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TSMC는 왜 도쿄 대신 구마모토를 선택했을까
논설위원
구마모토, 홋카이도 반도체 공장 신설
풍부한 전기·지하수 안정적 확보 가능
미국은 원전 옆에 데이터센터 설치
한국, 전력망 없는 수도권 산단 건설
지역이기주의 등 지방민 탓만 일삼아
국가 경쟁력 제고 위해 정책 바뀌어야
일본 유수의 시사잡지 〈중앙공론(中央公論)〉이 이번 10월호에 ‘TSMC는 왜 구마모토를 선택했는가’라는 스즈키 카즈토 도쿄대 교수(지경학연구소장)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세계적인 반도체 메이커인 대만의 TSMC는 인구 4만 4000여 명의 농촌인 구마모토현 기쿠요초에 공장을 건설했다. 스즈키 교수는 기고문에서 “구마모토가 TSMC에 가장 이상적인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반도체 제조는 많은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규슈에는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기도 해,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일본에서도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싼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구마모토는 아소산 덕분에 풍부한 지하수를 얻을 수 있는 매력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공장 입지의 핵심은 전력과 용수 확보의 용이성이다.
구마모토만이 아니다. 일본 반도체 부활의 ‘희망’으로 불리는 라피더스(Rapidus)도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 인근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다. 홋카이도는 인근에 광대한 지하수가 형성돼 대량의 물을 싼값에 확보할 수 있다. 또한, 태양광과 풍력을 비롯한 재생 에너지 발전이 많아, 전기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홋카이도 해상풍력 발전은 최근 몇 년간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홋카이도 도마리 원전 3기도 재가동을 심사 중이다.
이로 인한 지방의 경제와 인구 유입 효과는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기쿠요초는 매년 인구가 500명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일본 대기업 평균보다 훨씬 많은 고소득 일자리 증가는 물론이고, 관련 기업 약 90개가 공장 신·증설을 계획 중이다. 구마모토 공항 국제선 이용자는 2배 이상 뛰었다. 규슈에서도 오지로 유명한 인근의 온천마을 미나미아소는 TSMC 덕분에 이주지로서 활기를 보이며, 소멸도시 위기를 벗어났다. 홋카이도도 라피더스 공장 건설로 닛폰 익스프레스, 테크노플렉스 등 관련 기업들이 진출하며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이로 인한 경제적 파급 효과가 2036년까지 18조 8000억 엔(약 180조 원)으로 추산된다. 한물갔다고 치부했던 일본이 막대한 보조금으로 세계적 반도체 공장을 지방에 유치하면서 국가 미래 발전, 국가 균형 발전 전략을 펼치는 모습이다. 국가 예산은 그렇게 쓰라고 있는 것이다.
AI(인공지능) 시대에 전력 확보가 세계적인 이슈다. 미국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IT 공룡 기업들은 앞다투어 원자력발전소 옆 데이터센터를 매입하고 있다.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미터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공급받아 초고압 송배전탑을 설치할 필요가 없고, 전기요금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전소에서 ‘전기 직구’, 이른바 ‘미터기 뒷거래’(behind-the-meter deals)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대량의 전기를 24시간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반도체 생산공장과 데이터센터 등이 발전소 인근으로 자리를 잡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서울 정부와 언론, 학계, 산업계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는 내용이다. 오히려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과감한 인허가, 대대적인 보조금, 24시간 불철주야 공사만 강조한다. 일본은 전기와 용수가 풍부한 지방에 반도체 공장을 짓지만, 한국은 수도권에 ‘전력망 없는 깡통 산업단지’ 터만 닦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은 나 몰라라 하면서, 고압 송전탑 설치에 반대하는 지역민은 자기 이익만 챙기는 ‘무식한 백성’으로 호도하기에 바쁘다. 만약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한강변 아파트 앞에 송전탑이 세워진다면 머리띠 두르고 광화문광장에 모여서 정권 퇴진까지 외칠 것이다. 수도권 집값을 지키기 위해서.
원전에서 전기를 직구하는 시대에 한국 정부와 서울 언론과 학계는 무엇을 생각할까. 청정재생에너지와 원전이 집중된 호남과 부산·경남 남해안과 경북·강원도 동해안에 반도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를 세울 생각은 약에 쓰려도 없다. 생각을 바꾸고, 사람만 이동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간단한 일은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대신에 송전탑 건설로 국가 예산을 낭비하고, 국민적 갈등을 조장하고, 국가 경쟁력을 해치는 일을 ‘국가 경쟁력’이란 미사여구로 포장해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최근 열린 호남권 해상풍력 송전탑 건설 설명회에서 한 촌로의 뼈 때리는 일갈이 많이 회자된다고 한다. “아, 전기가 필요한 놈들이 발전소 옆으로 내려오면 될 것이지 뭐하러 쓰잘데없시 돈 쳐들여가메 촌사람들 가슴에 못 박어가메 그 멀리까지 전기를 끌어간디야!” 분명한 것은 ‘우매한 지방민’ 탓을 하면서 국가를 분열시키는 사람이 국가와 공공의 적이다. 국가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