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채식주의자가 불편한 사람들
김형 편집부 차장
왜 사람들은 흑백요리사에 열광할까? 그 이면에는 약자인 ‘흑수저’가 강자인 ‘백수저’를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다. 흔히 ‘언더독’이라 불리는 실력 있는 무명 요리사들이 기존 사회에서 인정받는 금수저 요리사들을 이기는 이야기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서사이다.
이 스토리는 ‘다윗과 골리앗’의 서사와 매우 유사하다. 다윗과 골리앗은 전형적인 흑수저 스토리로, 인류사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3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대중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약자인 다윗이 거인 병사이자 최고 강자인 골리앗을 물리친다는 점이다. 골리앗은 사회 질서, 규범 그리고 권력을 대변하는 캐릭터이다. 다윗이라는 개인이 사회의 구조적 압박과 불합리한 규범에 도전하고 그것을 무너뜨리는 상징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흑백요리사와 같은 이야기에서 단순한 ‘언더독의 승리’를 넘어, 기득권에 대한 도전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질서, 규범 그리고 제도는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여기에 대한 힌트를 찾는다면 미셀 푸코가 가장 가까이 있을 것이다. 푸코는 사람들이 의심 없이 따르는 규범이 실제로는 ‘권력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다윗은 우리에게 묻는다. ‘개인은 사회 구조의 부속품으로서 비판 없이 따라야만 하는가’라고.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 역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와 유사한 맥락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사회적 규범과 억압된 가치관을 거부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는 약자의 투쟁을 그린다.
주인공 영혜는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가부장제와 가족 중심의 규범에 저항하며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으로 삶의 변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폭력적으로 거부당한다. 그럼에도 영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의 압박을 뚫고 나아간다. 이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열광케한 설국열차나 오징어게임 같은 작품도 다윗과 골리앗 서사와 맞닿아 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도전’보다는 ‘변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변화는 ‘기존 사회의 전복’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사회로의 성장’을 의미한다. 흑수저의 열정과 도전은 기존 기득권이 지배하는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을 보여주며, 사람들은 그 점에 공감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저항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사회가 소수의 의견이나 새로운 가치를 외면하거나 억압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채식주의자 등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이 익숙한 가치관과 질서를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시대가 AI(인공지능)로 변해가고 있는데 여전히 4비트 컴퓨터를 고집하는 것처럼 말이다.
개인이 기존 질서에 맞서는 것은 너무 힘들다. 사실 자기만의 생각을 고수하고 기존 질서를 따르는 것이 가장 쉽다. 자신과 다른 시선을 놓고 고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다. 다양한 생각과 시선이 존재하는 공동체 속에서, 기존의 권력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시선을 함께 바라보는 노력이야말로 자유가 아닐까.
김형 기자 m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