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반도, 뱃사람 없이는 성장도 없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해상 무역 있어 한민족 고립 벗어나
선상노동, 외화소득에도 큰 기여해
선원들 헌신 인정받는 경우 드물어
금성호 희생자들에겐 충분한 애도를

사실 우리나라는 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삼면이 바다이고 북쪽은 아예 막혀있다. 어쩌면 섬보다 더 고립된 땅일 수도 있다. 이념으로 남북이 갈라지기 전, 먼 과거로 가더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부터 이미 한반도 교역 중심은 해상이었고, 육로 비중은 작았다. 춥고 척박한 북쪽 땅을 건너는 것보다 우리에겐 바다를 오가는 게 훨씬 유리하고 익숙했다.

과거에는 한 국가의 경제력이 해상 무역 능력에 따라 좌우되기도 했다. 신라의 수도 경주에선 페르시아 유리잔이 나왔다. 인도의 왕족이 가야로 건너와 교류하기도 했다. 모두 바닷길을 통해 사람과 물건이 오간 결과로, 당시 해상무역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북쪽의 고구려도 땅을 건너는 것보다 평양과 원산에서 배를 띄워 중국과 교류했다.

만일 그때 한민족이 바다로 나아가지 못했다면, 우리는 대륙의 귀퉁이에서 고립돼 지내왔을 것이다. 고립된 문명은 발전이 느리고 국력이 허약해진다. 한민족이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남기고, 정체성을 유지하며 한반도를 지키는 데 뱃사람들이 크게 기여를 한 셈이다.

산업화 이후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원양어선, 원양상선, 해외취업선 등 바다로 나간 선원들의 선상노동은 외화소득에 크게 기여했고, 6·25 전쟁 뒤 산업경제를 일으키는 단초가 됐다. 대한민국이 무역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는 배들이 있어 가능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민족은 뱃사람들이 없이 성장하기 힘든 땅에 살고 있다.

그러나 뱃사람들의 공헌이 제대로 인정받는 시대는 없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에 나서는 건 목숨을 담보로 하고, 선원들의 용맹함은 미덕으로 인정받아야 했다. 불행히도 예부터 위험한 일은 천한 이들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뱃사람들의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 등이 묘사돼 있다. 조선 시대의 궁중 일기인 승정원일기에도 선원들의 고충과 함께 부족한 보상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귀한 사람은 험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오랜 관념 탓에, 선원들은 금전적으로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고, 사회적으로도 저평가됐다.

지금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물론 신분과 직업을 연결 짓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은 옅어졌다. 배를 타면 육상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다. 그럼에도 고되고 위험한 생활에 대한 보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다면 경제적 부족분을 채울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 선원을 존경하는 풍토는 아직 없다.

선원에 대한 대우가 열악하다는 건 심각한 ‘선원 부족’ 현상이 입증한다. 바다로 나가겠다는 젊은 사람들은 점점 줄고 있다. 2021년 기준 육상 근로자 최저임금은 월 191만 4000원, 선원 최저임금은 월 236만 3000원이었다. 선원의 최저 월급이 23% 정도 더 많다. 배 위에서 겪어야 할 낮은 복리후생, 불완전한 가족 관계, 고립된 생활 등을 감내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이미 전체 선원의 절반 가까이 외국인으로 채워진 배경이다. 2030년 국적 선박 3분의 1에 한국인 해기사 배치가 불가능해지고, 2050년이 되면 한국인 해기사가 4000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칫 대다수 대한민국 배들을 외국인 손에 맡겨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해운수산 업계는 군 면제 확대 등 젊은이를 바다로 유인할 파격적인 대책을 정부에 요구한다. 선원 부족이 업계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파격적인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디지털과 해운이 결합하고 있는 시대적 추세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업계 자체의 문제도 크다. 기존 선원 조직들은 기득권화되고 있다. 선사들은 세련된 작업 환경을 만들기보다 투박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업계가 스스로 변화며 진취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미래를 걸고 승선하는 젊은이들이 하나둘 늘어날 것이다.

육상의 평범한 시민도 바다에 나간 이들에게 종종 고마움 을 표하면 좋겠다. 뱃사람들이 경제적 목적을 위해 배에 탔다고 하더라도, 거친 바다를 가르는 일에 누군가 나서주었기에 대한민국 경제가 움직이고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지난 8일 부산 선적 대형 선망어선 135 금성호가 침몰해, 14명의 선원이 숨졌거나 실종 상태에 있다.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하고 급박한 최전선 산업 현장에 투입된 이들이다. 최대한 사고 수습에 집중하고, 모두가 희생자들에 대한 충분한 존경심과 애도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선원들을 합당하게 대우하지 않고 해양 강국을 운운하는 건 비겁한 행위다.

김백상 해양수산부장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