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건축가 페터 춤토르의 발스 온천, 체감이 본질을 말하다
아트컨시어지 대표
스위스는 국토 면적이 4만㎢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지만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이탈리아 5개 나라와 국토가 맞닿아 있어서 어떤 도시를 여행하더라도 익숙한 지명이 나온다. 하지만 스위스의 온천 마을 발스를 목적지로 두고 인접 도시 쿠어를 경유했지만, 나타나는 표지판은 생경했고, 막다른 산길을 30여 분 지나서야 닿았다. 발스는 이렇듯 오지 중의 오지였다.
‘발스 온천’에 호기심을 갖게 된 건 페터 춤토르가 이 상업 시설과 호텔 인테리어를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2009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되면서 유명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소도시 쿠어에 작은 스튜디오를 가지고, 장인처럼 자기 작품을 추구하고 있다.
발스 마을에 본격적인 호텔 단지가 조성된 것은 1960년대 독일의 부동산 개발업자에 의해서다. 하지만 이내 파산했고, 소유권은 발스 커뮤니티로 넘어갔고, 춤토르에게 온천 건축을 의뢰했다. 1996년 완공된 발스 온천은 지역사회에 활기를 가져왔으며, 이 건물은 건축가의 대표작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7132 테르메(‘온천’이라는 뜻의 독일어)&호텔’이라는 고급 리조트로 바뀐 건 2012년 발스 커뮤니티가 소유하던 시설이 투자자 스토펠에게 매각되면서다. 첫 방문 때 온천 시설이 춤토르의 철학과는 상충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지역사회를 위해 설계한 자신의 프로젝트를 스토펠이 망치고 있다는 불평이 나올 법했다. 고급 레스토랑이 있는 리조트 입구는 미국 건축가 톰 메인이 재설계했고, 일본인 건축가 쿠마 겐고와 안도 다다오도 합류해 온천과 붙어 있는 또 다른 호텔 ‘하우스 오브 아키텍츠’ 내부를 디자인했다. 건축에 관심 있는 관광객에게는 매력이 될 수 있지만, 춤토르의 의도와는 괴리가 있었다.
이런 여건 속에서도 춤토르가 디자인한 건축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자연 채광마저도 제한적으로 허용한 온천 내부는 공간보다는 물이라는 물성에 더 초점을 맞춰 사용자가 체험할 수 있었고, 경사면에 지어진 온천 건물은 지역에서 채석된 암석과 편마암으로, 최대한 자연에 순응하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엿보였다. 춤토르 건축의 특징인 ‘체감’이 공간에 녹여진 대표적인 사례였다.
장소의 특성과 그곳에서의 느낌과 경험을 중시하는 그의 건축은 흡사 존재에 대한 실재론이나 추상적인 정의가 아닌 인간의 실존적 측면에서 존재를 규명한다는 하이데거의 존재론과도 유사하다. 지역성과 물질성에 민감한 건축가의 접근법은 오늘날의 건축 문화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