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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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 사회부 차장

연일 터지는 황당무계한 사건·사고
보는 이들의 낯 부끄럽게 만들어
건강한 사회 지탱하는 '상식' 깨져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회복을

올해 사회부 생활을 시작하면서 맡은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제보에 대한 ‘게이트 키퍼’ 역할이다. 매일같이 회사로 걸려오는 제보 전화, 선후배 기자들이 건네는 이야기, 주변 취재원들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제보까지, 많은 제보 가운데 무엇을 취재하고 기사화할지 취사선택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여주거나,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 더 나은 사회로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판단되는 제보는 취해 취재 등 기사화 과정을 거치고,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난 일방적인 주장만 일관하거나 사안이 너무 단편적이고 일면적인 제보는 배제한다. 취사선택의 기준은 제보의 내용이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공유하는 ‘상식’의 범주에 얼마나 벗어나 있느냐다.

최근 부산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이른 아침 시간 골프를 치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모래에서는 벙커샷 연습을 하고, 인조 잔디에서는 퍼팅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황당하면서도 학교 운동장을 골프 연습장으로 활용하는 기발함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여름방학 기간이었지만 분명 학교에서는 방과후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깨는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이라는 판단에 따라 제보 내용은 사회부 기자들의 취재를 거쳐 기사화됐고, 해당 기사는 많은 독자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사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상식 파괴’ 장면과 마주한다. 오늘도 많은 신문과 방송,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상식을 저버린 이들의 말과 행동들이 전해진다.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부산의 한 등산로에 파크골프장을 만들어놓고 이용한 노인들이 있는가 하면, 부산의 한 시내버스에서는 한 승객이 좌석에 앉아 양산을 펴고 있다가 다른 승객들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강원도의 한 해수욕장 인근 정자에는 한 캠핑족이 텐트를 설치하고, 텐트를 고정하기 위해 바닥에 피스까지 박아 이슈가 됐고, 대전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돗자리를 펴고 고추를 다듬는 주민에게 문제를 제기하자 자신의 차를 곧 댈 것이라는 황당한 대답만 들었다는 사연이 소개되기도 했다.

일상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닫히는 지하철 문 사이로 몸을 밀어 넣은 승객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한 승객의 핀잔에 되레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렇게 뭐라고 그러냐”며 큰소리를 치며 승강이를 벌인다. 한 호텔에서는 두세 살배기 아이 둘을 데리고 호텔 수영장을 찾은 한 부모가 수영장 정비 시간이 됐음에도 수영장을 이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수영장을 더 이용하게 해달라고 떼를 쓰고 언성을 높인다. 상식을 저버린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가 얼굴이 화끈거렸던 최근의 경험들이다.

과거에는 그냥 지나쳤을 법한 이런 풍경들이 이제는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발달로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덕분에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더 자주 목격하게 됐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과연 건강해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깊어진다.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편리함이 우선시되는 시대, 개인의 삶과 가치가 중요시되고 사회 규범과 공동체 의식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건강한 상식을 지닌 국민은 매번 분노하지만, 곧 잊힌다. 상식을 저버린 악행들은 또다시 반복된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네 가지 도덕적 단서, 사단(四端) 중 하나로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들었다.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잘못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그는 부끄러움이 사라진 곳에는 탐욕과 이기심이 채운다고 했다. 상식이 파괴되는 숱한 일상들로 채워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꼭 되새겨봐야 할 덕목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의 최소 조건이다. 규범과 원칙이 존중받고, 예측 가능한 질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구성원들의 단순히 지식이나 논리적 판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공유하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모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의 구성원은 자신의 행위가 사회적 규범이나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에 어긋났음을 깨달을 때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한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개인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사회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된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상대를 배려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사회부 기자들이 상식을 저버리는 황당무계한 사건·사고들을 기사로 전하는 일이 사라질 날들을 기대해본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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