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다카이치 시대의 한일 관계 - 반응에서 구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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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국 동서대 총장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8일 일본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에 정박한 핵추진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함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호명하자 손을 번쩍 들어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8일 일본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에 정박한 핵추진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함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을 호명하자 손을 번쩍 들어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0월 21일, 일본 국회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의원을 제104대 총리로 선출했다.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일본은 보다 분명한 보수색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주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이 71%에 달한 사실은 일본 사회에 ‘강한 국가’에 대한 갈망이 있음을 시사한다. 장기간의 경기 침체, 보수층의 불만, 안보 위기, 미·중 패권 경쟁이 겹치며 일본이 선택한 것은 ‘보수 회귀를 통한 안정’이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보수화 흐름이 단순한 정권의 정치적 의지를 넘어, 일본 사회 내부의 보수 정서 결집을 토대로 지속 가능성의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유신회가 ‘각외(閣外) 연립’ 형태로 다카이치를 뒷받침하는 구도는, 자민-유신 연립이 여전히 소수 여당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외교·안보·헌법 영역에서 보수적 노선을 제도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미일 동맹 황금시대 동북아 질서 재편

역사 문제는 보수 입장 견지 가능성

한일 관계 한미일 삼각동맹 핵심 모듈

반응 대상 아닌 공동 질서 구축 파트너

협력 이익, 갈등 비용 압도하게 해야

다카이치 정권의 외교·안보 행보는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첫째,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밀착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지난 28일 방일한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전 총리와의 관계를 회상하며 그를 극찬했다. 또한 “일본을 지원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그곳에 있을 것”이라며 최고의 외교적 수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는 향후 동북아 전략 질서가 ‘미·일 중심’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둘째, 일본은 안보 네트워크 확장과 방위력 증강에 속도를 낼 것이다. 북핵, 북·중·러 접근, 중국의 군사대국화는 일본 여론을 결집시키는 명분이며, 다카이치 총리는 내각 출범 첫날 이미 ‘안보 3문서’ 개정과 방위비 GDP 2%의 조기 달성 검토를 내각에 지시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셋째, 역사 인식 문제에서는 보다 보수적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위안부, 강제징용, 독도, 야스쿠니 문제는 언제든 외교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고, 우익 성향의 정권으로서 지지 기반인 보수 세력의 기대와 압력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한국의 대일 외교는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적 외교’로 재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미 관계 복원이다. 한미 관계가 흔들리면, 미·일 축 중심 질서 속에서 한국은 개입력과 주도권을 동시에 상실한다. 트럼프-다카이치 간 ‘찰떡’ 공조를 고려하면, 신뢰 부재 위에 세워진 ‘봉합된 한미 관계’는 일본의 대(對)한국 인식에도 부정적 신호를 보내 한일 간 ‘갈등 요인’이 비집고 나올 공간을 허용한다. 굳건한 한미 관계는 안정적 한일 관계의 근본 전제조건이다.

또한 한국은 한일 관계를 양자 관계가 아닌 글로벌 전략 구도 속에서 재배치해야 한다. 미국의 대외 정책이 가치가 아닌 거래·이익 중심의 현실주의로 재편된 이상, 한국은 한일 관계를 동맹·안보·경제안보가 상호 연동되는 하나의 전략 축으로 다루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한일 관계를 ‘한미일 삼각 협력의 핵심 모듈’로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급망, 반도체, AI, 핵심 광물, 조선 등 전략 산업에서 한미일 경제안보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한국과 일본이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공동의 큰 틀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조선업의 경우, 한미일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전략자산 생산·해양기지·유지보수 협력망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일본을 ‘반응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 질서 설계의 구성 요소로 다룬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물론 다카이치 시대의 한일 관계는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질문을 바꿀 시점이다. “일본은 어디로 가는가?”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우리는 일본과 함께 동북아 질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관계를 멈추게 하는 힘이 과거에 있다면, 관계를 움직이는 힘은 미래에 있다. 미래를 향한 협력의 관성이 축적되면,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충돌이 아니라 조정과 복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협력의 이익이 갈등의 비용을 압도하는 구조를 만들 때, 한국은 일본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며 ‘반응’하는 나라가 아니라, 한일 관계를 주도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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