,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 등이 꼽혔다. 특히 대통령의 독단과 불통이 여전하다는 국민 인식이 매우 낮은 지지율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뤄진 같은 조사에선 윤 대통령 지지율이 21%에서 26%로 살짝 올랐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도는 지난달 말보다 2%포인트 하락한 27%로 나타났다. 국민의힘의 30%에 비해서도 3%포인트 낮다. 이 같은 수치는 민주당이 22대 국회 시작부터 절대다수 의석의 힘으로 상임위원회를 독식하고 쟁점 법안 입법화를 밀어붙이며 정쟁화하는 걸 국민들이 곱지 않게 바라보기 때문일 테다. 국민 상당수는 경제 발전과 민생 안정을 위해 국회 정상화와 여야 협치를 바라고 있다. 저조한 민주당 지지도를 이재명 대표 지지율로 봐도 무방하다. ‘이재명당’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이 대표 일극체제로 사당화한 민주당이어서다.
올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미국인 4명 중 1명, 즉 25%는 두 후보 모두에게 거부감을 느낀단다. 미국 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14일 발표한 조사 결과다. 대권을 다투는 두 사람 간 비방전이 갈수록 가열되면서 국민들의 반감을 키우는 탓이다. 윤 대통령과 민주당 이 대표는 어떨까. 필시 두 지도자를 다 싫어하는 우리나라 국민의 비중은 미국의 경우보다 훨씬 높지 싶다. 각각 30% 아래 바닥권인 윤 대통령 지지율과 민주당 지지도를 볼 때 이 같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택시기사와 자영업자, 직장인 같은 서민층한테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 모두 비호감이란 얘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오만하며 속이려 든다는 게 그 이유다. 주권자인 국민을 얕잡아 보거나 우습게 아는 듯한 두 권력자의 태도에 잔뜩 뿔난 사람이 많은 실정이다. 이는 윤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 리더십이 4·10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사실만 봐도 입증된다.
이달 들어 윤 대통령 지지율이 소폭 반등한 건 국정운영을 잘해서가 아니다. 거대 야당의 일방적 독주로 국회가 파국으로 치닫고 이 대표가 당내 권력을 독식하는 데 따른 반발 효과 덕택이란 분석에 무게가 기운다. 대통령이 “난 잘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착각이다. 그래선 안 된다. 대통령은 총선 참패 직후 민의를 존중한 변화와 국정 쇄신을 약속했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수많은 국민이 분노하거나 궁금하게 여기는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와 채 상병 사건 의혹 규명에 소극적이다. 인적 쇄신을 위한 개각도 당초보다 대상이 축소되고 시기마저 늦어지고 있어 실망감을 안긴다.
이 대표는 거만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다. 총선에서 선거 혁신을 희망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비위 인사를 포함한 부적격자와 친명계 후보를 대거 공천했다. 당선된 이들을 호위무사로 삼아 쌍방울 대북 송금,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등 자신이 관련된 사법 리스크를 막으려는 방탄 국회를 만드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과정에서 자기변명과 독선을 위해 검찰·법원뿐 아니라 언론을 공격하고 비하하는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당 대표 연임과 대권 도전을 노린 당헌 개정으로 견제와 균형 원칙도 허물어 버렸다. ‘여의도 대통령’이란 빗댄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권력의 정점에 선 두 지도자는 지지율이 형편없는 원인을 살펴볼 일이다. 문재인 정권이 안하무인식 ‘내로남불’로 일관하다 2년여 전 대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은 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두 달 넘도록 20%대에 머문다. 국정운영의 동력이 크게 떨어지고 추진하는 정책마다 불신을 사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달 3일 발표한 동해 유전 시추계획에 쏟아진 의구심, 19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내놓은 저출생 대책의 실효성 논란이 단적인 예다. 민주당 내부에선 고위 당직자의 “당의 아버지는 이재명”이란 도 넘은 아첨까지 등장했다. 사당화가 극에 달한 셈이다.
꽃이 피기는 힘들어도 지는 건 순식간이다. 권력의 맛에 도취해 초심을 잃고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면 나락의 길이 기다릴 뿐이다. 어렵게 오른 정상의 자리에서 겸손과 미담으로 인기를 더해 가는 트로트 가수 임영웅, 시건방진 처신으로 철창신세로 전락한 김호중 사례가 교훈이 될 만하다. 겸허한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협치와 사회통합에 힘쓰는 여야 최고 지도자. 이같이 달라진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대다수 국민의 소망이다. 이에 부응하는 게 민심을 얻는 길이다.
2024-06-2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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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출산과 거리 먼 1인 가구 전성시대
세간에서 자주 언급되는 분열(分裂)이라는 단어. 갈라지거나 찢어져 나뉜다는 뜻이다. 하나가 둘이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생산적이고 고무적인가. 세포 분열을 떠올리면 참으로 긍정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분열의 역할은 생명을 유지하거나 종족을 늘리고 대를 잇는 데 필수불가결하다. 세포 분열은 생물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한 개의 세포가 핵분열과 세포질 분열을 거쳐 두 개로 나눠지는 것을 일컫는다. 1835년 인류에게 처음 발견된 현상이다.
단세포 생물이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든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탄생부터 소멸에 이르는 과정에서 몸의 세포가 분열한다. 체세포 분열은 단세포 생물에게는 생식, 식물에 있어선 생장, 동물한테는 재생의 의미가 각각 있다. 정말 중요하고도 고마운 기능이다. 사람의 신체는 전체 세포 수가 평균 60조~100조 개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세포 분열로써 목숨을 유지하며 상처도 치유한다. 인체는 이를 위해 일생 동안 무려 1000조 회가량의 세포 분열이 이뤄진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맨 처음 맞닥뜨리는 곳이 가정이다. 가정은 한 가족이 의식주 활동을 공유하는 생활 공동체다. 나아가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최소 단위다. 하나의 가구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세포 조직인 게다. 우리나라 가구는 전통적으로 한 쌍의 부부를 중심으로 3대 이상 세대나 가까운 친인척 등 대식구가 함께 사는 공동체인 경우가 많았다. 노동력이 대거 필요한 전형적인 농경 사회여서다. 산업화 시기에 취업과 결혼으로 독립하려는 구성원이 생기면 분가를 통해 가구 수가 증가하고, 시간이 흘러 식구가 늘면 또다시 분가가 반복되는 일이 통례였다. 세포가 정상적으로 계속 분열하며 수를 늘리듯이….
이어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 대가족의 분열이 심화한 핵가족화다. 부모와 미혼 자녀만 있는 소규모 가구, 즉 핵가족이 급증한 것이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가계소득 증가에 힘입어 아파트와 빌라 같은 공동주택 보급이 늘고 주거환경이 좋아진 영향이 컸다. 핵가족이 바쁜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쉬운 데다 개인을 중시하는 일상과 이동하기에 용이한 점도 보편화한 이유다.
행정안전부 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가구 수는 약 2400만 세대에 달한다. 같은 달 기준 총인구 5128만여 명을 감안하면 1가구당 인원은 평균 2.14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지난달 1인 가구는 모두 1003만 911세대로, 전체 가구의 41.8%나 된다. ‘나 혼자 산다’는 집이 5가구 중 2가구꼴이란 얘기다. 이젠 핵가족 시대가 아니라 1인 가구 전성시대로 불러야 할 판이다. 590만여 세대인 2인 가구를 더하면 전체의 66.4%까지 치솟는다.
예전 가정의 분화는 세포 분열처럼 또 다른 생산적 가구를 만드는 발전의 단계라는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날로 비중이 높아지는 1~2인 가구는 미래를 책임질 신생아 출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 가구에 극심한 청년 취업난과 주거난, 치열한 경쟁 탓에 결혼·출산을 포기하거나 사회와 담쌓고 은둔·고립형 삶에 빠진 젊은 층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독거노인 가구마저 적지 않은 실정이다.
더 쪼갤 수 없는 초미니 가구의 확산에 따라 국내 가정의 희망적인 세포 분열 행진은 사실상 끝난 셈이다. 혼밥, 혼술, 혼행(나 홀로 여행)까지 성행하는 마당이다. 이 같은 까닭에 부정적인 국가 지표는 넘쳐난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역대 최저인 0.72명에 이어 올해 0.68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돼 재앙과 다름없는 인구절벽 사태를 예고한다. 자살, 청년 사망, 노인 빈곤, 지역소멸 등의 지표 역시 세계 최악 수준이다. 가족 공동체 붕괴 속에 인구가 줄면서 늙어가는 국가의 미래가 암담해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낀 5월 가정의 달 끝 무렵에 안타까움만 가득하다.
가정을 정상화하고 사회와 국가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비전을 키울 수는 없을까. 경제 살리기와 함께 1~2인 가구의 실상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책 마련,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 구축, 양질의 일자리 대거 창출, 고물가·고금리 타개 등 숙제가 산적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권이 당리당략을 앞세워 대립하고 격하게 충돌하는 불필요한 분열상을 당장 멈추는 게 급선무다. 초저출생 풍조에 따른 수도권과 지방의 공멸을 막으려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 협치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여야 지도자들이 민생과 경제를 최우선으로 삼고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극단적인 진영논리를 경계하며 국민 통합에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더욱 잘 사는 강소국 도약이냐, 중진국으로의 퇴보냐. 갈림길에서 현명한 결단이 절실하다.
2024-05-3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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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대통령의 소통, 진정성 필요하다
10일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윤 대통령은 이에 맞춰 하루 전날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 운영과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이어 1년 9개월 만에 두 번째 열린 공식 기자회견이었다. 이번 회견은 윤 대통령이 취임 초기 출근길에 행한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중단한 지 500여 일 만에 마련한 실질적인 첫 대국민 접촉이다. 그동안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실패 관련 발언,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담화, 신년 대담 등 형식으로 대통령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밝히기는 했다. 그런데 질의응답이 오가는 공개 기자회견은 오랜만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없앤 민정수석실을 새로 설치하기로 했다. 이날 즉시 김주현 전 법무부 차관을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했다. 대통령실에서 매우 약해진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민정수석실 복원 이유다. 지난달 29일에는 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간 회담이 열렸다. 이는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 성사된 영수회담으로, 실종된 여야 협치의 가능성이 엿보인 데 의의가 있다.
여야 영수회담, 민정수석실 부활, 대국민 기자회견. 연이어 벌어진 일들은 의미와 파급력이 작지 않다. 이 사안들만 놓고 단편적으로 봤을 때는 윤 대통령이 소통을 중시하고, 이를 위한 실천에 노력하는 걸로 착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세 가지는 자발적이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는 게 엄연한 진리다. 애초부터 선제적이고 능동적인 계획에 의해 추진된 것이 아니어서 그 의미를 반감한다. 대통령이 정치적 어려움에 처한 나머지 위기를 모면하거나 돌파구를 찾으려는 궁여지책에서 비롯됐다.
이런 사실은 윤 대통령이 평소 영수회담을 원치 않은 데서 먼저 확인된다.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거야의 협조가 필요한데도 민주당 이 대표의 수차례에 걸친 회담 제의를 무시했다. 각종 형사사건 피의자인 이 대표를 대통령과 동급으로 예우하고 강력한 대선주자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싫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민정수석실도 마찬가지다. 대선후보 시절 사정기관 장악 등에 악용된 민정수석실 폐지를 자주 강조하며 공약으로까지 내걸었던 윤 대통령이다. 그러다가 야당의 우려에 아랑곳없이 민심 파악을 내세워 부활시킨 것이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2022년 11월 이후 소통 부재라는 여론의 지적 속에서도 더는 이행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9일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은 쌍방향 기자회견도 안 내켰을 테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진행 여부를 두고 전망이 갈렸을 정도다.
꿈쩍하지 않던 윤 대통령이 소통에 관심을 보이며 국민 및 야당과 대화에 나서도록 만든 건 제22대 총선 결과다. 대통령의 태도 변화는 민주당이 최종적으로 무려 171석을 차지하고 국민의힘은 108석 확보에 그친 집권 여당의 참패에 기인한다. 더욱이 선거 참패가 윤 대통령의 오만하고 독단적인 불통식 국정운영 탓이란 지적이 여당 안팎에서 잇따르는 실정이다.
총선 직후 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8.0%가 윤 대통령을 총선 참패 책임자로 꼽았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목한 이는 10.0%에 불과했다. 심지어 여당 지지층은 윤 70.4%, 한 11.3%로 대통령의 책임을 더 무겁게 여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20%대 중반~30%대 초반의 바닥 수준을 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 윤 대통령의 잇단 조치는 총선 패배로 수세에 몰려 낮은 지지율을 의식한 산물이긴 하지만, 아집과 독선이 강했던 이전과 다른 모습인 건 분명하다. 윤 대통령은 상반된 여야 평가가 나온 9일 기자회견에서도 “여야 정당과 소통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많이 늦은 감이 있으나 남은 임기 3년을 위해 고무적인 자세다. 윤 대통령의 취임 일성은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긴 가장 중요한 이유로 국민과의 소통을 든 바 있어서다. 더 이상은 빈말이 아님을 증명해 나가며 국민 신뢰를 높여야 할 때다.
그러려면 진정성이 관건이다. 대통령 자신이 소통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소통 방법에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경우 진정한 소통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먼저 국민 곁으로 바싹 다가서고, 특히 고물가·고금리에 힘겨운 서민과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일이다. 앞으로 3년간 주력해야 할 민생 안정 등 원활한 국정수행에 절실한 여야정 대화와 협치를 잘 이끌어 내도록 열린 마음과 겸허한 자세도 요구된다. 국민 행복을 위해 환골탈태한 소통을 바란다. 진보·보수층 다수가 지지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까닭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2024-05-0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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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거대 양당제 고착화한 4·10 총선
이달 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야당의 압승, 여당의 완패였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전체 300석의 과반을 훨씬 넘는 175석을 차지했다. 조국혁신당 같은 범야권까지 감안하면 192석으로 늘어난다. 반면 여당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국민의미래를 포함해도 108석에 그친다.
압도적인 성적표에 고무된 민주당은 총선이 끝난 지 보름도 안돼 또다시 절대다수 의석의 힘을 동원해 입법 독주 행태를 보인다. 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 23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열어 민주유공자법 제정안과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도록 요구하는 안건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전자는 ‘운동권 셀프 특혜’ 소지가 있어 여권은 물론 국민 상당수가 반대할 정도로 논란을 빚는 사안이다. 후자는 가맹점주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한 것으로, 본사·점주 간 이해관계가 첨예해 갈등 해소를 위한 숙의와 신중한 입법이 요구된다. 앞서 18일 본회의로 직회부된 양곡관리법 등 5개 법안에 이어 야당의 두 번째 단독 처리다. 민주당은 다음 달 30일 임기가 시작되는 22대 국회에서 논의해도 괜찮을 쟁점 법안들 통과를 21대 국회 막바지에 밀어붙일 태세다.
민주당은 입법 강행을 위해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받들겠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 여당의 무능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이 민주당의 승리로 귀결됐다는 분석은 맞는다. 하지만 야당이 확보한 의석만큼 국민이 민주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해석하는 건 민의를 잘못 읽은 게다. 다분히 독선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다.
실제로 민주당이 전국 지역구 161석을 휩쓸게 지지한 유권자는 민주당 후보들에 투표한 50.45%다. 겨우 절반을 넘겼다. 이와 5.4%포인트 차이에 불과한 45.05%의 유권자는 민주당보다 71석이나 적은 90석을 얻은 국민의힘 후보들에게 표를 줬다. 민주당이 한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자만 당선되고 나머지 후보를 선택한 표는 모두 사표가 되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덕을 톡톡히 본 것뿐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총선 민심을 빙자해 입맛에 맞는 법안들을 강행 처리하는 데 치중하며 여당과의 대화와 협치를 잊은 듯한 민주당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4·10 총선은 정치 개혁과 민생 안정을 외면한 채 여야 간 정쟁으로 일관해 정치 불신과 혐오감을 키운 정치권과 국회를 준엄하게 심판하지 못한 꼴이 됐다. 여야는 선거 과정에서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적 쇄신이나 유권자가 기대한 비전·정책 대결 없이 친윤석열·이재명계 후보나 부적격자 공천, 사생결단식 상호 비방 등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각각 180, 103석을 나눠 가진 21대 국회와 흡사한 구도를 만든 이번 총선으로 거대 양당제만 공고해진 셈이다.
거대 양당 간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지금 상태라면 22대 국회는 정쟁이 더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양당이 당리당략으로 사사건건 충돌하고 극단적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일부 강성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오랫동안 대치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벌써부터 22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와 경제 위기 상황이 녹록지 않다. 해외에선 국내 정치 분열로 인한 한국경제 기적의 종언과 인구절벽에 따른 국가소멸을 우려하는 시선을 보내는 터라 답답하기만 하다.
경제난과 민생고는 뒷전인 거대 양당의 극한 대립과 군소정당이 끼어들 틈이 없는 정치 양극화. 현행 소선거구제가 낳은 거대 정당제의 심각한 폐단이다. 소선거구제는 풍부한 인재풀과 자금력으로 당선자를 대거 배출할 수 있는 여당과 제1야당에 유리하다. 특히 이번 총선이 증명하듯 적은 득표 차이로도 큰 의석 차가 생길 수 있어 문제다. 부산의 경우 민주당은 18개 지역구에서 45%대를 득표하고도 1석만 건졌다. 이처럼 특정 권역에서 지역구 1위가 많이 나온 정당이 의석을 싹쓸이할 수 있어 특정 지역의 일당 지배체제를 초래하기 일쑤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보면 유권자들이 여당에 탄핵·개헌 저지선인 100석가량을 보장한 건 여야의 협치 노력을 바라는 뜻이 담겨 있지 싶다. 야당은 기고만장하지 말고 여권은 겸허한 자세로 나라를 바로 세우고 국민 삶을 잘 챙기는 데 머리를 맞대라는 명령이다. 민주당은 무리한 입법 폭주를 멈추고 지역균형발전을 촉진할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위한 산은법 개정안과 밀린 민생법안들부터 시급히 처리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여야는 협치와 정치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소선거구제 개편을 적극 검토할 일이다.
2024-04-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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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노년 유권자의 냉철한 판단이 절실한 이유
제22대 총선이 27일로 사전투표까지 불과 9일, 본투표까진 14일 남았다. 28일부터는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4·10 총선 후보는 전국 254개 지역구에 699명이 등록해 2.8 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각 당의 득표율과 자체 순번에 따라 정해지는 46개 의석을 놓고 경쟁하는 비례대표 후보의 경우 38개 정당에서 모두 253명을 추천해 평균 경쟁률이 5.5 대 1에 이른다.
이들 중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후보가 꽤 많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역구 후보 가운데 무려 34.6%가 전과자라는 것이다. 음주운전, 사기, 횡령, 상습 체불 등 죄질이 나쁘거나 다수의 전과가 있는 후보가 적지 않아 충격적이다. 비례대표 후보도 25%가량은 전과자다. 이들이 공당의 면죄부를 받아 출마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여야가 당초 국민의 정치 불신을 의식해 인적 쇄신을 통한 정치 혁신을 꾀하는 등 시스템 공천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탓이다. 막말을 일삼거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철저한 검증 없이 경선 기회를 주고 공천까지 했다. 결격 사유가 드러나 민심이 나빠진 뒤에야 마지못해 공천을 취소한 일도 있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인물 됨됨이와 경쟁력보다는 각각 친윤(친윤석열)·친명(친이재명)계 후보 공천에 열을 올리면서 부실 검증이 빚어진 결과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다.
이제는 유권자의 시간이다. 여야 후보들을 면밀하게 살펴 냉철한 판단으로 옥석을 가리는 게 유권자들의 몫이다.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 부적격 후보를 걸러내고 참된 일꾼을 국회로 보내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 전체 유권자의 31.4%를 차지하는 60세 이상 노년층 유권자의 역할과 사명감이 특히 중요하다. 이번 총선의 노년 유권자 비중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 현상 속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18~19세와 20·30대를 합친 유권자 비율 31.2%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총선의 향방이 60대 이상 연령층의 투표 상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역대 각종 선거에서 통상 노인층 투표율이 젊은 층에 비해 훨씬 높았던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노년층의 한 표 한 표가 매우 중요해졌다. 노년층에게 여느 선거 때보다 신중한 판단과 올바른 선택이 요구되는 이유다.
노년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을 기해 안정된 노후를 위한 일자리 확대, 각종 지원금 증액 등 다양한 복지책을 여야에 요구하고 있다. 내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1000만 명)를 넘어설 전망인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년층이 노인복지 정책과 공약에 관심이 큰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노인층의 45.6%가 빈곤한 데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빈곤율이 상승한다는 최근 보건복지부 발표가 나온 터다. 한국 노인 빈곤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상위권이며 극단적 선택과 고독사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바다. 따라서 노인복지 정책과 공약에 대한 허실을 잘 따져보는 게 바람직하다. 여야와 후보들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한층 커진 노년층 표심을 노려 실행이 어렵고 나라 곳간 사정을 무시한 사탕발림식 대책을 무분별하게 쏟아낼 공산이 커서다. 노년층 구미에 맞더라도 꼼꼼히 검토해 선심성·포퓰리즘 공약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노년 유권자들이 현명하고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고물가·고금리에다 저성장 장기화, 청년 취업난, 세대 갈등, 저출생 등으로 온 국민의 삶이 힘들고 국가 존립마저 위태로운 시기다. 노인 권익만 챙겨선 어르신 대접을 받을 수 없다. 각 당과 후보들이 다른 연령층과 현안 해결을 위한 공약도 제시하고 지역과 국가 발전의 비전을 갖고 있는지도 점검해 투표에 반영해야만 어른답다고 할 수 있겠다.
진영논리를 앞세운 여야가 “정권 심판” “제1야당 타도”를 외치는 정치 바람에 동조하거나 혈연, 지연, 학연 같은 친소관계에 빠져 ‘묻지마’ 투표를 한다면 고착화한 거대 양당제의 폐해를 줄일 방도가 없다는 사실도 명심할 일이다. 앞으로 친윤·친명계와 부적격자가 대거 당선된다면 21대 국회보다 격렬한 정쟁은 불 보듯 뻔하다. 여야가 민생고와 경제난은 안중에도 없이 당리당략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극심한 대립과 충돌을 지속하며 일하지 않는 행태가 심해질까 우려된다.
노년 유권자들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경험과 연륜에 걸맞은 판단을 내릴 때가 이번 총선이다.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을 유심히 보고 인물 본위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수많은 특권을 누리며 군림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민의를 잘 대변하고 지역 발전과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성실한 일꾼을 뽑아야 한다. 여기에 노년층이 귀감을 보여야 한다. 정치권이 유권자를 진정 두려워하는 풍토와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길이다. 이게 정치 개혁일 테다.
2024-03-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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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출산 가정에 대통령 축전과 선물을
“대통령은 신생아와 산모에게 축전과 선물을 보내라.” 이는 칼럼 끝부분에서 강조하려는 결론이다. 서론을 시작하기 앞서 글의 형식을 파괴하며 이 같은 주장을 맨 먼저 꺼낸 까닭은 긴 내용을 꼼꼼하게 읽을 생각이나 여유가 없는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요즘은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짧은 SNS 숏폼 콘텐츠가 대세다. 그러므로 축전과 선물 얘기를 언급한 첫 문장만 보고도 의도를 알아챈 사람은 이 칼럼을 계속 읽지 않아도 괜찮다.
지난 1일 부산 기장군 모 동네의원. 배가 아파 이곳에 내원한 임신부가 갑자기 출산하면서 다급한 사태가 벌어졌다. 29주 만에 태어난 아기가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의원에선 손쓸 방도가 없어 큰 병원으로 신속히 옮겨야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는 이송 과정에서 울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조산아의 숨이 끊어지지 않게 응급 처치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또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빨리 찾으려고 소방 당국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은 끝에 경남 양산부산대병원에 제때 도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간 날은 공휴일이자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계획에 반발한 전국 대형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집단행동에 들어간 지 10일째였다. 곳곳에서 입원과 수술, 진료가 거부되거나 연기돼 의료대란을 빚고 있었다. 이 와중에 발 빠르고 침착한 대처로 제 역할을 다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조산아를 구한 소방과 구급대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박수받아야 할 이는 또 있다. 이번에 위태로운 상태로 세상에 나와 현재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신생아와 분만의 고통을 무릅쓰고 자식을 낳느라 수고한 애엄마가 바로 그들이다. 모두 축하받아 마땅하다. 수도권이든 비수도권이든 출산율이 급락해 국가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소중한 새 생명의 탄생은 한 가정은 물론 그 동네와 지역의 큰 기쁨이요, 나라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갓난아이는 국가적인 축복이 필요한 존재라고 하겠다. 출산 통증을 참아내고 경사를 만든 산모의 위대함에도 사회의 칭송이 자자해야 하는 건 당연할 테다.
한데, 지금까지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소속 고위 공직자는커녕 실무자가 출산 가정을 찾아 축하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신생아 혹은 산모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을 리도 만무하다. 기껏해야 급격한 인구 감소 탓에 지역소멸 위기감에 전전긍긍하는 농촌에서 읍·면 공무원이나 마을 주민이 가끔 아기가 출생하면 조촐한 축하 이벤트를 마련하는 게 고작이다.
국가 재앙과 다를 바 없는 초저출생 현상에도 불구하고 일반 신생아와 산모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너무나 소홀하다. 이러니 기성세대보다 경제적으로 팍팍한 삶에 허덕이는 청년층이 어찌 애를 낳겠단 마음을 가지겠는가. 더구나 저소득층 젊은이들에게 2세 계획은 언감생심이다. ‘유전유자녀, 무전무자녀’란 신조어가 회자할 정도다.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은 데다 엄청난 산고가 겁나 아예 일찌감치 출산을 접었다는 부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인구절벽’이 닥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대적인 분위기 전환이 절실하다. 출산은 정부와 국민이 축복해야 할 국가의 경사이며 가문의 영광이라는 변화된 인식을 심고 확산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출산 장려의 절박함을 뼈저리게 느껴 직접 나서야 할 때다. 대규모 국제대회 등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국민의 긍지를 드높인 스포츠 선수와 문화예술인에게 대통령 명의로 축전이 날아간다. 앞으로는 대통령이 출생아와 산모 한 명 한 명에게 의미를 부여한 축전을 보내도록 하자. “고생했다” “잘했다” “고맙다” “축하한다”는 최고 지도자 말은 출산의 기쁨을 배가하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출산 부부는 살맛이 나 활력이 샘솟을 것이 분명하다. 축전은 아이가 건강하고 올바르게 자라는 데 동기 부여가 되지 싶다. 이를 위해 행정 당국과 산부인과를 둔 병의원이 연계할 경우 원활한 아동 관리와 함께 아동 학대·유기 방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통령이 명절마다 각계각층 일부에 지역 특산물 위주로 전달하고 있는 선물을 출산 가정에도 적용할 일이다. 꽃다발, 대통령 기념 시계, 건강식품, 육아용품을 곁들이면 더욱 좋겠다. 명절 선물을 받는 대상 중에는 여권 지지자와 중산층 이상이 많아 다수 국민의 위화감과 소외감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이 부분을 개선해 출산이 있을 때마다 선물을 안긴다면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출산 가정을 위한 축전과 선물에 공을 들여 봄직하다. 이를 계기로 백약이 무효하고 겉치레가 많은 저출생 대응 정책이 출산 친화 기조를 조성하는 실효성 높은 대책들로 바뀌어 최악의 합계출산율을 끌어올리기를 바란다.
2024-03-0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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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상전 아닌 성실한 머슴을 뽑자
봄기운을 타고 선거철이 찾아왔다. 22대 총선을 50여 일 앞두고 여야의 표심 잡기와 예비후보들 간 공천 경쟁이 치열하다. 이와 달리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 대부분의 시선은 싸늘하다. 저성장과 고물가·고금리에 시달리는 서민들 가슴속에 정치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가득해서다. 설 연휴 기간 전국 표밭 갈이에 나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이 같은 민심을 확연히 느꼈을 게 분명하다. 이는 양당이 연휴가 끝나자 앞다퉈 민생을 강조한 논평을 내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두 당에 희망을 기대하기는 힘들지 싶다. 민생이 어렵고 국민 불만이 커진 데 대해 뼈저린 반성보다는 상대당 탓만 해대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로 당당한 태도로 “정권 심판”과 “거대 야당 타도”를 외친다. 거대 양당이 지난 4년간 경제 위기와 민생고를 외면한 채 당리당략을 최우선한 정쟁의 늪에 빠진 모습은 여전하다. 총선 과정에서는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진흙탕 싸움을 벌이며 더욱 극심하게 대립할지 모른다.
21대 국회를 돌이켜보면 최악 수준이라 평가할 수 있다. 민주당은 절대다수 의석을 믿고 자기 당에 유리한 입법 독주를 일삼은 데다 이재명 대표 방탄에 혈안이 됐다. 국민의힘은 야권을 설득해 협치를 이끌어내는 정치력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무능한 여당’ ‘마피아 같은 제1야당’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국회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되레 이념의 양극화와 국론 분열을 조장했다. 결국 국정은 정치 실종에 발목이 잡혀 차질을 빚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됐다. 정치 불신과 혐오가 증폭하고 일각에서 국회 무용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개개인도 자질적인 문제가 많다. 현역 의원은 임기 초 국회에서 국민 앞에 선서를 한다. 헌법을 준수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단 다짐이다. 그런데 이 선서에 충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소속당 지도부 눈치를 보지 않고 당론에 휘둘리지 않으며 국민 이익을 좇아 열심히 일하는 소신 정치인이 매우 드문 게 엄연한 현실이다. 21대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민생 법안이 숱해 법안 가결률이 역대 최저인 5.6%에 불과하고 전체 의원의 공약 이행률이 51.8%에 그친 원인이 여기에 있다. 부산 국회의원들의 공약 이행률은 더 낮은 45.2%라 개탄스럽다.
4·10 총선에서 선출될 22대 선량들이 정쟁에 매몰돼 본연의 임무에 소홀한 21대 행태를 답습하는 건 정말 곤란하다. 무위도식하며 불체포·면책 특권 등 180여 가지 혜택은 찾아서 누리는 상당수 국회의원이 어김없이 챙겨가는 거액의 세비가 너무나 아깝다. 비위나 범죄에 연루돼 피고인 신분으로 수사·재판을 받는 의원도 수십 명에 달한다. 그러면서도 서울에서든 지역구에서든 귀빈 예우를 요구하거나 받으며 상전 노릇하기가 다반사다. 이들에게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가 유효한 것은 선거철뿐일 테다. 한 표가 아쉬워 머슴을 자처하며 허리를 과할 정도로 굽히고 사탕발림 공약을 남발하다 정작 국회에 입성하면 태도를 바꿔 목에 힘주고 나 몰라라 하기 일쑤다.
이같이 몰염치하고 반개혁적인 인사는 거대 양당의 총선 예비후보 가운데 많이 보인다. 양당 내 계파 갈등으로 이합집산하는 신당 추진 세력에서도 눈에 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적 쇄신이 이뤄지지 않은 까닭이다. 각 당 전략 공천자 중엔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도나 연고 없이 지명도와 스펙만 앞세운 이들도 있다. 유권자들이 냉철하지 못하면 국민보다 정당 이익을, 공익보다 사익을 챙길 우려가 있고 득표 기술도 능란한 출마자에게 속아 넘어갈 공산이 크다. 그랬다간 볼썽사납고 국력을 낭비한 21대 국회 꼴이 나기 십상이다.
지금은 과도한 집중으로 폐해가 심각한 수도권과 인구 급감과 경제 쇠퇴로 소멸 위기에 처한 비수도권의 공멸을 막기 위한 지역균형발전이 절실하다. 다 함께 잘 사는 지방시대를 실효적으로 열 만한 참일꾼이 대거 필요하다. 따라서 유권자들의 판단 기준은 정당과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인물이 돼야 한다. 제대로 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지역발전에 매진할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뜻이다. 권력과 서울 대신 지역을 쳐다보고 지역민을 위해 헌신하면서 민의를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 이를 선택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역량 있는 소수정당 출신도 국회 진출이 가능해 거대 양당 체제의 정치 양극화 폐단을 줄일 수 있다. 이번 총선은 국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정치 개혁을 이룰 기회다. 성실한 공복 발굴을 위해 현명하고 꼼꼼한 주권 행사가 요구된다. 안 그러면 당선자를 받드는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24-02-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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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한국해양대 총장 공석, 교육·해수부 뭣하나
한국해양대는 1945년 부산에서 ‘해양입국’을 기치로 내걸고 개교했다. 이후 79년 역사를 통해 해양 분야 전문 인력을 숱하게 양성하며 해양 특성화 종합대로 발전했다. 이 국립대는 한국경제 고도성장에 크게 기여한 해기사의 요람이다. 그간 선장과 기관사 등 1만여 명의 고급 해기 인력을 배출했다. 해기사들은 우리나라가 수출로 먹고살면서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토대 역할을 한 해운산업의 역군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1960~90년대 해외에서 선원으로 취업해 벌어들인 82억 6178만여 달러의 막대한 외화는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다음 달로 우리 선원이 해외 취업에 나선 지 60주년이 돼 한국해대가 생긴 의미를 더한다.
한국해대는 몇 해 전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해양 특성화 종합대 도약’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때부터 세계 해양의 미래를 선도하는 글로벌 대학의 꿈을 키우며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이 대학 발전의 시곗바늘은 지난해 11월 7일을 기해 멈춰 서버렸다. 이날 제8대 도덕희 총장의 4년 임기가 끝난 뒤 3개월 가까이 총장 자리가 공석이어서다. 앞서 7월 20일 제9대 총장 임용후보자 선거에서 1, 2순위를 차지한 두 교수가 교육부에 추천됐다. 그런데도 반년이 넘도록 정부의 후임 총장 임명이 이뤄지지 않은 채 감감무소식이다.
국립대 총장이 어떤 자리인가. 학생 지도, 교무 처리, 소속 공무원 지휘감독 등 학내 제반 업무를 통할하고 전반적인 대학 정책을 결정한다. 학교를 대표하는 대외적 활동도 많은 기관장직이다. 그 중요성 때문에 교육부 장관의 임용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장관급 대우를 한다.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가진 수장을 잃은 한국해대가 자칫 난파선이 되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현재 모습은 배가 선장도 없이 방향을 잃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꼴이다. 실제로 대학 총장이 공석인 탓에 일부에서 행정 공백을 빚는 데다 미래와 직결된 현안에 속수무책이다.
국립 부경대가 최근 한국해대에 여러 번 제안한 대학 통합이 대표적이다. 의사 결정권을 쥔 총장이 없어 대학 간 협의는커녕 내부 논의나 의견 수렴도 힘든 실정이다. 부경대 요구는 전국 대부분 대학이 사활을 걸고 있는 정부 글로컬대학 육성사업에 선정돼 5년간 1000억 원을 지원받자는 것으로, 묵살해도 될 사안이 아니다. 오는 8월 선정을 앞두고 적극 검토할 만하다. 융복합 시대에 한국해대와 수산기술에 특화한 부경대가 통합 혁신안으로 글로컬대로 지정돼 세계 최고 해양과학 종합대로 거듭나자는 게다. 올 들어 인천시가 해양대·해양수산대 설립 목표를 세우고 본격적인 추진에 나섰다. 이 문제 역시 한국해대로선 총장이 없어 판단과 대응이 어렵다. 반면 인천의 움직임은 가뜩이나 수도권 일극체제로 전국 인재들이 수도권 대학으로 몰리는 판국에서 한국해대의 존립을 위협하는 대형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한국해대 총장의 부재는 비슷한 시기에 총장 선거를 치른 서울과학기술대와 서울교대 두 국립대 총장이 지난달 28일 임명된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해대는 서울 밖 ‘지잡대’로 취급하며 나 몰라라 해도 상관없는 교육기관이 아니다. 교육부는 총장 임용후보자가 결격 사유가 있다면 더는 침묵하지 말고 정확한 이유를 밝혀야 옳다. 일언반구조차 없이 계속 방치하는 건 대학의 파행을 조장하고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처사다. 직무유기와 다를 바 없는 셈이다. 현 정부가 지방시대를 선포하며 지역·대학의 동반 성장을 위해 도입한 교육발전특구 제도에 역행하는 행태다. 정부의 대학 길들이기나 줄 세우기라는 의혹까지 살 수 있는 대목이다.
해양수산부도 교육부 문제로 치부해 외면해선 안 될 일이다. 정부의 ‘신해양강국’ 정책 실현에 한국해대의 경쟁력 강화와 참여는 필수적이다. 길어지는 총장 공석에 따른 어려움에 대해 해수부의 위기의식이 요구된다. 교육부와 대통령에게 한국해대의 중요성과 가치를 충분히 인식시켜 신속히 정상화해야 마땅하다. 한국해대는 2019년에도 교육부의 총장 1순위 후보 임용 제청 거부로 총장 공백사태를 빚었다. 교육부의 느긋함과는 달리 한국해대는 여러 업무 차질로 피가 마른다. 이를 지켜보는 대학 동문과 지역사회, 해양업계는 속이 갑갑하기만 하다. 이러니 해수부와 대통령실을 연결할 해양수산 전담 비서관이 필요하다는 업계 목소리가 줄기차게 나오는 것 아닌가.
교육부 장관과 해수부 장관은 뭣하고 있는가. 하루빨리 한국해대 총장을 임명하든지 아니면 재선거를 요청하든지, 정부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시급하다. 총장 공석이 더 장기화할 경우 장관의 사명감과 존재 이유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교육에 대한 애정이 없고 해양수산을 무시하며 부산을 홀대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2024-01-2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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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부산항만공사 독립은 요원한가
부경대는 매년 말 한국인의 바다에 대한 종합적 인식을 조사·분석한 ‘부경해양지수’를 발표한다.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지난 연말 내놓은 해양지수의 한 항목에선 부산항이 2022년에 이어 한국 대표 항구로 꼽혔다고 한다. 올해로 개항 148주년을 맞은 부산항이 국내 전체 수출입 화물의 76%, 컨테이너 물동량의 90%가량을 담당한 최대 무역항인 점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하다.
부산항을 관리·운영하는 기관은 2004년 1월 16일 출범한 부산항만공사(BPA)다. BPA가 지난달 선정한 ‘부산항 10대 뉴스’ 중 첫 번째를 장식한 게 ‘사상 최대 물동량’이다. 지난해 부산항에서 처리된 컨테이너 물량은 전년보다 3.1% 증가한 2275만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 1개). 개항 이래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란 반가운 소식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같은 대형 악재를 감안할 때 대단한 성과라고 하겠다.
이 같은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부산항은 위태롭다. 중국 주요 항만이 지난해 부산항이 힘겹게 지킨 세계 7위 컨테이너항 자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경제 패권을 다투는 G2 국가로 떠오른 중국의 항만들이 대규모 개발사업에 나서고 물동량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서다. 부산항은 BPA 창립을 전후한 시기에 컨테이너 물동량 기준 세계 3위였지만, 그동안 중국 항만들의 가파른 성장세에 밀려 순위가 점차 떨어지는 처지다. 부산항이 일본과 중국, 미국·유럽 간을 바닷길로 연결해 주는 입지적 장점과 BPA의 환적화물 유치 노력에 힘입어 싱가포르항에 이어 세계 2위 환적항을 유지하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된다.
부산항 항만 순위가 하락하는 원인의 하나를 BPA 경쟁력이 경쟁국들 항만공사에 비해 낮은 데서 찾을 수 있다. BPA는 항만 투자와 사업 추진에 제약이 많다. 항만업무는 해양수산부, 경영관리는 기획재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공기업으로 운영된 까닭이다. 반면 싱가포르항만공사(PSA)는 1997년 항만당국을 민영화한 개혁을 통해 설립돼 항만 개발·관리·운영에 자율적 결정권을 갖고 글로벌 항만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는 싱가포르가 오래전 부가가치 창출 규모가 엄청난 세계 1위 항만에 등극하고 항만·물류 대국으로 도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싱가포르가 근래 1인당 국민소득 6만 5000달러에 이르는 강소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다.
부산항과 싱가포르항의 격차가 커진 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BPA의 발목을 잡은 탓이다. 이 법에 따라 정부의 심한 간섭과 규제가 이뤄지면서 항만업무의 자율성·전문성·효율성을 높여 부산항을 경쟁력 있는 글로벌 해운·물류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BPA 설립 취지는 빛이 바래고 있는 셈이다. 결국 BPA는 직접적인 부두 운영은커녕 항만 관리만 하는 부두임대사업자 역할에 그치고 있다. BPA 사장과 본부장(부사장급) 직책은 해수부 고위직 출신의 ‘낙하산 인사’ 논란도 잦았다.
이 때문에 BPA의 자율권과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빗발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방공사화, 항만자치권 이양, 임원 인사권 보장 등의 요구는 묵살되기 일쑤여서 BPA 독립은 기약이 없다. 지난해 BPA가 공기업에서 정부의 관리감독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기타공공기관으로 신분이 바뀐 것이 고작이다. 여전히 BPA는 기재부에 예타를 신청해 승인받아야 하는 한계가 있다. 중요 업무의 하나인 항만 개발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이러니 ‘악조건에도 적극적인 BPA’라는 평가와 ‘공무원보다 경직된 조직’이란 지적이 엇갈린다.
BPA가 실질적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부산항을 세계 굴지의 메가 허브항으로 제대로 키우려면 독립성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BPA의 해수부 출신 역대 사장 대부분도 자율성 확대를 원했을 정도다. 지금처럼 해수부가 주도하는 항만정책 수립과 개발 과정에서 BPA가 소외되고 부산이 배제된다면 윤석열 정부가 선포한 지방시대에 맞춘 부산시 발전계획과 지역 특성에 잘 어우러지는 부산항을 조성하긴 어렵지 싶다.
부산항이 기로에 서 있다. 2040년까지 14조 원을 들여 21개 선석의 스마트 항만을 만드는 부산항 제2 신항(진해신항) 건설사업이 올해 착공한다. 이를 앞두고 경남에선 부산경남항만공사나 별도의 경남항만공사를 설립하자는 주장이 강하다. 부산항 북항, 신항, 진해신항의 시너지 극대화를 위해 통합 관리가 필요한 마당에 분열 조짐이 인다. 창립 20주년이 된 BPA가 글로벌 선진 항만들을 따라잡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부는 힘을 실어 줄 일이다. 윤 대통령이 추진을 약속한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 역시 가덕신공항과 인접한 부산신항의 활성화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다.
2024-01-1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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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칼럼] 암울한 계묘년, 희망찬 갑진년
2023년 계묘년이 저문다. 돌이켜보면 ‘토끼의 해’답게 부산시와 온 시민이 여느 해보다 열심히 달렸던 해로 평가할 수 있겠다. 일자리 50만 개 창출과 61조 원의 경제 유발 효과가 기대된다는 2030월드엑스포를 부산에 유치하려고 열정적으로 뛰었던 게다. 부산이 엑스포를 통해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면서 지방소멸에 마침표를 찍고 균형발전의 지방시대를 여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같은 바람과 달리 지난달 29일 받아든 것은 경쟁 상대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119 대 29라는 큰 표차로 진 성적표다.
엑스포 유치운동 과정에서 전 세계에 부산을 알려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인 정부와 부산시의 노력은 높이 산다. 하지만 백중세라며 유치전 판세 분석에 실패해 허망한 결과를 낳은 잘못을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뼈아픈 참패에 사과한 뒤 이달 6일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엑스포 유치에 애쓴 만큼 유치 불발에 따른 실망감이 큰 시민을 달랠 목적에서다.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은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응할 남부권 거점도시를 키워 지역균형발전을 꾀한다는 구상이다.
이후 글로벌 허브도시 얘기가 들릴 때마다 지난해 10월 부산·울산·경남 특별연합(메가시티)의 좌초에 대한 서운함을 느낀다. 부울경 메가시티 추진 이유 역시 수도권 일극화의 폐해를 극복하고 국토균형발전을 촉진하는 남부지역 초광역 경제권 형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을 받으며 잘 진행되던 메가시티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진 경남도지사와 울산시장, 강한 추진 의지를 보이지 않은 부산시장 등 국민의힘 소속 세 광역단체장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반면 국민의힘 중앙당은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수많은 서울 유권자를 의식해 서울이 더 팽창하는 ‘메가시티 서울’을 밀어붙이고 있다. 부울경 메가시티가 더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부산엑스포와 부울경 메가시티. 위기에 처한 지 오래인 부산경제는 지역 발전과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한 굵직한 두 사안이 물 건너가면서 끝을 모른 채 추락하는 모양새다. 조금이나마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부산은 지속적으로 침체해 수도권의 대항마는커녕 지역 생산성, 취업률 등 각종 경제지표 대부분이 언제나 전국 꼴찌 수준일 정도로 암울하다.
부산상의가 1만 5515개 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26일 내놓은 ‘산업 활력도 분석 결과’는 활기 잃은 지역 사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부산 기업의 경영·영업·고용 부문 활력이 2016년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인단다. 주력 산업인 제조업의 활력 수치마저 최저 상태라 여간 심각하지 않다. 부산에 대기업이 적은 데다 산업구조의 고도화가 이뤄지지 못한 까닭일 테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집중된 수도권과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만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다.
부산이 경기에 민감한 자영업과 서비스 업종 비중이 매우 높은 경제구조도 오랜 저성장과 내수 부진에 휘둘리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힘든 원인이다. 소비 위축과 고금리·고물가에 시달리다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대출 갚으려 힘겹게 버틴다는 소상공인의 한숨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결국 비용 절감을 위해 종업원을 내보낸 1인 자영업자가 속출하는 게 부산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부산의 경제력을 나타내는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는 3161만 원으로 17개 시도 중 14위에 불과하다. 서울 5161만 원, 전국 평균 4195만 원에 한참 뒤처진다.
그렇다고 한탄하거나 체념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엑스포 유치전에서 추구했던 ‘부산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먼저 윤 대통령이 글로벌 허브도시 추진을 뒷받침하기 위해 함께 약속한 관련 특별법이 2024년에 하루빨리 제정돼야 한다. 그리고 박형준 부산시장이 같은 맥락에서 부산을 싱가포르 같은 국제자유도시로 만들어 사람과 기업, 자금이 다 몰리도록 하겠다고 밝힌 포부를 구체화해야 한다. 정부와 부산시가 적극 머리를 맞대 세부적이고 실효적인 방안을 마련해 실천함으로써 공염불이 되지 않게 할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 성장과 도약의 활로를 찾고 희망을 키우기 위해 새판을 짜는 부산시의 자구책이다. 박 시장은 그간 엑스포에 쏟은 모든 힘을 앞으론 시정 구호인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행복도시 부산’을 현실화하는 데 집중할 때다. 청년·고령층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 확보, 고부가가치 신산업 육성, 산업구조 개편, 민생 안정, 정주환경 개선 등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진한 기존 시책을 재점검하고 새로운 발전 과제를 발굴해 도시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마땅하다. 희망찬 새해 갑진년 ‘청룡의 해’엔 부산이 반드시 용처럼 비상하기를 바란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2023-12-28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