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3색 性이야기] 보노보의 사랑
김원회 부산대 명예교수
인류는 신석기 시대 말에 부분적으로 모계사회를 이루기도 했지만, 20만 년의 긴 세월을 거의 남성 상위로 살아왔다. 그들이 도구를 만들고 사냥을 하여 단백질을 구해오는 동안, 여자는 채집 위주의 생활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뒤늦게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라는 선물을 안겨준 것은 채 백 년도 안 된다. 과학이 발달하고 교육 수준이 올라가면서 성이 개방되고서야 여성이 남성과 평등을 추구하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인간보다 훨씬 앞섰던 동물이 있어 흥미롭다. 진화론을 믿거나 말거나 많은 사람들은 인간과 가장 흡사한 동물이 침팬지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침팬지보다도 인간과 더 비슷한 동물이 있으니 바로 보노보(bonobo·사진)다. 우리와 98.7%의 유전인자를 공유하는 이 동물은 1929년 처음 발견됐을 때 피그미 침팬지라 불렀지만, 그 후 별개의 동물임이 밝혀졌다. 현재 1만 마리 미만이 생존한다고 본다.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는 모계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주로 중앙아프리카의 콩고 밀림지대에 사는데, 거의 직립에 가까운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람처럼 질이 앞쪽으로 많이 이동해 있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고 교미를 한다. 암컷 보노보는 좋은 유전자를 얻기 위해 새끼를 밸 때까지는 대부분 우두머리 수컷과 교미를 하지만, 일단 수태가 되면 몰래 무리의 모든 수컷들과 교미를 한다. 이 바람에 새끼가 태어났을 때 아무 수컷도 그를 해치지 않는다니, 이들의 ‘관계’에 대한 삶의 지혜는 참으로 놀랍다 할 수 있다.
보노보는 여성 중심적이고 평등주의적이며, 동물의 공격성을 성으로 대체하는 종으로 특징지어진다. 보노보는 암수의 관계에서는 물론 일반 사회생활 속에서도 성을 화해의 도구로 사용한다. 먹을 것을 앞에 두고 대부분의 동물은 싸워서 이를 쟁취한다. 그러나 이들은 암수에 관계없이 서로 성기를 어루만져 주거나 상대방의 허벅지에 자신의 성기를 비벼대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서로 친밀감을 느끼게 되면 싸울 생각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양보하고 싶어지고, 결국 사이좋게 먹을 것을 나눠 먹는다. 동물판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교미 시간은 겨우 13초가량인데도 그것으로 충분한 친밀감과 애정을 쌓는 것을 보면, 쾌락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의사소통의 한 방식으로서 성을 이용한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이 배울 게 많은 동물인지도 모른다.
자연히 이들은 인간보다 훨씬 교미하는 빈도가 높은데, 암컷의 출산 간격은 5년에서 6년 사이 정도인 것을 보면 우리는 모르지만 어떻게든 섹스와 생식을 분리할 줄 아는 동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어 흥미롭다. 보노보는 외향적인 침팬지보다 기쁨, 슬픔, 흥분, 분노 등 감정을 표현하는 데 더 통제력이 있다. 수컷 침팬지는 종종 바위를 던지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리지만, 수컷 보노보는 보통 나뭇가지 몇 개를 뒤로 끌면서 잠깐 뛰는 것으로 기분을 다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