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제1회 국제 소월 시 낭송대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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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혁 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문체부 주최 11월 1일 부산서 열려
소월 정신·시 세계에 알리자는 취지
우크라이나 등 19개국 104명 응모

‘바다’ 등 시로 자유·해방 읊은 소월
국내에선 그동안 상대적으로 홀대
부산서 ‘소월사랑’ 새롭게 시작되길

세계인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시인 김소월의 시를 낭독하고 기리는 국제대회가 11월 1일 부산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며 체육진흥공단이 후원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4년 작고 문인 선양사업’ 대상 문인으로 시 부문에 김소월을, 소설 부문에 염상섭을 지정하고 올해 7월 전국 5개 기관을 선양사업 추진기관으로 선정했다. 시는 부산의 국제소월협회와 서울의 (사)한국작가회의가 맡았다.

‘시의 날’에 맞추어 11월 1일 오후 1시에 부산역 유라시아플랫폼에서 열리는 ‘외국인 및 다문화 가정 대상의 제1회 국제 소월 시 낭송대회’는 소월 시인의 시와 정신을 세계에 널리 알려 한류의 고급화와 세계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다중문화 사회에 잘 적응하여 지역공동체의 문화 간 소통능력을 높여 보자는 의도도 담고 있다. 이번 대회는 낭송자가 무대에 직접 서는 ‘직접 참여형’과 영상으로 지원하는 ‘영상 공모형’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짧은 홍보 기간과 첫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몽골,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인도, 파키스탄, 튀르키예, 가나, 시리아, 중국 등 지구촌 각처에서 참가신청서를 냈다. 응모자가 19개국 104명이나 된다. 본선에서는 이 가운데 15명이 참가하여 각자의 솜씨를 겨룬다. 부대 행사도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다. 소월의 시에 인공지능과 챗GPT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작곡하는 ‘AI 소월 전시회’를 비롯하여 소월 전문 앙상블의 연주와 가곡 공연, 오카리나 합주단의 소월곡 연주로 구성된 ‘작은 음악회’, 소월의 시로 아름다운 한글 서체를 써보는 ‘손글씨 체험’, 소월 시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내는 ‘하늘 편지 코너’ 등이 그것이다.

부산이 국내 유일의 정부 지정 ‘국제 관광도시’인 만큼, 이런 열기가 내년과 내후년에도 계속 이어져서 중앙 정부의 도움 없이 우리 힘으로 대회를 이어가길 희망한다. 혹자는 “소월이 부산에서 태어나고 부산에서 활동한 지역 문인이 아닌데 왜 부산에서 그의 문학을 기리느냐”고 반문한다. 한마디로, 너무 좁은 의견이다. 한강이든 백석이든 윤동주든, 아니면 우리 동네 가게의 아주머니나 아저씨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소월 시인에게 나름의 빚을 지고 있다. 전국에 120여 개 문학관이 있지만, 제대로 된 소월 문학관은 한 군데도 없고 줄곧 소월을 소홀히 대해 왔으니 말이다.

굳이 따진다면 소월도 부산과 연고가 아예 없지는 않다. 3·1 운동으로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가 폐교되어 서울의 배재학교로 편입한 소월은 1923년 3월 부산을 거쳐 일본 도쿄상과대학으로 유학을 갔고, 6개월 만에 관동대지진을 만나 할아버지의 독촉으로 귀국했다. 당시는 도일 증명서를 끊고 관부연락선에 오르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시절이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제1 부두와 초량 근처에는 아마도 여기저기 싼 숙소를 기웃거리며 남긴 그의 발자취가 수없이 남아있을 것이다.

소월은 달의 시인이지만 바다의 시인이기도 하다. 평안북도 곽산의 진달래봉 아래에서 태어난 소월은 높다란 계단 위의 자기 집에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서해를 유별나게 사랑하였다. 소월에게 바다는 자유의 거친 물결, 해방의 피안이었다. 그 바다 사랑의 끝에서 ‘바다’ ‘어인(어부)’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바닷가의 밤’ 등 10여 편의 시가 탄생하였다. 그는 바다를 메워 농지간척사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작은 에피소드가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한반도의 대시인 소월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 소월은 그런 작은 틀, 좁은 지역성에 가둘 수 없는 민족의 대시인이다. 그는 모든 남북한 인민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며, 우리의 정신이고 혼이다. 한국 근대문학을 열어간 개창자를 넘어 인류 보편의 선한 감정을 노래한 세계의 대시인이며, 노벨상 수상 작가 한강의 발원지다. 그러니까 단 며칠 사이에 19개국에서 100명이 넘는 세계인이 소월의 시를 달달 외워서 음성 파일과 영상을 앞다투어 보내오지 않았을까.

소월 사랑에서 부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무쪼록 이번에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 소월 시 낭송대회’에 시민과 언론의 관심이 많이 쏠렸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너무 대중문화 중심으로 흘러가는 한류 콘텐츠가 소월 문학으로 질적으로 보완되길, 부산에서 출발하는 대륙 기차가 언젠가 소월의 시를 싣고 소월의 고향을 지나 시베리아와 유라시아 평원으로 달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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