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충무’ 하루 2시간씩 짧아져… 원도심 한복판의 ‘수명 역주행’ [함께 넘자 80세 허들]
① 벌어진 수명 격차
부산 62개 생활권 나눠서 분석
서구 아미·충무·부민·초장동
10년간 기대수명 지속적 감소
지역 쇠퇴, 건강 악화로 이어져
기대수명 최저 생활권 반송석대
중장년층 사망률, 우동 4배 달해
수명 격차, 40대부터 누적 ‘확인’
주거 취약지, 수명 증가 폭 낮아
신도시 기대수명 상승세와 ‘대조’
코로나19 기점으로 양극화 확대
“해당 지역 취약성 알리는 경고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정책 필요”
20년 뒤 우리 동네에서 태어난 아이는 나보다 몇 살 더 오래 살게 될까? 20년 전 누군가는 눈부신 의료 기술의 발달에 발맞춰 어련히 남들만큼은 기대수명이 늘어나리라고 상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20년 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같은 부산에 살아도 어느 생활권에 사느냐에 따라 수명을 꼬박꼬박 저금해 6세 이상 증가한 지역이 있는 반면, 20년간 2세 연장조차 이루지 못한 생활권도 있다. 기대수명 정체를 넘어 장기간 감소하는 ‘역주행’도 확인됐다. ‘단명하는 도시 부산’이라는 악명이 몇몇 생활권의 오래된 소문으로 굳어져 가는 것이다.
11일 〈부산일보〉는 건강사회복지연대와 함께 지난 20년 치(2005~2024년) 부산 62개 생활권의 기대수명을 5개년 4개 시점(2005~2009, 2010~2014, 2015~2019, 2020~2024)으로 나눠 분석했다. 생활권은 2040부산도시기본계획 소생활권 분류를 따랐다.
■매일 2시간 더 짧아진다
‘죽어가는 마을’. 부산 아미충무 생활권(서구 아미·충무·부민·초장동)에서 10년 넘게 활동해 온 사회복지사 A 씨는 지난달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현장에서 느낀 기대수명 감소의 원인을 하나하나 떠올려가다 이 단어를 뱉었다. “사망이나 전출로 인한 인구 감소가 최근에 많았어요. 예전엔 인구가 지금처럼 많이 줄지 않아서 관계 형성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노후화 주택에 주민들이 드문드문 살아요. 죽어가는 마을처럼 느껴질 수도 있죠.”
분석 결과, 아미충무 생활권은 10여 년에 걸쳐 기대수명이 계속해서 감소한 유일한 생활권이다. 2010~2014년 81.39세였던 기대수명은 조금씩 하락을 거듭하다 2020~2024년 80.60세를 기록했다. 10년간 매일 2시간씩 수명이 깎인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명이 짧아지는 동안 주민들의 건강 행태 지표는 개선됐다. 고위험 음주율과 흡연율은 낮아졌고 걷기 실천율은 부산 평균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반면 주민의 우울감 경험률은 부산 평균 이하에서 이상으로 높아졌다. 1인 가구 비율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2015년 39%에서 10년 뒤인 2024년 54%로 늘었다.
현장에서는 저소득 고령 1인 가구가 밀집하고, 외출을 꺼리게 하는 가파른 경사, 빈집 증가로 인한 커뮤니티 붕괴 등이 겹쳐 건강 악화를 부추겼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곳 생활권에서도 연령표준화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아미동의 마을건강센터에서 일하는 활동가이자 주민 엄상아 씨는 “센터 활동에 참여하면서 활기를 되찾는 분들도 있지만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집밖에 잘 나오지 않으려 하는 경향도 있다”며 “마을이 전반적으로 늙어가고 있어서 개선보다는 유지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양극화 ‘알람’ 울렸다
기대수명은 연령별 사망률을 기반으로 산출된다. 기대수명만으로 사망 원인이 된 질병까지 진단할 수는 없지만 지역의 총체적 건강 수준을 살펴볼 수 있다.
2020~2024년 기대수명 최저·최고 생활권인 반송석대와 우동의 연령대별 사망률을 비교해 보면, 중장년층의 사망이 수명 격차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반송석대의 40~49세 사망률은 0.00273으로 우동(0.00081)의 3배를 넘고, 50대에 들어서면 우동의 4배 수준까지 벌어진다. 만약 우동과 반송석대의 사망률이 같았다면 반송석대에서는 40대 45명, 50대 132명, 60대 244명이 더 살 수 있었다.
반면 85세 이상 연령층에서 두 생활권의 사망률은 거의 동일했다. 기대수명의 격차가 단순히 노령층에서 벌어지는 다수 사망의 문제가 아닌, 초기 장년층인 40대에서부터 축적된 결과인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높은 생활권의 수명이 대체로 더 짧았고, 20년간 수명 증가 폭도 낮았다. 2020~2024년 기대수명 하위 10개 생활권 중 7곳은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부산 평균(6.39%)보다 높았다. 또 1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20년간 수명 증가 폭이 부산 전체(4.61세)에 미치지 못했다.
대체로 취약계층이 밀집한 영구임대아파트나 산복도로를 포함한 지역이었으며, 공업·상업지와 인접하거나 도시 외곽 생활권도 포함됐다.
반면 20년간 기대수명 상승이 두드러진 생활권은 정관(+6.7세), 우동(+6.57세), 거제(+6세) 등이었는데, 이들 지역에서는 도시 개발이나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축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양극화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확대됐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3개 시점에서는 아미충무를 제외한 나머지 61개 생활권에서 기대수명이 감소하지 않았고, 단지 증가 폭 차이에 따른 격차가 나타났다. 그러나 팬데믹을 거친 2020년 이후 시점에서는 18개 생활권에서 기대수명이 이전 시점 대비 짧아지면서 격차를 더 넓혔다.
건강사회복지연대 김새롬 정책위원(인제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은 “계급·계층에 따른 지역별 분리와 고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 분석을 통해 숫자로 확인했다고 볼 수 있다”며 “특히 코로나를 계기로 몇몇 생활권에서 기대수명이 감소한 것은 그곳 주민이 더 취약하다는 것을 알리는 알람 사인이며, 해당 지역은 관계를 중심으로 한 건강 증진 활동이 더 많이 필요한 곳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정책위원은 이어 “한국 사회 전체가 저성장에 접어든 지금, 도시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특히 건강에 대해서는 중산층 중심의 정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밝혔다.
부산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윤태호 교수는 “수명을 비롯한 건강 수준 격차는 개선하려는 목적의식을 갖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투자한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라며 “이제는 단순한 지역 개발보다는, 건강 격차가 나타난 지역 주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방식에 초점을 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