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녹취록, 지금도 우리의 대화는 녹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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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재판은 증거 싸움이다. 민사, 형사, 이혼 등 모든 소송에서 당사자의 육성이 담긴 통화 녹음 파일은 결정적 증거가 되다 보니, 의뢰인에게도 통화 녹음 기능을 이용해서 증거를 확보하라고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당사자가 계약서, 확인서 등 형태로 일목요연하게 서명 날인을 받아두었다면 좋겠지만, 사실을 입증할 그 어떤 처분 문서도 없을 때는 의뢰인이 현재 쓰고 있는 휴대폰은 물론 예전에 썼던 휴대폰까지 뒤져가며 통화 녹음 파일을 찾기도 하고, 그것마저 없을 때는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거나 만나서 예전에 했던 대화를 유도해서 녹음을 시도하라고 한다. 그러면 간혹 상대방 몰래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하여 청취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따라서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닌, 대화 당사자로서 그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러한 국내법 규정과 달리 해외에서는 대화 당사자라고 하더라도 상대방 동의가 없는 녹음을 금지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특히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프랑스,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통화 녹음을 규제하고 있는데, 프랑스의 경우 공익 차원의 녹음 및 보도에 활용하는 경우 외에는 상대방의 동의 없는 대화·통화 녹음 뿐아니라 녹음 파일 소지만으로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통화 녹음 파일, 재판 결정적 증거

‘억울한 일 안 당하려면 녹음 필수’

직장 내 괴롭힘, 성범죄 소송에 활용

당사자 간 대화 녹음 얼마든지 가능

대통령 대화 녹취록 공개로 일파만파

내 편 네 편 관계없이 대화 신중해야

독일도 대화 상대방의 동의 없는 대화·통화 녹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동의를 받을 때 ‘계약 관련 사항을 녹음하겠다’라고 하는 등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미국은 50개 주 중 37개 주에서는 합법이지만, 캘리포니아 등 13개 주에서는 대화·통화 녹음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이나 영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동의 없는 대화·통화 녹음은 합법이지만, 제3자에게 공유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대화 당사자 간의 대화가 불법인 경우가 있다 보니, 통신 IT업계에서도 휴대폰에 통화 녹음 기능을 탑재할 것인지에 대하여 논란이 있었다. 그동안 통화 녹음 기능을 제공하지 않던 일부 제조사에서는 최근 운영체제를 업데이트 하면서 통화 녹음 기능을 적용하기 시작했는데, 상대방에게 ‘이 통화는 녹음됩니다’라는 음성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대화 당사자들이 대화를 시작할 때 흠칫하게 만드는 불편함이 있다고는 하는데,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 당사자 간 통화 녹음이 불법인 만큼, 녹음을 허용하되 사전 고지를 하자는 취지로 보인다. 통화 녹음을 넘어서 통화 녹음 공유로 인해 명예훼손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최근 통신사에서는 그 대응책으로 통화 녹음 공유 기능 절차를 다소 복잡하게 하는 방식으로 제동을 거는 움직임도 보인다.

2년 전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화 참여자 전원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금지하는 통신비밀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하자, 거센 반발 여론이 불거졌고 여론이 악화되자 윤상현 의원은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면서 해당 법안을 철회하기도 했다. 그동안 직장 내 괴롭힘, 성범죄 및 각종 무고 등 다양한 사건에서 대화·통화 녹음을 증거로 제출해서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벗은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억울한 일 안 당하려면 녹음해야 한다’라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이제는 시대를 거슬러 당사자 간 대화 녹음을 불법으로 다스려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지금 하는 모든 말들은 녹음되고 있고, 언젠가는, 또 누군가는 이 대화를 전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나 공직자, 정치인 그리고 어떤 일에 막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더더욱 대화 상대방이 아군이든, 적군이든 그 대화에 무게를 둬야 한다. 연예인들이 사적으로 나눈 대화가 유출되어서 하루아침에 방송 업계에서 퇴출당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고, 각종 대기업 일가의 갑질 사건도 녹취록 공개로 세상에 드러났었다. 우리는 최순실의 대화 녹취록으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도 겪었다. 일반인들은 물론 법조인들은 특히 대화 녹취록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대통령 대화 녹취록이 또 얼마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 맥락을 알 수 없는 일부 녹취가 세상에 돌고, 녹음 파일 공유로 인한 음성권 침해와 사생활 침해가 되는 세상, 녹음이 녹음을 낳는 불신사회가 조성되는 것에 경종도 필요하다. 유용하게 쓰고 있는 대화 녹음 기능이 언젠가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고, 대화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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