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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한국 근대 센서스100년
전국적인 인구주택총조사를 뜻하는 센서스(census)는 ‘가치를 매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censere)에서 유래했다. 기원전 5세기 인구조사를 담당했던 로마의 감찰관(censor)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한반도에서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인구조사를 시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신라는 3년에 한 번씩 정교한 인구조사를 실시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우리나라 인구조사의 역사는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졌고 호구조사라는 이름으로 계속됐다. 여기서 호(戶)는 집이고, 구(口)는 사람을 뜻한다. 당시 인구조사의 주된 목적은 백성들의 노동력을 징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근대적 의미의 인구총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10월 이루어진다. 당연히 한반도 수탈을 위한 수단이었다. 이를 근대 센서스의 출발점으로 보는 이유는 ‘영토 내 모든 사람’, ‘일정 시점 기준’ 조사 등 유엔이 정한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그 이전 인구조사는 노비, 여성, 노인을 제대로 포함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인구총조사는 이때부터 시작됐지만, 주택총조사는 이보다 한참 늦은 1960년 이루어졌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시급한 인구 파악이 필요해지면서 1950년으로 예정됐던 인구조사가 1년 앞당겨 실시된 적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조사가 확산한 데는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1766~1834)의 영향이 컸다. 그는 1798년 〈인구론〉에서 급속한 인구 증가의 위험성을 경고했고 이후 여러 나라에서 인구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통계청이 센서스 100주년을 맞아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조사 항목’을 최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는 가족 돌봄 시간, 결혼 계획, 비혼 동거 등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항목들이 포함됐다. 또한 다문화 가구와 외국인을 대상으로는 가정 내 사용 언어와 한국어 말하기 실력은 어떤지 조사할 계획이다. 센서스는 더 이상 권력이 사람을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사회의 손짓이 된 셈이다.
이제 농촌은 인구가 줄고, 도시는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시대가 됐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조사의 시선이 바뀌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얼마나 사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인구와 주택을 헤아린다는 것은 단지 숫자를 세는 일이 아니다. 센서스가 사람의 결, 삶의 결, 그리고 시대의 결을 읽어내는 지문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5-07-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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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아이유의 '네모의 꿈'
1980년대는 기존 가요 가사를 바꿔 부르는 개사곡이 유행한 시기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군사정권이나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으로 개사곡은 끝도 없이 생산됐다. 소위 민중가요나 운동가요로 불리는 노래들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기존 노래만큼 귀에 쏙쏙 들어오는 대중성은 기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개사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속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라는 가사를 ‘독재란 종말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로 바꿔 부르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그런가 하면 양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를 〈늙은 투사의 노래〉로 바꾸는 식으로 나이든 민주 투사의 넋두리를 잔잔하게 전달하기도 했다. 작곡이라는 전문적인 창작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누구나 귀에 익은 멜로디에 가슴 속 뜻을 실어 보내는 데 집중한 게 그 시절 개사의 특징이었다.
반면 국민 가요 반열에 오른 곡이 세월따라 바뀐 시대 상황에 맞춰 개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82년 발표된 〈독도는 우리땅〉이다. 일본의 가라오케 주점에까지 수록돼 한국인들이 일본 관광을 하면서도 주점에서 부르는 호기를 부린다는 이 노래는 최초 발표 이후 세 번이나 개사가 이뤄졌다. 1983년 첫 개사 때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2절 독도 주소 부분이 바뀌었고 2001년 두 번째 개사 때는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 부분이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몰라도’로 변경됐다. 가장 많이 개사된 2012년 곡에선 거리 단위가 ‘리’에서 ‘km’로 바뀐 것을 비롯해 평균기온과 강수량 수치, 특산물, 거주민 이름까지 대폭 수정돼 원곡만 아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최근엔 아이유가 1996년 곡 〈네모의 꿈〉을 리메이크하며 개사를 시도해 주목을 끈다.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라는 가사에서 조간신문을 스마트폰으로 바꾼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는 이가 점점 많아지는 시대상을 나름 반영하려 한 위트가 엿보인다. 하지만 아이유는 중간 부분 ‘네모난 스피커 위에 놓인 네모난 테이프’ 부분은 원곡 그대로 불렀다. 이에 카세트 테이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초등학생들이 테이프는 둥근데 왜 네모냐고 묻는 촌극이 벌어졌다. 테이프라고 하면 카세트 테이프를 먼저 떠올리는 아이유도 세월이 감에 따라 국민 여동생에서 국민 이모로 나이가 들어가는 듯하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
2025-07-0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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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다 팔아야 서울 한채
시골 동네 무성리에 사는 청년이 서울에서 살기 위해 상경했다. 그는 알고 있던 선배 형을 만났다.
형은 동생에게 “수락아, 서울에는 왜 왔니?”하고 물었다. 청년은 “형님, 저도 서울에 집을 사서 번듯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는 “동생아, 서울은 네가 생각하는 곳과 다르다”며 “어서 무성리 내려가라. 네가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네가 살던 무성리를 다 팔아야 한다.”
“네에에~?” 개그 프로그램 ‘서울의 달’에 나오는 한 콩트다.
서울의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를 말해주는 콩트지만 현실을 그다지 과장한 것 같지도 않다. 서울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아파트 전용 84㎡는 6월에 60억 원에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방 3개짜리 32평 아파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시절인 2019년. 한창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때였다. 김 장관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집값 좀 잡을 수 있는 대책이 없을까요”하고 물었다. 그도 매우 답답해하던 참이었다. 아무리 부동산 대책을 발표해도 집값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기자가 “금리가 너무 낮아서…”하고 말했다. 당시 초저금리 시대였다. 그러자 김 장관은 “금리는 우리가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규제와 공급 대책을 함께 써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 마지막에야 공급의 중요성을 알고 대규모 공급 대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파트는 금방 공급되지 않는다. 공급 대책 발표 8~10년 후에야 입주가 가능하다.
2025년 초여름,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 6월 넷째주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송파구 0.88%, 강남구 0.84%, 서초구 0.77%, 강동구 0.74% 등이다. 1주일 만에 이렇게 오른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은 저금리에 대한 기대감, 수도권 초집중화, 강남불패 신화, 저조한 신규 주택 공급, 세제 완화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지방 거점도시를 키우지 않고 수도권에만 ‘올인’한 정부 정책 때문이다. 정부가 수도권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으니 수도권에 사람이 몰리고, 또 사람이 몰린다고 그 대책으로 GTX와 광역교통망, 신도시 등 인프라를 또 만들면서 수도권 초집중의 고리가 반복되고 있다. 지방을 ‘촌’이라고 부르고, 지방에 인프라를 건설한다고 하면 ‘헛돈 쓴다’고 생각하는 정부와 수도권 언론이 기어코 이렇게 만든 것이다.
김덕준 세종취재부장 casiopea@
2025-07-03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