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한국과 일본의 노벨상 수상이 던지는 메시지
신정화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
올해는 한국과 일본에서 나란히 노벨상을 받게 됐다. 인류의 평화와 복지에 기여한 사람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세계에서 최고로 권위 있는 상을 받게 된 것은 뜻깊고 기쁜 일이다. 노벨위원회는 10월 10일 한국의 소설가 한강을 노벨문학상, 다음 날인 11일 일본 원자폭탄 피해자 전국 시민단체인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협)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각각 선정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은 노벨상 수상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4년 전인 2000년 10월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점을 평가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일본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50년 전인 1974년 ‘비핵 3원칙’(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 외교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사토 총리가 평화 실현에 공헌한 점을 평가받았다고 한다면, 이번의 한강과 피단협은 위협받는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격려라고 하겠다.
국가폭력·전쟁으로 희생당한 사람들
한강, 그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 요구
피단협, 핵무기 위험 지속적으로 알려
평화 지키려는 노력에 대한 격려의 상
북한 등 국가 공공연히 “핵 사용” 언급
더는 인간의 생명 위협받는 일 없어야
먼저, 노벨위원회는 1980년 5·18 당시 계엄군 총탄에 맞아 숨진 광주상고 1학년 문재학 열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이라 평했다. 또 소설가 한강에 대해서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해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소설의 내용이 난해하고 잔혹하며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적 견해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은 ‘전쟁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어 나가는 지구촌 상황’을 이유로 축하연 개최를 거절했다. 한마디로,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에게 세계 곳곳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발생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한 공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노벨위원회는 피단협이 노벨평화상 수상 단체로 선정된 이유에 대해 “핵무기 없는 세상 실현과 핵무기가 두 번 다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목격자 증언을 통해 끊임없이 제시해 왔기 때문”이라며 “(원폭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비참한 기억을 평화를 위한 희망과 실현을 위해 사용해 온 모든 생존자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나아가 “역사를 목격한 피해자는 사라지지만, 새로운 세대가 메시지를 계승하고 있다”고 전했다. 피단협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자를 중심으로 1956년 결성된 이래 70년 가까이 원폭 피해를 고발하고 반핵 평화운동을 해 왔다. 하지만 피단협이 전쟁 발발의 책임을 일본 측에는 묻지 않으며, 일본인 피폭자 중심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 소식을 접한 다나카 테루미(92) 피단협 대표위원의 “핵무기가 어떤 무기이며, 어떠한 피해를 초래하는지를 새삼스럽게 많은 사람에게 알리게 돼 매우 기쁘다”는 발언이 상징하듯 피단협은 확산일로에 있는 핵무기의 위험성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리고 있다.
지금부터 약 80년 전인 1945년 8월 6일에는 일본 히로시마에, 사흘 뒤인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제2차 세계대전 주축국인 이탈리아가 1943년 9월, 독일이 1945년 5월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억 옥쇄’를 외치며 결사적으로 항전하던 일본을 항복시키기 위해 미국이 원자폭탄을 인류 최초로 사용한 것이다. 약 1주일 뒤인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그러나 원자폭탄으로 인해 21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으며 15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피폭자가 되었다(사망자 중 4만 명이, 피폭자 중 3만 명이 조선인이었다). 물론 일본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죄가 있으며 전쟁이 장기화했다면 더 많은 미군과 일본군 그리고 민간인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자폭탄 사용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을 금지하고 있는 국제법 위반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후 핵무기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쟁적으로 제조되고, 기술 향상에 의해 파괴력도 증대됐다. 현재 핵보유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인정된 5개국(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에 실질적 핵보유국인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북한을 더한 총 9개국이다. 이들 국가 중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이스라엘은 이란, 그리고 북한은 한국에 대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핵무기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한강과 피단협의 노벨상 수상은 단지 국가안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존엄과 생명이 위협받고 희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강력한 호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