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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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타인이 지옥이라는 말
사르트르 희곡이 출처
세 명 인물만 있는 세계
타인 시선 감당 힘들어
내가 선택한 삶 있어야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철학자이자 문학을 사랑한 작가였다. 그는 1964년 문학에 등급을 매기고 제도화하는 것에 반대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했고,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의 출처로 알려진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을 읽었다. 웹툰, 드라마 등 동명 제목으로 유명세를 치른 이 말은 마치 타인에 대한 혐오 발언처럼 사용되고 있으나, 이는 애초 사르트르가 전하려는 뜻과 다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사르트르의 유년 시절부터 살펴야 한다.

사르트르는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외가에서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작은 키에 야윈 몸피로, 허약한 데다 눈은 사시였다.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놀림 받던 사르트르의 도피처는 외할아버지의 서재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계기가 된 〈말〉은 사르트르가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자서전으로, 그가 처음 외할아버지의 서재에 들어섰을 때 감흥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서전에서 그는 외할아버지 서재에 가득한 책을 ‘영원한 존재’라고 표현했다.

외할아버지의 서재는 그를 구원했고, 외할아버지의 기대는 그를 속박했다. 사르트르는 훗날 어린 시절 자신의 말과 행동이 결국 외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한 연극이었음을 고백했다. 부르주아 계급의 교양을 중시했던 외할아버지의 기대에 맞추어 어휘와 어투까지 연출했던 손주의 유년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어린 사르트르에게 외할아버지의 시선과 평가는 너무 가혹했다.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은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창도 문도 없는 그곳에 안내된 세 명의 인물은 서로를 지켜보며 끊임없이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 갇힌 이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세 인물 중 한 명인 가르생은 비명처럼 외친다.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두 명뿐인 타인의 시선과 평판을 감당하는 것만으로 지옥 같은 상황이 되는 까닭은, 그곳이 숨거나 피할 데가 없는 닫힌 공간이기 때문이다.

‘닫힌 방’에는 무엇보다 책이 없었다. 이를 두고 〈닫힌 방〉의 번역자는 각주에서 “지옥에는 책이 없다. 책이란 타자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타인이 지옥이 아니라, 눈앞에 전시된 타인의 삶을 볼 수밖에 없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닫힌 세계가 바로 지옥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숨을 곳이 있다면 우리는 견딜 수 있다. 사르트르에게 책이 그러했듯, 누구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피난처가 필요하다.

업무 용도로만 사용하던 휴대전화 문자 앱이 어느 날부터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저장된 사람들의 일상이 전시되었고, 타인의 전시는 곧 나를 향한 시선이 되었다. 액자에 담겨 전시된 타인의 일상을 관람하며, 전시하는 이는 스스로 타인의 시선 속에 자신을 가두고, 전시를 보는 이는 타인의 삶을 엿보다 자기 시선에 갇힌다.

레바논 속담에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라는 말이 있다. ‘타인 없는 나’야말로 지옥이라고 말한 〈단순한 기쁨〉의 저자 피에르 신부의 말처럼, 행복이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행복 관련 연구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내용이다. 다만, 사르트르가 말했듯,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은 지옥이라며 접촉을 회피하기도 하지만, 결국 접속된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며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지 않은지.

타인의 칭찬과 비판, 동경과 비하, 선망과 멸시, 호의와 적의, 그 어느 시선과 평가에도 동요하지 않는 삶, 타인의 인정에 안도하기보다 다정한 무관심을 벗 삼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그렇게 자유 의지를 지닌 이들이 모인 공동체라면, 타인은 지옥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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