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대전환의 시대, 기술혁신으로 파고를 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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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근 부산항만공사 사장

2003년, 필자가 청년 공직자로서 부산해수청에 발령받아 마주한 바다는 거칠고 역동적이었다. 그해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장기간 이어진 화물연대 파업이 있었고, 9월엔 최악의 태풍으로 불린 ‘매미’가 부산항을 할퀴고 지나가 크레인 붕괴로 인해 일부 부두 기능이 멈춰 서게 되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부산항의 성장세가 꺾일 것’이라며 우려했지만, 부산항과 이곳에 삶의 터전을 둔 노동자들은 하나가 되어 이를 극복했다. 그리고 바로 그해 말, 부산항은 우리 항만 역사상 최초로 연간 1000만TEU의 물동량을 처리하며 기적 같은 회복력으로 세계 항만물류업계를 놀라게 했다.

2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부산으로 돌아와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 산업화와 고도 성장기의 최선봉에 섰던 이 도시는 이제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수식어가 나붙고, 청년층의 이탈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성장 동력이 되어야 할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며, 미래를 이끌 스타트업 기업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게 현실이다.

부산항 '디지털화' '탈탄소화' 혁신 속도

지능형 물류 플랫폼·친환경 벙커링 인프라

선택 아닌 생존의 문제… 결단과 실행을

새로운 성장 동력 원천은 '바다와 청년'

지난 30여 년간 해양 정책에 몸담고 살아온 탓일까? 필자는 부산이 다시 도약할 기회를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산항은 지난 십수 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를 처리하고 있는 항만 중 하나이다. 개항 이래 한 세기 반 동안 대한민국 수출입 관문으로서 국가 경제를 뒷받침해 왔고, 글로벌 환적항 가운데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지키며 수십 년간 견조한 성장세를 묵묵히 이어가고 있는 항만을 가진 도시가 바로 이곳 부산이다.

하지만 지역 항만물류 산업이 국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견주어 보면, 아직 고삐를 늦추긴 이르다. 로테르담항이 창출하는 경제효과는 네덜란드 전체 GDP의 약 7%를 점유하고, 싱가포르항의 경우는 6%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부산항의 경우는 0.2%대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은행 부산본부가 1월 발표한 ‘부산 지역 항만물류 산업의 현황 및 발전 방안’에 나와 있다.

싱가포르와 로테르담이 항만을 통하여 각각 동아시아 해운의 중심과 유럽의 산업 허브로 자리 잡았듯이 부산 또한 항만을 성장축으로 하여 다가오는 대전환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으로 대표되는 세계 산업사에서 유례없는 대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 전환은 ‘기술혁신’을 촉매제로 하여 이루어지고 가속화되며 이 기술혁신은 청년 과학자의 열정과 틀을 깨는 사고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청년들이 기술혁신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은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구축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서 만들어지고 무르익는다. 이러한 규모 있는 R&D 투자는 정부와 공공기관, 대학과 대기업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지속될 수 있다.

또 하나 세계사적 패러다임 전환인 친환경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해 싱가포르는 이미 수소·암모니아 벙커링 허브 조성을 국가 전략으로 삼았다. 로테르담항도 액화 암모니아의 STS(Ship-To-Ship) 벙커링 실증 단계에 들어서는 등 두 항만은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도 세계 항만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두 선진 항만이 대전환기를 맞이하여 기민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감탄스럽다.

부산항도 ‘디지털화(Digitalization)’와 ‘탈탄소화(Decarbonization)’를 양대 축으로 하는 항만의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기반의 지능형 물류 플랫폼과 스마트 자동화 터미널 구축, 그리고 친환경 에너지 벙커링 인프라 조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지금 우리의 결단과 실행이 부산항과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물류·조선·에너지 등 바다에 기반하고, 청년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기술혁신에 의한 ‘디지털과 탈탄소화’라는 부산항의 패러다임 전환은 궁극적으로 항만과 지역의 지속 성장을 이뤄낼 것이다. 앞으로 그려질 지역 미래상(未來像)의 중심에는 ‘청년’과 ‘바다’가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지난 150여 년간 부산항은 대한민국 경제의 관문이었다. 이제는 대전환의 파고를 넘는 범선이 되어야 한다. ‘기술혁신’이라는 돛을 펼쳐 디지털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대양을 항해 출항해야 한다. 항만을 통한 도시의 성장은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한 산업의 도약을 이루어 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대전환의 파고를 헤치고 지역과 국가의 새로운 100년을 이끄는 성장 동력의 원천은 결국 바다와 청년으로부터 시작되는 기술혁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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