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K건축 시대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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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놀랐다. 매년 노벨문학상 발표 때면 “한국어 작품은 번역이 어려워 노벨상은 받기 힘들다”며 한국 문학의 대가들 이름만 몇몇 거론될 뿐이었다. 책은 사람들 손에서 점점 멀어지고 출판사는 종이책을 만들어 종잇값도 못 건지는 실정이다. 게다가 국가 문화 예산에서 문학, 출판 관련 예산은 대부분 없어졌거나 삭감된 상황이다. 그런 형편에서 들려온 소식이라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강 작가의 작품은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이미 세계에서 인정을 받은 데다 노벨문학상이라는 무게가 더해졌다. K문화의 정점이 왔음을 실감한다. 마침 방송에서는 ‘흑백요리사’ 열풍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화제를 모았다. K팝, K영화·드라마, K푸드에 이은 K문학의 성과는 한국 문화의 저변은 인문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 그렇다면 우리 건축은 어디까지 왔을까. 인문과 공학의 결합으로 한 나라의 문화를 구현하는 건축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은 그 사회의 문화 수준 척도

“한국은 온갖 규제에 묶여 있어”

우리 건축 우리가 먼저 존중해야

노벨상에 건축 분야는 빠져 있다. 대신, 건축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있다. 이 상은 프리츠커 가문이 운영하는 하얏트 재단이 매년 3월, 살아있는 건축가 중 가장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1979년 첫 시상 이후 대부분 미주와 유럽 출신, 그리고 일본의 건축가가 수상했다. 그들의 건축물은 현대의 대표적 건축물로 불릴 만큼 모던하거나 아름답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져 지역성을 기반으로 하거나 공동체에 대한 깊은 고민과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동시대의 인문과 철학을 담아 건축이 한 사회의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3월 46번째 수상자를 발표했는데, 일본의 야마모토 리켄 건축가가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이로써 일본은 9번째 수상으로 최다 수상국이 되었다. 이는 건축가 개인의 역량과 더불어 일본 건축의 저력을 보여준다. “일본은 건축을 국가를 설계하는 싱크탱크로 여긴다”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건축가 도미이 마사노리 전 한양대 건축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일본 건축가를 알리는 전시회의 해외 개최를 지원하는 등 일본인 건축가들이 국제 건축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육성해 해외 진출의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동아시아 3국(한국, 중국, 일본) 중 아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물론 상 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 건축은 어디까지 와있는지 곰곰이 챙겨봐야 할 시점이다.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야마모토 리켄 건축가는 2010년 우리나라에서 타운하우스 ‘판교하우징’을 설계했다. 총 100가구의 공동 주거시설로 9~11가구를 하나의 그룹으로 만들고 가운데를 마당처럼 공유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현관을 투명한 유리로 마감해 집안이 훤히 보이는 탓에 초기 분양 당시에는 사생활 침해 논란으로 미분양이 났지만, 2020년에는 주민들이 야마모토 리켄을 초청해 감사를 전할 만큼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는 그를 선정한 이유로 “사회성이 높은 건축물로 사람들의 커뮤니티(공동체)를 재정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한 명도 안 나온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건축 문화가 한국보다 나아서 수상자가 많은 게 아니다. 일본 건축가들이 건축물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내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국 건축가들에게 제대로 설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온갖 제약과 규제에 묶여 있다. 한국 건축가들이 불쌍하다. 자유도가 전혀 없다. 그러면서 나 같은 외국인에게는 자유롭게 건축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에서 유명한 건축물은 거의 외국인 건축가의 작품이다. 요지는 외국인에겐 자유로운 건축물을 지을 기회를 주면서 한국 건축가에겐 안 준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한국에도 좋은 건축가가 많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다른 나라 건축가도 아는 사실을 우리가 모를 리 없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와 건축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건축가로서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외국 유명 건축가들 위주로 주어지고 우리 건축가는 소외된다면, K건축 시대는 요원하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받아야 예술가로 건축가로 대우받을 수 있다면, 예술과 건축은 대한민국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K문화의 세계적인 위상과 국민의 문화적 수준,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비해 제도적 환경의 변화가 더딘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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