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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아이유의 '네모의 꿈'
1980년대는 기존 가요 가사를 바꿔 부르는 개사곡이 유행한 시기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군사정권이나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으로 개사곡은 끝도 없이 생산됐다. 소위 민중가요나 운동가요로 불리는 노래들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기존 노래만큼 귀에 쏙쏙 들어오는 대중성은 기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개사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속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라는 가사를 ‘독재란 종말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로 바꿔 부르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그런가 하면 양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를 〈늙은 투사의 노래〉로 바꾸는 식으로 나이든 민주 투사의 넋두리를 잔잔하게 전달하기도 했다. 작곡이라는 전문적인 창작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누구나 귀에 익은 멜로디에 가슴 속 뜻을 실어 보내는 데 집중한 게 그 시절 개사의 특징이었다.
반면 국민 가요 반열에 오른 곡이 세월따라 바뀐 시대 상황에 맞춰 개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82년 발표된 〈독도는 우리땅〉이다. 일본의 가라오케 주점에까지 수록돼 한국인들이 일본 관광을 하면서도 주점에서 부르는 호기를 부린다는 이 노래는 최초 발표 이후 세 번이나 개사가 이뤄졌다. 1983년 첫 개사 때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2절 독도 주소 부분이 바뀌었고 2001년 두 번째 개사 때는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 부분이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몰라도’로 변경됐다. 가장 많이 개사된 2012년 곡에선 거리 단위가 ‘리’에서 ‘km’로 바뀐 것을 비롯해 평균기온과 강수량 수치, 특산물, 거주민 이름까지 대폭 수정돼 원곡만 아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최근엔 아이유가 1996년 곡 〈네모의 꿈〉을 리메이크하며 개사를 시도해 주목을 끈다.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라는 가사에서 조간신문을 스마트폰으로 바꾼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는 이가 점점 많아지는 시대상을 나름 반영하려 한 위트가 엿보인다. 하지만 아이유는 중간 부분 ‘네모난 스피커 위에 놓인 네모난 테이프’ 부분은 원곡 그대로 불렀다. 이에 카세트 테이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초등학생들이 테이프는 둥근데 왜 네모냐고 묻는 촌극이 벌어졌다. 테이프라고 하면 카세트 테이프를 먼저 떠올리는 아이유도 세월이 감에 따라 국민 여동생에서 국민 이모로 나이가 들어가는 듯하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
2025-07-0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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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다 팔아야 서울 한채
시골 동네 무성리에 사는 청년이 서울에서 살기 위해 상경했다. 그는 알고 있던 선배 형을 만났다.
형은 동생에게 “수락아, 서울에는 왜 왔니?”하고 물었다. 청년은 “형님, 저도 서울에 집을 사서 번듯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는 “동생아, 서울은 네가 생각하는 곳과 다르다”며 “어서 무성리 내려가라. 네가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네가 살던 무성리를 다 팔아야 한다.”
“네에에~?” 개그 프로그램 ‘서울의 달’에 나오는 한 콩트다.
서울의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를 말해주는 콩트지만 현실을 그다지 과장한 것 같지도 않다. 서울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아파트 전용 84㎡는 6월에 60억 원에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방 3개짜리 32평 아파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시절인 2019년. 한창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때였다. 김 장관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집값 좀 잡을 수 있는 대책이 없을까요”하고 물었다. 그도 매우 답답해하던 참이었다. 아무리 부동산 대책을 발표해도 집값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기자가 “금리가 너무 낮아서…”하고 말했다. 당시 초저금리 시대였다. 그러자 김 장관은 “금리는 우리가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규제와 공급 대책을 함께 써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 마지막에야 공급의 중요성을 알고 대규모 공급 대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파트는 금방 공급되지 않는다. 공급 대책 발표 8~10년 후에야 입주가 가능하다.
2025년 초여름,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 6월 넷째주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송파구 0.88%, 강남구 0.84%, 서초구 0.77%, 강동구 0.74% 등이다. 1주일 만에 이렇게 오른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은 저금리에 대한 기대감, 수도권 초집중화, 강남불패 신화, 저조한 신규 주택 공급, 세제 완화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지방 거점도시를 키우지 않고 수도권에만 ‘올인’한 정부 정책 때문이다. 정부가 수도권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으니 수도권에 사람이 몰리고, 또 사람이 몰린다고 그 대책으로 GTX와 광역교통망, 신도시 등 인프라를 또 만들면서 수도권 초집중의 고리가 반복되고 있다. 지방을 ‘촌’이라고 부르고, 지방에 인프라를 건설한다고 하면 ‘헛돈 쓴다’고 생각하는 정부와 수도권 언론이 기어코 이렇게 만든 것이다.
김덕준 세종취재부장 casiopea@
2025-07-0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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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AI 시대 일과 인재
솔로프러너(Solopreneur). 1인(Solo) 기업가(Entrepreneur)라는 의미의 합성어다. 1인 자영업자 의미로 출발했다가 최근 생성형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1인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됐다. 예컨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려면 웹 개발자와 디자이너, 마케터, 콘텐츠 제작자 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AI가 소스 코드, 디자인, 제품 설명에 마케팅 전략까지 만드는 세상이다. AI를 잘 다룰 줄 알면 한 사람이 이 모든 역할을 ‘지휘’할 수 있다.
‘커서(Cursor)’ AI를 이용하면 코딩 문외한도 근사한 홈페이지를 뚝딱 만든다. 한글 프롬프트를 이해하고, 무료 회원 제약이 없어 일반인 진입 장벽이 사라졌다. 예컨대 특정 주제의 홈페이지 제작을 명령하면 순식간에 스타일 정보(CSS)와 동적 기능(PHP)까지 갖춘 페이지를 생성한다. “테일윈드 CSS로 세련되게 바꿔.” “푸른색 바탕으로 교체해.” “유튜브 동영상을 넣어.” AI가 주제에 맞춘 이미지와 콘텐츠를 생성하는 것도 당연. 숙련된 조수 여럿의 몫을 수행한다고 보면 된다. 이러니 한 초등생이 ‘커서’를 익혀 45분 만에 ‘해리포터 챗봇’ 페이지를 만들었을 정도다.
IT 업계에 미친 영향은 ‘커서’가 먹통이 되면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접속 불능, AI 기능 미작동 상태가 발생하자 국내는 물론 해외 개발자 커뮤니티에는 “오늘 할 일이 없어졌다”며 난리였다. 특히 “‘유기농 코딩(수작업)’으로 돌아가자(Back to organic coding)”는 푸념도 많았다. 이미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은 코드의 25%를 AI가 만든다. IT 업계에 대량 해고가 잇따르는 이유다. 반복적이고 단순해서 표준화가 된 업무를 맡는 저연차 보조직이 사라지고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IT 업체가 몰린 판교·강남에서 신규 채용 공고가 급감했다. AI로 대체 가능한 기존 인력은 희망 퇴직과 전환 교육 대상이다. ‘AI 구조조정’인 셈이다. 하지만 AI·클라우드·데이터 전문 인력, 기획·전략·관리·소프트 스킬 기반 직무는 수요가 급증해 ‘귀하신 몸’이다. AI 관련 전문성에 인간 고유 능력, 즉 창의성을 결합한 융합형 인재는 각광을 받는다. 코딩을 몰라도 창의성에서 뛰어난 인문계 전공자의 생산성이 더 높을 수 있는 세상이다. 챗GPT 충격파로부터 불과 2년 7개월 만에 일과 인재의 개념은 급변했다. AI 기능을 잘 다루는 ‘슈퍼 개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2025-07-02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