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건축과 미술, 공연까지… '칼루스테 굴벤키안 재단'
아트컨시어지 대표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이 도시의 주요 미술관과 공연 정보를 찾아보았다. 공교롭게도 꽤 흥미로운 전시 컬렉션과 오케스트라 연주가 같은 장소에서 열리고 있었다. 리스본에 위치한 칼루스테 굴벤키안 미술관과 동명의 오케스트라 연주회였다. 연주회 티켓을 받고, 공연 전까지 이웃 건물에 위치한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전시는 각기 다른 건물에서 열리고 있는데 현대미술관의 경우 잘 조성된 정원과 못을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기존 굴벤키안 재단 건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현대식 건물이었고, 정원까지 더해 동양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일본인 건축가 구마 겐고가 증축과 리노베이션을 했다. 굴벤키안 미술관 컬렉션으로는 고대 이집트 유물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방대한 수집품부터 렘브란트와 루벤스, 모네와 마티스의 작품까지 만날 수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방대한 개인 컬렉션 중 하나라고 한다.
굴벤키안 재단의 하이라이트는 대극장과 오케스트라이다. 객석에서 바라본 무대 뒤로 정원의 우거진 수목을 볼 수 있게 대형 유리창으로 만들어져 있다.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무대가 있는 셈이다. 방문 당일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이 부조니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협주곡으로는 드물게 합창단이 함께 공연했다.
축적된 큰 부를 가지고 생전 혹은 사후에, 예술과 교육, 사회 환원을 목적으로, 때로는 상속의 이유로 수많은 재단이 만들어진다. 대부분은 미술관에 국한된다. 우선 미술품 자체가 큰 자산이고, 시간이 거듭될수록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굴벤스키 재단은 미술관과 공연장 그리고 오케스트라까지 운영한다.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는 건 결코 녹록지 않다. 오케스트라 단원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고정비가 만만찮아서다.
칼루스테 굴벤키안 재단은 예술, 자선, 과학 및 교육 진흥을 위해 설립된 민간 재단으로 2017년 기준 39억 유로(한화 5조 8000억 원)의 자산을 보유 중이다. 이 재단은 포르투갈 석유 재벌인 칼루스테 굴벤키안의 유언에 따라 1956년 설립되었고, 재단 형태로 국가에 기증됐다. 아르메니아계 영국인인 굴벤키안은 생전에 이미 유럽에서 가장 큰 개인 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 재단은 미술관을 비롯해 오케스트라, 발레, 합창단, 굴벤키안 과학 연구소, 굴벤키안 상, 굴벤키안 위원회를 포함한 수많은 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국적기인 대한항공이 리스본 직항편을 취항했다. 15시간 40분, 유럽 내 최장 거리이자 최장 시간 노선이다. 그동안 포르투갈 여행은 환승해서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늘길이 열리면서 조금 더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